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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회기종료를 불과 20분 앞둔 3월 2일 밤 11시40분. 많은 국민들이 잠자리에 든 그 시간, 여의도 국회에서는 날이 밝으면 깜짝놀랄 '거사'(擧事)가 진행되고 있었다.

불과 20분전, 법사위는 문제의 선거구획정안을 포함한 정치관계법을 여야합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미 밤 9시경, 민주당 유용태 원내총무와 한나라당 홍사덕 원내총무 사이에서는 여야합의를 파기하는 수정안을 통과시키자는 '밀약'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은 음모였다. 정개특위와 법사위에서 여야합의 통과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 민주당과 한나라당 총무들은 그것을 뒤집어엎을 다른 안을 모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밀약에 따라 민주당 양승부 의원 등은 선거구획정을 재조정하는 수정안을 기습 상정하였다. 이어 박관용 의장은 표결을 선언하였고, 한나라당 의석에는 "민주당 수정안에 대하여 찬성표결 요망"이라는 총무 명의의 메모가 돌았다.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의 등 뒤에 총을 난사하고 사라져버리려던 비열한 작전이었다. 마지막 20분동안 상대 당이 손쓸 틈도 주지않고 밀어붙여 일단 수의 힘으로 통과시켜 버리려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 되면 우리 국회가 정치라는 말을 입에 담기가 어려워진다. 여야합의도 소용없고, 당론도 소용없다. 밀실에서 이루어진 담합에 따라 기습적으로 합의를 파기하고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모습. 그같은 변칙적 행태가 의사당 한복판에서 버젓히 자행되는 판에, 정치도의니 뭐니 따지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그들은 정치권의 '막가파'였던 것이다.

현행 선거법 24조 5항은 "국회가 지역선거구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는 때에는 선거구획정위의 획정안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구획정위가 마련한 획정안을 오직 당리를 위해 기습적으로 뜯어고친다면, 도대체 선거구획정위원회는 무엇하러 두는 것인지 묻지않을 수 없다. 김성기 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장은 "그렇게 바꿀 것이면 뭐하러 남에게 (선거구획정을) 시키냐"며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비판을 했다고 한다.

파문이 커지자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는 사과를 했고, 민주-한나라 양당 내부에서는 비판론이 대두되고 있다 한다. 이번 일이 얼마나 무모한 시도였는지는 두 당 내부의 부정적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호남의석 늘리기 욕심과 한나라당의 방탄국회 필요 사이의 담합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행위가 용인되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구조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서는 그렇게 쓴소리를 잘해대는 조순형 대표가, 어째서 자기 당의 이같이 부도덕한 행동은 이끌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미 국회가 국민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지역구 의석 15개를 늘린 배경에는, 민주당의 결사적인 '호남선거구 지키기'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고서도 모자라 다시 김태식 의원을 구하기 위해 이같은 무리수를 둔 것이다. 적어도 남에게 쓴소리를 하기 위해 민주당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민주당의 들러리를 서다가 여론의 폭탄을 맞게된 한나라당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최병렬 대표가 물러난다며 '제2창당' 운운 하던 것이 며칠이나 지났던가. 이번에야말로 정말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것처럼 요란하다가, 김용갑 의원까지도 무사히 공천받더니 다시 방탄국회 얘기 꺼내고…. 결국 방탄국회를 위해 민주당의 들러리역을 자처하고 나서고 말았으니….

결국 '도로 한나라당'이다. 이렇게 민심을 못읽어 가지고서야 총선을 어떻게 치르려고 하는 것인지, 물론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정말 보기에 답답하다.

두 당은 최근 들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탄핵을 받을 이유가 있으면, 국민의 동의를 얻어 법절차에 따라 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 전에 분명히 해야 할 문제가 있다. 두 당이 남의 탄핵을 거론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자격이 어떤 상태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 될 때,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한편의 코미디가 되고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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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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