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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님의 '강남 엄마와 그냥 엄마'에 대한 기사가 상당한 논쟁을 부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 그 기사는 분명히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이고, 민감한 주제를 단순히 사례 한 두 개로 다루고 있는 문제가 있어서 좋은 기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기사 속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의식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과열된 사교육 문제를 '강남'과 '그 외'라는 지역적 문제로 한정지어 서술하여 오해를 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아마도 김혜원님의 의도는 강남 대 비강남, 즉 지역이나 계층의 문제보다는 점점 더 타인에 의존하도록 부추기는 교육 흐름의 문제점을 짚고 싶었을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지역이나 계층이 아니라 점점 더 '누군가 타인에 의존해서' 공부를 하도록 학생들을 몰아가는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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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엄마'와 '그냥 엄마'의 차이

두 가지를 밝혀야 논리에 조금이나마 힘이 실릴 듯 싶어 개인적인 신상을 밝히면, 저는 80년대에 강남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며, 현재는 아내가 강북에서도 가장 극빈 지역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1년이 가도 촌지 한 장 들어올 일없고, 그 흔한 '치맛바람' 한 번 겪어본 적이 없는 지역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경험하고 듣고 있는 이 두 다른 시대와 다른 지역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80년대의 강남 학생과 지금 강북 학생 중 어느 쪽이 더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한다고 보시나요?

후자입니다. 적어도 80년대에는 중학생이 다니는 학원은 아예 없었고, 강남 고등학생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과외를 할 수 있었지요. 학원을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교에서 학습을 했습니다.

지금 학원으로 명성을 날리는 대치동은 당시에는 강남에서는 '준강남'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잘 것 없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당시 8학군의 핵심은 신흥명문고가 밀집된 서초구 지역이었지요. 당시 최고가 아파트였던 서초구의 삼풍아파트는 같은 넓이의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교육에 의존하는 성향이 커지면서 지금은 은마가 삼풍의 두 배가 넘는 가격대이죠.

한편 지금 강북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라도 부모들은 무조건 학원을 보냅니다. 없는 살림 쪼개서 과외를 시키기도 하지요. 제 아내가 맡은 반 35명 중 학원을 안 다니는 학생은 운동부 한두 명 정도?

서울을 벗어나 아무리 시골동네를 찾아가 봐도 보습학원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제는 학교 끝나면 학원 보내는 것이 전 국민의 상식이 되어버린 시대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 다시 말해 교육 자체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디에 살건 모든 부모들은 학원에 의존하지 더 이상 공교육만으로 자기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물론 계층별로 학원에 의존하는 이유는 조금 다릅니다.

부유층, 이른바 '강남 엄마'들은 학원이 학교가 가르쳐 주지 못하는 입시 노하우를 가르쳐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학원을 보냅니다.

반면 저소득층, '보통 엄마'들은 학원에서 무얼 배운다는 것도 있지만 일단 자신이 일에 바쁘기 때문에 최소한의 자식 통제를 위해 학원에 보내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습니다. 온 나라의 보습학원화, 그리고 흔히 말하는 '공교육의 붕괴'이죠.

결국 여기서 교육의 지역불균형과 그로부터 나타나는 이른바 '부의 세습'의 문제가 생겨납니다. 왜 그러한가? 학교는 평준화가 아직까지 그나마 유지되고 있지만 학원은 그러한 통제 밖에 있습니다. 공립학교 선생님들은 몇 년마다 순환되면서 우수한 선생님이 한 지역에 몰리지 않지만 학원 강사들은 돈이 되는 지역으로 모여들기 마련이지요.

결국 모두가 학원을 보내지만 우수한 강사의 수는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역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당시보다 지금 서울대학교 입학자 중 강남 출신의 비율이 훨씬 더 올라간 것은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어디선가 본 비유입니다. 극장에서 앞의 몇 명이 일어섰습니다. 뒷줄이 안 보인다고 일어섭니다. 결국 모두가 다 불편하게 일어서서 화면을 보지만, 결국 안 보이는 것은 똑같습니다. 여전히 앞의 몇 명만이 화면을 보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방법은 모두 같이 앉는 것입니다. 교육부가 내어놓은 '모든 학생이 TV 과외를 보게 한다'는 해법은 대증요법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흡사 서 있는 상황에서 화면을 위로 올린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모두가 서서 보는 불편함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앉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학습은 학생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상식으로 자리잡혀야 합니다.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더 이상 "틀린 것 고르기에서 if 뒤에 was가 나오면 무조건 그게 답이야. 생각 말고 찍어!"라는 식의 학원강의가 통하지 않도록 시험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깊은 독서와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서술형 답안과 구술이 당락을 결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학부모들 역시 학원에 의존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공허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하나만 바꾸면 됩니다. 자기 자녀를 더 믿는 것입니다.

부자 학부모이건 가난한 학부모이건 학원에 보낼 때에는 공통적인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자녀가 스스로 공부해서는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입니다. 그러나 학원이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공부할 놈은 아무리 안 시켜도 하고, 안 하는 놈은 무슨 난리를 쳐도 안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 최고의 학원이 밀집한 강남에서도 이른바 명문대학교에 들어가는 비율은 여전히 소수입니다. 이 지역 학생들조차 왜 명문대 입학율이 높은지 물어보면 대부분 학원보다는 학생들간의 경쟁분위기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지금 한 번 자문해 보십시오. 과연 나는 내 자녀를 얼마나 믿고 있는가? 학원에 찌들어 사는 청소년기가 내 소중한 자녀의 미래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개혁이 그렇게 대세라는데, 나라뿐 아니라 내 가정에서의 자녀에 대한 태도도 지금과는 무언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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