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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받는 386 의원들 파병 반대 여론이 끓어오르고 있는 가운데 기대를 모았던 386 의원들의 '침묵'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한 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있는 386 출신 의원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처음에는 따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반전평화의 소신은 어디 갔냐'고. '이런 대가를 치러가면서까지 파병할 필요가 있냐'고.

거창한 명분을 떠나서 국민들의 지지를 먹고사는 정치인으로서 끓어오르는 민심을 알고는 있는지,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서 그들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23일 국회에 제출된 파병재검토 결의안에 서명하지 않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었다.

사실 파병문제에 있어서 파병반대 진영에서 한나라당에 건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면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얘기가 많다.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 줄을 잇는 당원들의 탈당 선언

멀리 갈 것도 없이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에는 당원들의 탈당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김선일씨 사건으로 증폭된 파병 논란이 일회적으로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당의 이미지에도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퍼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서명파 의원들은 극도로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파병재검토 결의안에 서명하지 않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수는 124명. 이중 오영식·우상호·이기우·이철우 의원 등 이른바 전대협 출신 386 의원들은 지난 10일 발표된 파병재검토 서명에 참가하고도 국회제출 결의안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지난 2월 13일 추가파병 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고도 이번 결의안 제출에는 참여하지 않은 신계륜·유시민·이호웅·최용규 의원, 파병반대를 공공연히 얘기해오다 '결정적인 국면'에서 입을 다문 김근태·유인태·이미경·장영달 의원 등에게도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지명도가 높을수록 비판의 강도는 배가된다. 지난해 전투병 파병불가를 요구하는 13일간 단식을 했고, "파병하면 의원직을 내던지겠다"고 오버했던 임종석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두고두고 족쇄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23일 내내 수많은 전화에 시달린 임 의원의 보좌관은 "공식 논평 외에는 취재에 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유시민 의원도 22일 만두시식 행사중 <민중의 소리> 기자와 만나 "어느 나라가 이라크에 있는 자기 국민이 납치되었다고 해서 군을 철수시켰는가?"라고 거침없는 발언을 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맹폭격을 당하고 있다.

나머지 의원들은 열린우리당을 향한 따가운 질책을 알고 있을까?

"인터넷에 보니 개혁과 변화를 원하는 네티즌들의 실망이 표출되고 있더라."
(노웅래 의원)
"열린우리당 지지층의 분노는 느끼고 있지만, 어떻게 대응할 지는 고민해봐야…."
(이화영 의원)


그러나 민심을 다독일 만한 묘안은 없다.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소신을 당당하게 밝히는 김영춘 의원은 아무 말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보다는 나은 축에 속한다. 김 의원은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파병반대론을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노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 의원 대다수가 정신적으로는 파병에 반대하지만, 민심이나 여론의 지지에 대통령과 여당으로서의 책무까지 맡겨버릴 수 없죠. 비유를 하자면, 직장상사가 맘에 안 든다고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직장을 때려치고 나갈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북핵 해결 등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입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예요.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돼서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고라도 우리를 뒷받침할 수 있다면 파병 철회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고, 안보가 불안해지고, 군사적인 큰 변화를 감수할 수 있다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대가가 너무 큽니다. 그런 것을 치를 만한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김 의원 외에도 답답해 하는 사람들은 당내에 많다. 한 당직자는 "대미 협상과정에서 파병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상황 전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며 "국민들은 '그게 도대체 뭐냐? 밝히라'고 하지만, 외교문제라는 게 당대에 얘기할 수 없는 게 태반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상사가 맘에 안든다고 가장이 직장 때려칠 수 있나?"

▲ 23일 오전 남총련 소속 대학생 200여명이 광주 충장로 삼복서점 앞에서 광주전남 국민행동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정부 규탄 기자회견 및 김선일씨 추모기간을 선포하고 열린우리당 광주광역시당 항의방문을 시도했으나 이를 가로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여당으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의원들도 많다. 당초 재검토 결의안에 서명하려고 했던 이화영 의원은 '인질 처형' 이후 마음을 바꾼 케이스다. 이 의원은 "흐름에는 동의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며 "지금은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정확한 사태 파악이 필요하기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총선 기간 동안 '파병반대'를 공공연히 외쳤던 추미애 민주당 전 의원을 꺾고 국회에 등원한 김형주 의원의 생각도 마찬가지. 일부 의원들의 파병반대 운동은 의미가 있지만, 지난 의총에서 여러가지 전제조건을 달아서 암묵적으로 정부의 파병안을 수용했기에 이번 사태에 대한 연대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당내 소장개혁파 의원 모임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 내에도 재검토 결의안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자는 의견들이 많았다"며 "결의안에 서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어떤 게 진정으로 책임을 지는 자세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덧붙였다.

파병 문제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으며 열린우리당의 개혁동력까지 유실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MBC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언론개혁에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노웅래 의원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사람중 하나이다.

노 의원은 "모든 것이 개혁과 변화로만 갈 수 없다"며 안보문제를 예외로 꼽았다. 노 의원은 "마지못해 가는 것도 억울한 판에 테러집단이 사람을 죽였는데, 파병을 유보하며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라며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진영에서는 불만스러울 수 있지만 이번 사안으로 개혁의 흐름이 없어지거나 끝장나지는 않는다, 이번 사안으로 질책을 받더라도 큰 틀에서는 욕먹어도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파병반대 여론과 정면충돌의 길을 택한 참여정부와 국회 과반수 여당에 대해 감정적인 분노를 넘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기에는 이들의 변명이 함량미달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반미면 어떠냐'고 후보시절 거침없이 말했던 대통령부터 학생운동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소리 높여 외쳤던 386 의원들까지 정부 여당은 그동안 지지자들의 기대치를 주체할 수 없이 부풀려놓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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