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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경기도 연천 소재 천혜굿당에서 열린 신내림굿을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현장취재를 했습니다. 신비한 강신무 신내림굿의 생생한 현장을 2회에 걸쳐 내보냅니다... 글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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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내렸는데도 이웃집 할머니 같네~


▲ 12거리 굿을 하는 정원씨.
ⓒ 한성희
천혜굿당에서 내림굿을 받는 정원씨는 이미 7년 전에 내림굿을 받은 적이 있다. 실제로 내림굿을 받는다 해서 다 점을 보고 굿을 할 수 있는 만신이 되는 건 아니다. 신이 실려서 공수를 내리는 '말문'이 트이지 않아 몇 번이고 하는 경우도 있고, 신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제대로 인도해주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내림굿을 받고도 무당으로 나서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만신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70% 정도라 한다.

"왜 내림굿을 받았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하나요?"
"인간적인 갈등이 컸기 때문이지요."

서낭놀음과 부채찾기, 방울찾기가 끝나고 중간에 잠시 쉬면서 밤참으로 국수를 먹었다. 반찬이라곤 딱 김치 하나뿐. 밤새 뛰었던 정원씨와 구 법사는 밤참도 먹지 않고 다른 방으로 가서 누워버렸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사방에 가득 제물이 놓인 굿당에서 김치 하나 달랑 놓고 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이제 시작하자는 할머니 만신의 재촉으로 12거리를 시작한 시간이 새벽 5시 반.

무엇보다 궁금했던 게 작두를 타는 것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작두를 탄다고 한다. 아침 10시나 돼야 작두를 타게 될 것이라는 할머니 만신 말에 그때까지 여기서 버티긴 무리라는 생각에 6시에 이곳을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노할머니 만신은 "내림굿은 아주 힘들어서 다시는 내림굿 안하려고 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어깨를 주무르며 장구를 잡는다. 겨울에 굿을 할 때는 바깥을 연신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만신들은 감기가 안 떠난다고 한다.

▲ 열두거리 굿.
ⓒ 한성희

옥황상제는 제우스, 용왕은 포세이돈?

무당들이 기본적으로 모시는 신은 칠성신, 장군신, 산신령, 선녀신, 동자신 등 12신이다. 이 신들의 무복을 입고 12거리 굿 '노는' 것이 끝나면 작두를 탄다고 한다.

문득 그리스 로마 신화의 12신과 우리 무속의 신이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올림포스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가 무속에선 옥황상제 격이고 삼지창을 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무속에선 용왕 격이다. 비너스는 무속의 선녀신 정도 될까? 신들의 심부름을 하는 헤르메스는 동자동녀와 역할이 닮았다.

신들은 직접 움직이지 않으므로 동자동녀가 부지런히 심부름을 해야 일이 성사된다. 동자신들은 어린아이의 심성이기에 과자나 장난감을 좋아하고 만신들에게 장난감 자동차를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단다. 깜박 잊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동차 키를 감춰버리는 심술을 부린단다. 서양의 요정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올림포스 신들이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갖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자신을 위한 신전에서 예언을 하며 복을 주는 것도 흡사하다. 올림포스의 신이 그리스와 로마의 토속 자연신인 것처럼 무속의 신들도 자연신들이다. 무당을 만신(萬神)이라 하는 것도 산과 바다, 강, 조상 등 만 명의 자연신을 일컫는 말이다.

▲ 신어머니 최씨가 12거리 굿을 하는 신아들 정원씨에게 무복을 입혀주고 있다.
ⓒ 한성희

12신을 맞는 12거리 굿

12거리란 무속에서 가장 중요한 12신을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12신의 옷을 입고 하나 하나씩 맞아들여야만 끝난다. 중간쯤 진행되자 구 법사가 한꺼번에 무복 서너 벌을 정원씨 팔에 안겨주라며 최씨에게 말한다.

"나오는 대로 봅시다. 제자(정원씨) 입에서 누구(신령 이름)라고 스스로 나오게 하세요."

12거리는 정원씨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생생한 연극이었다. 12신의 역할을 혼자 해내는 것이다. 두 발을 모아 뛰다가 신이 올라 선녀무복을 입고 애교를 떠는 정원씨, 동자옷을 들고 어린아이로 돌변하는 장면, 그러다가 다른 무복을 걸치고 벼락같이 소리 지른다.

"글문도사다!"
"부적도사다!"

구 법사가 이제 중요한 신은 다 맞아들였다고 희색이 만면하다. 12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30분만에 12거리가 끝나자 이미 한번 내림굿을 받았기 때문에 빠른 거라고 할머니 만신이 일러준다.

▲ 외날 초승달 작두.
ⓒ 한성희
7년만에 도전하는 작두 타기

"지금쯤 몸이 새털같이 가벼울 거예요. 이제 다 넘겨줘 버리고 작두를 타게 하세요."

구 법사가 신어머니 최혜숙 무당에게 어서 넘겨주라 한다. 밤새 좁은 굿당에서 비집고 앉아 다리가 저리고 쥐가 나는 몸을 펴며 모두 홀로 나갔다. 우선 세숫대야에 떠온 물로 신어머니 최씨가 정원씨 발을 씻겨준다.

작두신령을 맞아들이는 것은 내림굿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별성장군이라고도 하는 작두신령은 무당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작두신령 파워를 받지 못하면 무당으로 나서기 어렵다 한다. 정원씨가 7년 전 내림굿을 받고도 작두를 타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 정원씨가 오방기를 들고 작두 위에 올라섰다. 이 초승달 작두는 날이 날카롭게 서 있다.
ⓒ 한성희
초승달 모양으로 날이 선 작두 위로 정원씨가 올라서서 사방으로 돌기 시작한다. 사실 기자는 은근히 떨려 작두날 위에 올라선 정원씨의 발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작두날 위에 서서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나서야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었다.

작두는 외날 작두와 쌍날 작두가 있고 외날 작두가 당연히 타기 힘들다. 쌍날 작두는 작두날이 두 개 나란히 붙어 있어 힘이 덜 든다 한다. 굿을 하기 전에 날을 시퍼렇게 싹싹 갈아야 작두 위에 올라서면 편안하고 날아갈 듯 가볍다 한다. 강신무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한 엑스터시 현상이다. 정원씨가 타는 작두는 외날 작두다.

"작두 위에서 뛴다고 하는데 뛰지 않네요?"
"처음부터 작두 위에서는 못 뛰어. 자꾸 올라봐야 뛰지."

내심 말로만 듣던 작두 위에서 뛰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좀 실망이었다. 수십 년간 굿을 했다는 노할머니는 작두 위에서 뛸 수 있다 한다. 초승달 모양의 초승달 작두와 일직선의 평작두가 있는데 외날 평작두에서 뛰기가 가장 어렵다 한다.

외날 평작두는 날이 가늘고 굿이 시작하기 전에 숫돌에 새파랗게 갈아서 머리카락을 올려놓으면 잘라질 정도다. 초승달 작두는 숫돌에 갈 수 없기에 사포로 문지른다. 평작두에서 뛰는 무당은 거의 없고 작두 위에서 뛰는 건 날이 두껍고 무거운 초승달 작두에서나 가능하다는 최 보살의 설명이다.

작두 타기가 끝나자 소머리와 쇠갈비를 차례로 삼지창에 꽂아 세우는 '사슬 풀기'가 있었다. 사슬을 푸는 건 굿을 신령들이 잘 받았는지 확인하는 의식이다. 부정을 타거나 신의 공수를 무당이 제대로 전달 안하면 수십 년 경험의 무당이라도 삼지창을 세우지 못한다 한다.

▲ 정원씨가 신이 가시라고 북어로 소갈비를 치고 있다.
ⓒ 한성희
참석했던 사람들이 나와서 돈을 붙였다. 소금을 담은 작은 양파자루 위에 삼지창에 꽂은 소갈비가 버티고 서 있다. 소갈비를 꿰고 서 있던 삼지창은 구 법사가 북어로 탁탁 쳐도 쓰러지지 않는다.

"안 가시네? 그럼 더 놀다 가세요."

정원씨가 사람들에게 공수를 주고 다시 북어로 치자 옆으로 쓰러진다. 이제 가셨다면서 물동이 올라서기를 해야 한다고 일월신상을 들고 홀로 다시 나갔다. 물동이 올라서기가 끝나면 이제 내림굿은 다 마치는 것이다. 일월신상은 천궁줄이고 새벽에 하는 의식이다.

작두타기에 대면 창호지를 씌운 항아리에 올라서는 것은 쉬운 일이다. 굿당으로 다시 들어온 정원씨는 구 법사의 지시에 따라 먼저 신어머니에게 한 번 반의 절을 올린다. 신에게는 3번이지만 사람에겐 한번 반 절을 하는 게 무속의 예절이다.

"정도를 걸어가는 제자가 되십시오."

신할아버지 구 법사가 두 번째로 절을 받았다.

"항상 상식을 벗어나지 말고 일을 하세요. 비상식으로 가지 말고 상식선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십시오."

노할머니와 김 보살에게 차례로 큰절을 하며 애동 박수 제자의 인사를 드린다.

"제자다운 제자가 되세요."

김 보살의 말에 노할머니 만신은 그것이 제일 무서운 말이라고 한다.

무당은 신과 인간의 중개 역할

▲ 날이 밝아오자 일월성신 상을 앞에 두고 흰 창호지를 씌운 물동이 올라서기를 끝으로 내림굿이 끝났다.
ⓒ 한성희
신내림굿을 마친 정원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 신내림을 받은 심정이 어떤가요?
"아주 편안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우울해서 의욕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좋은 소식이 들어오면 기쁘고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하는 것과 같은 심정입니다."

- 신이 오를 때 인간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가요?
"반반씩이지요. 의식을 잃는 건 아닙니다. 내 의식은 분명히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너무 들어가면 실패를 하는 거지요."

- 무당이란 어떤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신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간에게 중개하며 도와주는 역할이지요. 내 의지가 아니고 신의 의지라서 신의 뜻대로 하는 몸이 되는 겁니다."

- 구 법사님도 화장을 했던데 왜 화장을 하지요?(굿을 시작할 때 구 법사 얼굴에 화장을 한 것이 보였고 정원씨도 화장을 하고 나왔었다.)
"선녀신이 몸주로 들어오면 화장을 하게 됩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남자만신에게는 대개 여신들이 들어오고 여자만신에게는 남신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선녀신이 들어오면 화려한 것이 당기고 화장도 하게 됩니다."

박수들에게 선녀신이 들어오면 파운데이션과 '루즈'를 바르는 화장을 하고 붉고 화려한 옷을 입게 되며 목소리도 여성스럽게 변하게 된다. 아까 할머니 만신이 혀를 차면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젤 불쌍한 게 만신 남편과 부인이야. 만신은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거든. 신에게 맡겨진 몸이지."

이제 8시간에 걸친 내림굿은 끝났다. 아침 7시, 훤해진 마차산의 기온을 추웠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말고 가라는 구 법사의 말에 따라 미련 없이 굿당을 나왔다. 밤새 내린 서리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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