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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명신 공동대표
ⓒ 윤근혁

"요즘 고3 엄마들이 농담 삼아 얘기한다. 대학 수시 면접관이 '너 어제 밤 어디서 잤니?'하고 물어보면 여인숙에서 잤더라도 '롯데호텔에서 잤어요'하고 대답해야 한다고."

지난 18일 저녁 서울시청 옆에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담센터. 무교동 낙지축제가 한창인 이곳에서 단식농성 이틀째인 김정명신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공동대표(48)는 "단지 돈없고 빽없는 시골 출신이기 때문에 대학입학에 불이익을 받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난생 처음 하는 단식이라 가끔 진땀도 나고 속이 메스껍지만 나 같은 학부모가 나서지 않으면 일부 사립대학과 이런 대학 경영에 참여하는 특정신문의 고교등급제 음모를 막을 도리가 없다"면서 머리를 저었다. 현재 고교등급제 의혹을 사고 있는 연세대와 고려대는 각각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사주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정명신 대표는 누구?

김정명신 대표(48)는 서울 강남에 사는 학부모이면서 14년차 된 교육운동 활동가다. 지난 해엔 두 고교생 아이를 키운 경험을 묶은 '나도 아이와 통하고 싶다'(동아일보)는 책을 내고 '언론 발'을 타면서 일반 학부모한테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시민운동 불모지라 불리는 강남에서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구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을 구성, 풀뿌리 교육 운동을 해왔다. '또하나의 문화' 동인 출신.
그는 이번 농성에 60여 개 교육시민단체가 모인 '고교등급제·본고사부활저지와 올바른 대입제도 수립을 위한 긴급대책위' 대표단 자격으로 참가했다. 현재 단식은 장혜옥 전교조 수석부위원장과 함께 벌이고 있다.

다음은 이날 저녁 8시 10분부터 그와 두 시간동안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 왜 단식농성을 시작했나?
"이번 2008년 새 입시안이 발표된 후 그 개선안이 가져올 교육 파행을 공론화하기 위해 나는 내가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거의 다 하려고 했다. 그 후 강남 한 고등학교에서만 연세대에 몇 명씩이나 합격했다는 제보를 받고 이것을 언론에 다시 제보하면서 고교등급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3년 전 대한민국 고3을 지내며 새치가 많이 는 큰애가 던진 '대한민국 고3은 할 짓이 못 된다'는 말을 가슴에 안고 어제 농성 짐을 쌌다."

- 고교등급제, 왜 반대하나?
"이것은 강남지역 출신, 특목고 학생들에게만 유리한 것이다. 환경과 지역이 어려운 여건에서 졸업한 학생이 선배들 점수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것은 말 그대로 '학벌연좌제'다. 대학입학에서 학교를 차별하는 것은 아무리 학교차를 인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일반적 상식을 벗어난 것이며 매우 부도덕한 행위다."

- 그래도 지역마다 학력격차가 큰 학생들을 같은 수준으로 대우할 수는 없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지 않나.
"오히려 어려운 조건에서 열심히 공부해 내신이 높은 시골 출신 고3생이 대학에서 높은 성취도를 갖는다는 연구도 많다. 강남지역에서 돈에 의해 사교육으로 키워진 학력은 금방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등급을 매겨 특정 학생들을 뽑는다면 동종교배로 끼리끼리 문화만을 형성할 뿐이다. 원정출산이나 하는 절름발이 인재들은 나라를 위해 필요 없지 않은가?"

▲ 이날 밤 늦게까지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가 이어졌다.
ⓒ 윤근혁
- <조선일보>와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은 왜 고교등급제를 몰아붙이고 있다고 보나.
"평준화 깨기와 고교등급제 부추기기에 힘을 쏟고 있는 한 신문과 국회의원은 일반 학부모의 요구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평준화 해체만이 살 길이라고 특정 매체를 갖고 선동하고 있는 느낌이다. 진실이 아닌 것으로 계속 포장만 하고 있으며 지금 대한민국 교육은 곧 망할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 이들은 올 초 '학력 대물림'을 한 목소리로 걱정하기도 하지 않았나.
"그렇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보고서가 나오자 평준화가 학력대물림의 원인인 것처럼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물론 평준화를 깨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또 진짜 학력대물림을 야기시킬 고교등급제에 찬성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 이들은 일부 계층을 위한 평준화 해체에 목숨을 걸고 있는 느낌이다."

- 김정명신 대표도 강남 출신 학부모인데….
"그렇다. 나도 강남에 살고 있지만 고교등급제는 다른 지역 아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얻는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이 이를 묵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과도한 욕심이다. 사실 도곡동 대치동 학부모들도 망국적인 사교육 학벌전쟁에 괴로워 하는 피해자다. 이제는 엄마들이 들고 나서야 한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김정명신씨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회원 10여 명이 김정 대표를 응원하기 위해 농성장을 방문했다. 이 가운데 한 회원은 김정명신 대표에게 종이상자를 건네줬다. 5일 전 13일 군 입대한 큰아들이 입던 옷을 담아놓은 것이었다.

그는 상자 속에 있는 아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대한민국 군대와 학교가 뭔지. 아직도 거의 비슷해…."

- 교육부가 마련한 대학입시제도를 반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번 입시안은 대학서열체제를 고치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 교육부가 학생과 학부모들을 입시병 환자로 만드는 학벌사회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또 내신비중 강화에 대한 뚜렷한 대책 없이 대학자율성만 확대시켜놨다. 고교등급제나 본고사와 같은 교육적 파행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 갓 군입대한 아들이 보낸 편지와 옷을 살펴보는 김정명신 공동대표.
ⓒ 윤근혁
- 교육부는 오는 23일 최종안을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학부모, 교사, 학생 누구도 찬성하지 않는 입시안을 발표한다면 그것은 자충수를 두는 것이다. 대책위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지만 법적 소송과 함께 안병영 부총리 퇴진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공론화되지도 않은 입시안을 발표하는 순간, 수습이 어려운 사태가 생길 것을 걱정한다."

인터뷰 다음날인 19일 오후 3시 교육부는 새 대입제도 최종안 발표 시기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김정명신 대표는 이 발표 직후 "연기는 국민적 분노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고교등급제에 대한 실태조사가 형식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럼 새 입시안에 대한 교육시민단체의 대안은 무엇인가?
"교육부는 우선 입시안 발표일정을 연기하고 고교등급제, 대학별 본고사 의혹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새 입시안 합의과정을 다시 거쳐야 할 것이다. 범국민적 논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들어 국민과 함께 획기적인 입시 제도를 만들어 가자. 조금 발표가 늦어진들 어떠냐. 100년 계획을 세워야 한다."

- 마지막으로 같은 학부모들에게 하고픈 말을 해 달라.
"지금 엄마들은 불안하다. 강남지역 엄마들도 불안하지만 일반 서민 집 엄마들은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 남처럼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시키지도 못했는데, 내신 성적이 아무리 높아도 고교등급 때문에 좋은 대학에 못 간다면 말이 될 일이냐. 대학입학제도도 살인적인 입시교육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학벌제도와 대학서열제도를 없애지 못하겠다면 최소한 완화하는 방안으로는 가야 한다.

그런데 이번 새 입시제도는 이를 더 심화시킬 우려까지 있다. 대한민국 어디서 공부하든지 동등하게 대우받으면서 공정한 대학경쟁시험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당사자인 학부모들이 나서야 일은 해결될 것이다. 내 자식보다는 '우리'의 자식을 생각하는 객관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시청 앞 잔디광장이 바라다 보이는 국가인권위 농성장. 이곳엔 서울고일 초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란 대형 걸개그림이 벽에 붙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해 전시한 이 작품 속에서 초등학생들은 각자 미래 자신의 꿈을 그림으로 나타내 놓았다.

"이런 아이들의 꿈을 가로막으려는 어른들의 고교등급제는 말도 안 됩니다."

농성장에서 만난 김정명신 대표는 물론 10여 명의 교사, 학부모들은 이 같은 말을 단식과 밤샘을 하면서 되뇌는 것 같았다.

▲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김 대표 옆에 있는 이는 이철호 참교육연구소 부소장과 그의 아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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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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