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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낙연 민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국회가 행정부에 요구하는 국감자료는 그 인쇄비만 해도 42억7천만원이 들 정도로 차고 넘친다. 기자들은 의원들이 쏟아내는 보도자료를 읽는 것만도 벅찬 것이 사실. 그런 와중에 민생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국감을 준비해온 한 의원의 국감자료집이 눈길을 끈다.

건교위 소속의 이낙연(전남 함평) 민주당 의원은 '고속철도 개선을 위한 현장보고-KTX를 타보니'라는 제목의 국정감사 참고자료집을 냈다. 25쪽에 달하는 이 자료집에는 해당부처에서 받은 문서가 단 한 건도 인용되어 있지 않지만 고속철도의 문제점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이 의원은 보고서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거의 주말마다 한국고속철도(KTX)를 탄다. 귀향이나 귀경길에 KTX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그 때마다 나는 KTX의 이모저모를 관찰하곤 한다. 보좌관으로 하여금 KTX 경부선과 호남선을 일부러 타게 해보기도 했다.

이 자료는 나와 보좌관의 KTX 경험을 묶은 현장보고서이다. KTX의 매력도 빠뜨리지 않고 배려했다. 그래도 KTX의 문제점이 좀더 많이 지적됐을 것이다. 그것은 KTX를 흠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 KTX가 개선돼 국민의 사랑과 믿음을 받는 교통수단으로 더욱 성장하기 바란다."


이 의원은 지역구에 내려가기 위해 매주 주말 KTX를 이용한다. 전에는 비행기를 이용했지만 지금은 "과거의 기차여행보다 지루함이 덜하고 비행기 여행보다는 낮잠을 좀더 즐길 수 있다"는 이유로 KTX를 이용한다고 한다.

기자 출신인 이 의원은 평소 수첩에 KTX의 문제를 빽빽이 기록해왔고, 국감을 한 달 앞두고는 보좌관에게 경부선 체험을 지시하며 "KTX 나사까지 세고 와라"고 강도 높게 주문. 그 한 달간의 기록이 국감자료집이 되었다.

커튼 걸이가 옷걸이?

30개 항목에 이르는 이 국감자료집은 매우 재밌게 읽힌다. 문제의 핵심을 짚으면서도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게 읽히는 산문체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KTX에는 옷걸이가 없다'는 소제목의 글에선 다음처럼 썼다.

"나는 옷걸이에 상의를 걸었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떤 승객은 선반 위에 웃옷을 올려 두었다. 웃옷을 벗지 못해 그냥 입고 있는 승객도 있었다... 옷걸이는 차창 사이의 벽에 붙어 있다. 그래서 어떤 좌석은 옷걸이가 있고 어떤 좌석에는 옷걸이가 없다.

옷걸이가 있는 좌석을 만나는 것은 순전히 행운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승무원의 설명이 기가 막히다. '아닙니다. 그건 옷걸이가 아닙니다. 커튼 걸이입니다. 자 보십시오…' 승무원은 커튼을 걷어 보였다."

16대 땐 원자력 문제 '현장르포' 고발

동아일보 기자출신의 이낙연 의원은 1990-93년 일본의 동경특파원 재직시절 신칸센을 즐겨탔다. 그 경험을 살려 우리나라 KTX에 대한 국감도 현장감을 살려 준비했다고.

이 의원이 현장보고식 국정감사를 준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6대 국회 산자위 소속이었을 당시에도 원자력 문제점을 '현장르포'로 생생하게 고발한 바 있다.

'원자력 정책의 성공을 위한 문제제기-4개 원자력발전소 인근 지역 현지르포'의 제목의 국감자료집이 그것. 전남 영광, 경남 고리, 경북 울진 등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을 돌며 현장 인터뷰와 사진 등을 생생히 전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 의원의 기록은 개인의 체험에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만난 시민과 승무원들과의 인터뷰를 담고 있어 더욱 생생했다. 국민의 '눈높이'로 KTX에 접근한 것. 특별실에만 있고 일반실 좌석에는 없는 텔레비전 이어폰, 장애인 전용좌석과 역사의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까지가 너무 먼 문제, 화장실과 세면대가 함께 있어 줄이 더 길어진 문제, 경부선에 비해 호남선의 요금이 1천7백원이 비싼 이유 등.

다각도의 지적과 함께 대안도 제시되어 있다. KTX의 저변확대를 위해 계절별, 요일별, 시간대별 요금을 차등화한다거나 홍보문구로 일관하는 KTX 텔레비전 자막에 정차역 안내와 날씨 안내도 넣자는 식.

또한 시민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마주보고 앉는 '중간석'과 '역방향' 좌석의 문제에 대해 프랑스 알스톰사와 계약내용중 "표준가격 및 규정과 기술사양 간에 상충점이 있을 경우 그 결정은 공단(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 내린다"는 점을 들어 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측의 고민도 빼놓지 않았다.

"최근 들어 역방향 좌석에 대한 불평이 많아지자, 이를 전면 순방향으로 교체하기 위한 검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역방향 좌석을 바꾸려면 그 공사비용도 따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알스톰측과의 계약 해지에 따른 손실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1월 1일 경영논리가 도입되는 철도청의 공사화를 앞두고 불안감에 빠져 있는 승무원들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지방의 KTX 역사를 돌면서 역무원들로부터 그런 고민을 여러 차례 들었다. 역무원들은 철도청이 공사화되면 자신들의 신분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새로운 공사체계를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지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토로했다."

▲ 고속철도 KTX.
ⓒ 권기봉
'저속철' KTX 호남선의 졸속개통, 그 배경은

그러면서 이 보고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프랑스 알스톰사와 계약을 잘못 체결했고, 초기에 당국이 졸속대응한 것도 사실이다. 그에 따른 비용은 우리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비용을 감수하면서라도 KTX의 불편이나 문제는 빨리 개선하는 것이 좋다.

그러자면 우선 당국이 솔직해 져야 한다. 자기 조직이 관여한 일이라고 해서 두둔하거나 은폐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과거의 잘못은 잘못대로 깨끗하게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잘못을 시정해 가야 한다."

이러한 현장경험을 토대로 이낙연 의원은 4일 열린 건교부 국정감사에서 "저속철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KTX 호남선이 애초 계획과 달리 '총선'을 의식, 경부선과 동시개통하게 됨으로써 졸속 추진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즉 4월 1일 동시개통을 위해 우리 정부가 계약변경의 대가로 알스톰측에 940억원을 주었다는 것.

"당초 정부는 KTX를 서울-대전 구간만 2003년 12월 우선 개통하고 2004년 4월에는 대전-부산 구간을 개통하려고 했다. 그러나 2003년 3월 29일 건교부가 철도청과 고속철도공간에 공문을 보내 2004년 4월 서울-부산 및 서울-목포까지 함께 개통한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그에 따라 공단은 2003년 6월 30일 알스톰측에 공정단축을 요구했고 알스톰측은 추가비용 940억원을 요구했다. 알스톰측이 제시한 이유는 공단의 계약변경통지(CN24)였다. 그에 따라 계약을 변경했고 그 결과 4월 1일 동시개통되었다. 누가 봐도 4월 총선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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