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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경기도 연천 소재 천혜굿당에서 열린 신내림굿을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현장취재를 했습니다. 신비한 강신무 신내림굿의 생생한 현장을 2회에 걸쳐 내보내려 합니다...필자 주

▲ 내림굿을 받는 정원씨의 신어머니인 최혜숙 만신.
ⓒ 한성희
천혜굿당(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양원리)이 있는 마차산으로 가는 길은 어두운 시골 동네라서 쉽사리 찾기 힘들었다. 겨우 들어선 양원리를 지나쳐 큰 도로로 나갔다가 도로 차를 돌려 전화로 확인했다. 차 하나 겨우 들어가는 어두운 시골길을 올라가 길이 끝나는 마차산 자락에 있는 천혜굿당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 45분. 밤 11시에 시작할 신내림굿을 보기 위해 밤중에 달려온 참이다.

마차산 추운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바라보니 천혜굿당은 그 흔한 팻말도 보이지 않고 겨우 사물을 분간할 정도의 전등 하나만 켜져 조용한 가운데 어둠이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1년만에 이룬 신굿 취재

1년 전 우연히 구 법사(40·서울 마포구)와 무속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신굿을 취재하고 싶다 했더니 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신굿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 며칠 전이었는데 '신내림굿'이라고 한다. 이른바, 무당의 길로 들어서는 절차인 신내림굿은 어떤 것일까?

문을 두드리자 얼굴만 빼꼼 내민 할머니가 굿당은 2층이라고 해 엉성한 조립식 건물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너무 조용해서 문을 살짝 열고 보니 콘크리트 바닥의 홀 옆으로 방문이 몇 개 보인다. 문 옆에는 작두와 떡, 과일 등 제물이 진설된 상이 있었다.

▲ 정면의 안당상, 오른쪽은 일월상, 왼쪽이 조상상이다.
ⓒ 한성희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 굿당은 서너 평이나 될까할 정도로 좁았다. 정면은 안당이라 해서 사과, 배, 파인애플, 술 등 제일 푸짐한 음식이 차려진 상이 있고 신장신(장군신), 산신령, 동자동녀, 대신할머니신, 칠성신의 화상이 걸려 있다.

오른쪽은 일월상이 펼쳐 있고 커다란 소머리와 쇠갈비가 날것으로 놓여 있다. 상 옆에는 대신방울, 갓, 삼지창, 칠성칼, 부채 등 무구가 함께 놓였다. 대개 돼지를 잡는 굿을 한다고 하는데 소를 잡는 굿은 보통 큰굿이 아니다.

왼쪽에 있는 상이 조상상이다. 역시 떡과 과일, 전 등 푸짐한 상이 마련됐다. 무속에서는 조상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조상을 위한 상을 따로 차린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우리들의 잔칫날입니다. 아주 좋은 날이니까 같이 즐기고 축하해주십시오."

굿 준비를 하느라고 좁은 굿당에 베를 펼치고 제문을 쓰고 있던 구 법사가 합장을 하면서 하는 첫 말이다. 오늘 내림굿을 받을 정원(40·서울 성북구)씨가 붉은 바지저고리에 검은 조끼 차림으로 들어온다.

해외에서 굿 의뢰하면 비디오로 찍어 보내줘

이번 신내림굿에는 정원씨의 신어머니가 될 무녀 최혜숙(46·경기 파주시 금촌2동) 보살과 무녀 김 보살(36·서울 마포구), 최 보살의 신 아버지가 되는 박수무당인 구 법사가 주관하고 69세의 노할머니 만신이라는 무속인을 포함해 모두 4명이 진행하게 된다.

강신무의 무속 가계는 신내림굿을 받는 무속인에게 신어머니, 신아버지로 엄격하게 일가를 이루게 된다. 같은 무속인에게 내림굿을 받으면 그들은 신형제가 된다. 내림굿은 혼자 하기 힘들기 때문에 보통 4~5명이 함께 일한다. 이날 내림굿을 받는 정원씨는 최혜숙씨에겐 신 아들이 되고 구 법사는 정원씨에게 신할아버지가 된다.

▲ 부채와 방울을 들고 신이 오르는 정원씨가 뛰고 있다. 앞에 있는 사람이 구 법사.
ⓒ 한성희
이날 내림굿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13명. 정원씨의 부인 윤씨(36)와 친구, 친척이 4명, 정원씨와 만신 4명, 비디오 촬영기사와 사진을 찍는 사람, 기자가 전부다.

요즘 굿은 비디오와 사진 촬영이 기본이다. 정원씨도 신의 제자로 들어서는 의식을 기념으로 남기기 위해 비디오와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굿을 의뢰할 때, 비디오로 촬영해서 의뢰인에게 보내준다고 한다. 좁은 굿당이라 비디오카메라를 고정시키지 못해 기사가 애를 먹는다.

내림굿을 받으면 '애동무당'이라 해서 3년간은 굿을 배우고 기도를 하며 계속 신을 받아들이고 신계를 배워야 하는 수련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신어머니가 될 최씨는 이제 2년이 안된 애동이다. 정원씨를 신아버지 구 법사에게 데려갔더니 최씨가 신어머니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한다.

자기가 좋아서 무당이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신내림을 거부 하다가 병을 앓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까지 치고 난 뒤에 밑바닥에 끌어내려져서야 겨우 승복한다고 한다. 강신무의 신비한 무병(巫病)은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내림굿을 받으면 그들은 신의 제자가 돼서 무당의 길을 간다.

강신무가 하는 굿은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민속신앙에 속한다. 한강 이북은 강신무가 강하고 이남 지역은 세습무가 내려왔다. 강신무는 반드시 신병이나 무병을 앓고 난 뒤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

▲ 굿을 시작하면서 부정을 씻는 경문을 외는 구 법사와 절을 하는 신어머니 최씨와 정원씨. 비디오 촬영기사가 좁은 굿당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 중이다.
ⓒ 한성희
[산거리 서낭놀음, 서낭문 열기]

정각 11시, 구 법사가 북을 치면서 경문을 외우며 내림굿은 시작됐다. 이 경문은 내림굿을 하면서 부정을 씻어내는 과정이다. 한참 지나자, 장구를 치던 노할머니 만신이 빨간 무복을 입고 부채를 들고 신을 맞는 춤을 추자, 징과 꽹과리와 바라가 울리기 시작한다. 이제 서낭문을 여는 것이다. 노할머니 만신에게 용궁 줄로 온 불사 조상이 왔다한다.

"이 정성을 대면하니 기분이 좋구나. 부정을 벗겨주고 열쇠를 줘야겠는데 열쇠를 줄까, 말까? 줄까?"
"예예, 그러셔야죠."

구 법사가 얼른 대답을 한다.

"(정원씨가) 받았으면 홀랑 벗어야지. 진작에 굿을 했으면서도 니가 고집이 세면 얼마나 세고 괜히 이 직장 저 직장 옮겨다니면서 돈 좀 홀랑 까먹었구나. 또 그럴 거냐? 안 그럴 거냐?"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 할머니, 제자 좀 봐주세요."
"약 올라 죽겠지?"

할머니는 부채로 얼굴을 절반쯤 가리고 개구쟁이처럼 히죽 웃었다. 서낭문을 열 때는 조상신과 장군신장의 합의를 봐야 한다. 무속의 신들은 자연신이라 인간의 감정과 비슷하며 신들끼리 질투하고 싸움을 하며 합의를 보지 못하면 그 등쌀에 죽어나는 게 제자들이라 한다.

▲ 노할머니 만신이 입에 칼을 물고 정원씨에게 서낭놀음을 하는 중이다.
ⓒ 한성희
"굿도 빨리 배우것다. 제자 노릇 잘해라."
"할머니 짓궂게 그러지 마시고요. 어서 내려 주세요."
"일어나, 임마. 건방지게 어딜 앉아 있어."
"예예."

구 법사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원씨 부인 윤씨가 할머니 만신에게 만원권 두 장씩 돈을 꽂아주자 최 보살이 눈짓으로 말린다. 다음부터는 한 장씩만 꽂으라 한다. 할머니와 구 법사의 입씨름(?)을 듣자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밌다. 새벽 1시가 되자 서낭놀이가 끝났다.

▲ 구 법사와 신어머니 최씨가 정원씨에게 본격적으로 내림굿을 하는 중.
ⓒ 한성희

[방울과 부채 찾기 시험]

▲ 신이 올라 뛰고 있는 정원씨.
ⓒ 한성희
이제 불사거리를 시작하면서 정원씨가 신내림을 본격적으로 받는 차례다. 지리산과 태박산, 일향산 등에서 이미 산굿을 마쳤고 말문이 트여서 왔다고 하지만 정원씨가 쉽게 신내림굿을 마칠지는 의문이다. 할머니만신이 자리로 돌아와서 장구를 잡자 신어머니 최씨가 무복을 입고 나섰다. 정원씨에게 신을 내리게 하는 의식은 신어머니 몫이다.

"언제 끝나나요?"
"그야 알 수 없지 아침 10시가 될 수도 있고 낼 종일 걸릴 수도 있어."

새벽 서너 시경이면 끝날 것이라고 짐작하고 왔던 기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최씨는 정원씨에게 무복을 입히고 방울과 신장대를 들게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불사줄에서 조상신을 받아오는 과정이다. 밖을 내다보니 두 손을 치켜들고 하늘을 향한 정원씨의 모습이 보인다. 추운 바람이 몰아친다.

이윽고, 신장대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마구 떨린다. 신이 내리는 것이다. 마구 흔들리는 신장대를 치켜들고 굿당에 들어온 정원씨가 두발을 모으고 뛰기 시작한다. 꽹과리와 장구, 북과 바라를 치는 만신들의 손이 빨라지면서 소리가 고조됐다.

"점사 할머니 오셨다!"

▲ 점사할머니 신이 실려서 부인 윤씨에게 점을 쳐주는 정원씨. 오른쪽 바닥에 놓인 하얀 털이개 같은 것이 신장대.
ⓒ 한성희
강신무에게 점술은 아주 중요하다. 이 점술을 보는 신이 할머니 조상을 몸주로 불사줄을 잡고 왔다 한다. 구 법사가 정원씨에게 작은 상을 펼쳐주고 점사를 보라고 한다. 막 신이 내린 애동무당은 신발이 강해서 점술이 용하다. 부인 윤씨가 복채를 놓고 앞에 꿇어앉는다.

"저놈이 속을 무지 썩였구나. 내 다 안다. 걱정 마라, 내가 돌봐주마."

자애로운 할머니의 신이 내린 남편 앞에 앉은 윤씨, 그 동안의 설움에 눈물을 펑펑 쏟는다. 굿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점을 보고 나자 구 법사가 묻는다.

"할머니, 방울을 누가 감췄는데요. 여기 있는 만신 중에 방울 감춘 사람을 찾아보세요."

상을 치우고, 다시 장구와 바라에 맞춰 한참 뛰던 정원씨가 신장대를 흔들며 갑자기 기자 뒤를 내리친다.

"거기가 아니에요. 할머니, 다시 찾아보세요. 한 번 더 놀아보시고요."

"인간의 마음이 많으면 점사를 못 뽑아"

다시 정원씨가 앞을 보며 뛰기 시작하자 구 법사는 바라를 치던 김 보살 뒤에 감춘 방울을 꺼내 정원씨 부인 윤씨 뒤에 감춰버리고 눈짓으로도 알려주지 말라 한다. 뛰다가 다시 신장대로 내리친 곳이 김 보살. 다시 '놀아 보라' 하면, 뛰고 찾고 틀리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러나 정원씨는 찾지 못하고 계속 김 보살 뒤를 살핀다. 틀리면서도 계속 같은 곳을 찾는 것이 바보스러울 정도다.

"나가서 찬물 끼얹어버려! 아예 발가벗기고 찬물 확 끼얹어!"

구 법사가 바라를 치던 손을 멈추고 벼락같이 소리를 지른다. 예쁘장하게 생긴 구 법사의 얼굴에 서슬이 퍼렇게 돋는다. 풀이 죽은 정원씨는 최 보살과 밖으로 같이 나갔다. 구법사가 기자를 가리키며 말을 한다.

"처음에 대주님 뒤에 감추려고 했다가 마음을 바꿨더니."

그래서 정원씨가 내 뒤를 짚은 것이라 한다.

"무당 되기가 쉬운가? 그렇게 쉬우면 누구나 다 하지. 방울 찾기는 아직 좀 이른데 시켜봤어."

노할머니 만신이 장구를 멈추고 어깨를 주무르며 한숨을 내쉰다.

"왜 방울을 찾게 하지요?"
"그런 훈련 거쳐야 점사를 쏙쏙 뽑아내지."
"점사 할머니 신이 왔다면서요? 신이 왜 방울을 못 찾나요?"
"신이 제자를 가지고 요리조리 흔들어 보는 거야. 인간의 마음이 많으면 점사를 못 뽑아."

▲ 신어머니 최씨에게 절을 하는 정원씨.
ⓒ 한성희
신이 애동 무당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란다. 인간에게 실려서 신어(神語)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마음이 신의 마음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있으면 점술이 정확하지 않단다. 한참 뒤에 찬물을 뒤집어쓰고 들어온 정원씨가 다시 한번 뛰다가 신장대로 벼락같이 단번에 부인 윤씨의 뒤에 숨긴 방울을 찾아냈다.

"이번엔 부채를 숨겼는데 어디 있는지 한 번 찾아보세요."

최 보살 뒤에 숨긴 부채를 찾는 데 두어 번 실패했다. 다시 찬물을 뒤집어쓰러 나갔고 얼굴에 찬물을 뚝뚝 흘린 채로 들어와서 부채를 찾아냈다. 방울과 부채 찾기 시험이 겨우 통과한 것이다. 시험을 하느라 찬물을 쓰고 들어와서 실패하고 다시 찬물을 쓰고 뛰고 하는 사이에 어느덧 새벽 4시가 됐다. 상을 앞에 갖다놓고 다시 점사를 보려 정원씨가 앉자 구 법사가 기자를 부른다.

"대주님, 나오세요."

취재를 하면서 난생 처음 보는 신내림굿이 신기하기도 했고 내심 재미도 있었다. 신과 인간이 같이 출연하는 살아 있는 연극을 한 편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연극판에서 관객으로 구경만 할 생각은 없던지라 동참한다는 기분으로 복채를 놓고 앞에 앉았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너 잘난 맛에 사는 놈이다만, 아슬아슬 외줄타기 같은 좁은 길을 걷고 있구나."

아까는 점사를 보던 사람들에게 지극히 사적인 얘기까지 들춰내면서 눈물을 쏟게 하더니 이 무슨 형이상학 같은 추상적 공수람? 구 법사가 궁금한 것을 물어 보라 한다. 점을 칠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 지극히 원론적인 것을 묻기로 했다.

"올해 돈 좀 벌겠어요?"
"못 벌어."

딱 자르면서도 점사 할머니는 딱하다는 듯 어딘지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신이라 해서 다를 줄 알았는데 이웃집 할머니 같이 편하네?

"아니 할머니, 방울도 찾고 부채도 찾은 뒤에 처음 보는 점사인데 저를 잘 봐주셔야 앞으로 잘 보지요. 돈 벌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올해 명패(승진이나 명예)는 하나 잡겠어."

점점 재미가 났다. 난처한 듯한 할머니 얼굴을 보며 더 짓궂게 들볶았다.

"전 명예보다 돈이 필요한데요? 그러지 말고 돈 벌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명패는 하나 들어와."

문득 옛날 굿 구경 가는 사람들이 이런 재미로 참석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유지나 부자들은 5일에서 1주일까지 굿을 하고 마을 사람 모두가 참석하는 축제 자리기도 했다. 무당을 통해 인간적인 언어로 신들과 공수를 주고받는 이런 과정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회이기도 했을 것이다.

신이 실리려 할 때마다 정신없이 빨리 내리치는 장구와 징소리가 귀에 익었다. 어디서 듣던 가락일까? 김덕수의 사물놀이가 최고의 절정에 이를 때 듣던 그 장단이었다. 우리 민족이 듣고 즐겼던 그 리듬이다. 마차산의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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