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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7일 아침 6시30분]

미군 점령에 반대하는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를 추종하는 민병대원들이 나시리야에서 한국인 2명을 억류했다가 14시간여만에 풀어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구촌나눔운동의 한재광(33) 사업부장과 이라크 주둔 미군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업체직원인 박모씨는 5일 오후 3시30분께 GMC 승용차를 타고 나시리야 시내 다리를 건너던 중 사드르가 조직한 알-메흐디군 민병대원들의 검문을 당했다.

이들은 서희부대가 나시리야 외곽에 세운 서희기술학교(한국인지원센터)에서 우연히 만나 이라크인 기사가 운전하는 박씨의 승용차를 타고 한씨가 지난 3일부터 머물던 나시리야의 알-자눅 호텔로 가던중이었다.

이들은 다리를 지키던 민병대원들에 의해 택시로 옮겨 태워진 뒤 인근의 민병대 본부 건물로 압송돼 14시간여동안 억류당했다가 6일 오전 5시20분께 풀려났다.

한씨는 "다리에 있던 10여명의 민병대원들중 비교적 젊게 보이는 사람이 길을 가로막고 내리라고 해 한국사람이고, 당신들의 친구라고 얘기했지만 막무가내로 택시로 옮겨 태운 뒤 어떤 건물로 데려 갔다"고 말했다.

한씨는 총을 든 민병대원들이 지키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영어로 무슨 이유로 왔냐고 물어 "NGO 요원이고, 당신들을 도우러 왔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호텔 가는 길에서 민병대와 이탈리아군이 대치중이고 다른 조직원들이 스파이로 오해해 공격할 수 있으니 보호해 주겠다"면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잠자리를 마련해 줘 잠을 잔 뒤 새벽에 풀려났다고 한씨는 말했다.

한씨는 억류중 1∼2명이 번갈아 가며 계속 감시를 했지만 결박당하지는 않았고 14시간여동안 마실 물과 3차례의 이라크식 식사(케밥)를 제공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와 올해 휠체어 240대를 나시리야에 지원한 사실을 거론하자 책임자 같은 사람이 "당신들을 여기 오게 해 미안하다. 한국인들은 우리 친구고 우리들에게 좋은 일 한 것을 알고 있다"며 사과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풀려난 뒤 곧바로 박씨의 승용차를 이용해 6일 오전 11시30분께 바그다드에 있는 자신들의 숙소로 무사히 돌아왔다.

한씨는 지난달 22일 나시리야와 바그다드에 지역개발센터를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확정하기 위해 이라크에 들어왔다며 오는 14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AFP통신은 사드르의 민병대 조직인 알-메흐디군 지도자인 사이드 리야드의 말을 인용해 한국인 2명이 납치됐으며, 이탈리아 병력이 나시리야를 떠날 때까지 석방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으나 결국 오보로 드러났다.

한재광 씨 "보호해 주겠다며 억류했다"

(바그다드=연합뉴스) 박세진특파원= 시아파 민병대원들에게 나시리야에서 14시간여동안 억류됐다 풀려난 지구촌나눔운동의 한재광(33.사업부장)씨는 6일 "억류중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언제 이라크에 왔나.

▲3월22일 들어왔고 14일 귀국할 예정이다.

--무슨 일로 나시리야에 갔었나.

▲지구촌 나눔운동은 바그다드와 나시리야에서 지역개발사업을 할 계획이고 내가 책임자로 부임할 예정이다. 나시리야의 옛 바트당사에 서희부대가 세운 서희기술학교(한국인지원센터)가 있는데 서희부대 철수후 이 시설을 넘겨받는 방안을 부대 측과 협의하러 갔었다. 지난해와 올해 나시리야에 휠체어 240대를 기증했다.

--나시리야 체류 일정은.

▲4월3일 오후 6시쯤 도착해 4일 부도지사와 서희부대 관계자를 만나기로 돼 있었는데 시위로 취소됐다. 5일 오전 상황이 호전돼 한국인지원센터에 갔다.

--억류경위는
▲지원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박모씨의 승용차를 얻어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민병대원의 검문을 받았다. 나는 코리안이고 당신들 친구라고 했더니 무조건 택시에 태우고 본부건물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건물 위치는.

▲내가 묵었던 알자눅 호텔에서 5분거리의 옆 블록이었다.

--어떤 대우를 받았나.

▲거실에 앉히더니 밥을 주면서 왜 왔느냐고 물었다. NGO 요원이고 당신들을 도우러 왔다고 얘기했다. 그때가 오후 3시30분쯤이었고, 다음날 오전 5시20분쯤 풀려났다.

--결박당했나.

▲결박은 없었다. 오히려 책임자 같은 사람이 한국인은 우리 친구고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을 알고 있다. 당신들을 여기 오게 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슨 이유로 억류했다고 보나.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풀어주면 우리를 모르는 시아파 군사조직원들이 스파이로 오해해 공격할 수 있고 호텔 가는 길에서 민병대와 이탈리아 군의 대치가 계속돼 위험하니 보호해 주겠다는 얘기였다. 처음엔 안믿었는데 상당 부분 그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억류중 누가 감시했나.

▲1∼2명이 번갈아 가며 지켰다. 밥하고 물을 갖다 주면서 화장실도 쓸 수 있도록 도와줬다. 오후 4시쯤, 8∼9시쯤, 그리고 또한번 밥을 주더라.

--처음에 왜 강제로 데려갔다고 생각하나.

▲5일 아침 나시리야에서 교전이 있어 민병대원들의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우리를 검문한 친구가 외국인 스파이를 잡는 공을 올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높은 직위의 사람에게 휠체어 전달 사실을 얘기하니까 알고 있다고 했다. 그가 셰이크(대장)에게 그 사실을 얘기해 준 것 같은데 셰이크가 더 있으라고 그런 것 같다. 어쨌든 휠체어 지원이 주효한 것 같다.

--박모씨와는 어떻게 동행하게 됐나.

▲한국인지원센터에서 만났는데 점심을 안먹었다고 해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가 밥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다른 억류자가 있었나.

▲보스니아인으로 보이는 2명이 30분 정도 조사받고 풀려났다.

--이번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보나.

▲가고 싶은 데 못가게 했으니까 잠깐 억류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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