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제1회 한국가요제 대상 시상장면, 왼쪽이 김명곤 국립극장장 가운데가 이정표
ⓒ 국립극장
지난 18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가야금 연주자 출신의 이정표가 대상과 상금 1천만원을 차지했다. 자작곡인 '찬비'를 부른 이정표는 대학밴드 'FUZE'의 보컬을 맡아 2001년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번 한국가요제를 통해 실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되었다.

70여개 팀의 예선참가자들 중 12팀이 본선에 올라 열띤 경연을 벌인 이날 무대는 화려하고 세련되어 신인들의 경연대회장으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이 만든 반주음악(MR)을 틀거나 이용탁이 지휘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하는 형태로 실력을 뽐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모습이 가끔씩 보이지 않았다면, 이번 가요제를 여느 가요제와 비교하기는 힘들었다. 한국가요제는 국악에 얽매이기보다는 좀더 자유롭게 국악에 접근해보고자 하는 주최측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번 한국가요제에 입상자들은 각기 뚜렷한 개성을 담고 있어 향후 이들의 활동이 주목된다. 그룹 토리의 '신아리랑'(장원), 민은경의 '사모곡'(차상), 김잔디의 '비누'(차하) 등은 가요제가 열리는 동안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 제1회 한국가요제 차상 수상자 민은경
ⓒ 김기
이번 한국가요제는 민간기업인 르노삼성측에서 먼저 국립극장측에 제의를 해온 매우 독특한 경우여서 흥미를 더해주었다. 기업에서 돈을 내놓고 이러한 일을 해보자 제의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 최상화 예술감독이 흔쾌히 동의하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는 최근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최상화 예술감독이 취임하면서 보인 일련의 변화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국악을 대중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대중의 시각에 맞게 제시하는 시도의 하나로 보여진다.

일부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없지 않겠으나 21세기 국악의 활로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실험적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변화의 조짐이 아닐 수 없다.

심사 발표가 끝난 후 모두들 대상 수상자인 이정표에게 관심이 모아졌다. 이정표는 국립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악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재원이었다. 올 8월에 대학을 졸업한 이정표는 현재 가야금이 아닌 미디음악 작곡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양재동에 작업실을 얻고는 오로지 대중음악 창작에 온 전력을 다하고 있다.

▲ 이정표
ⓒ 김기
국악계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정표가 대학 졸업과 함께 가야금을 뒷전으로 물린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느껴왔던 전통음악에 대한 고민 탓이라고 한다. 그 시절만 해도 크로스오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던 자신의 음악에 한계를 느꼈다는 것. 그래서 대학에 진학해서는 밴드에 가입하고 대중음악에 대한 몸 갖추기에 돌입한 것이다.

24살의 당찬 이정표는 흑인음악을 좋아한다. 그리고 여러 드라마음악을 통해 싱어송라이터 이정표의 이름을 굳혀가고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풀하우스>에서는 '샤랄라송'을 불러 관심을 끌었고,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해신>에서는 오랜만에 가야금연주를 했다.

이정표는 국악가요보다는 본격 대중음악을 만들고 노래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10월에 있었던 국악축전의 창작국악 경연대회에는 애초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한국가요제의 경우는 굳이 국악이나 퓨전을 거론치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이정표가 작곡해서 부른 '찬비'는 해금과 모듬북이 함께 무대에서 연주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회가 요구했다기보다는 노래에 대한 작곡자의 의도일 뿐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렇지만 한국가요제조차 이정표는 자신이 하는 대중음악의 기초작업에 지장이 있을까 하여 처음에는 참가를 망설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로 참가한 이번 대회를 위해 새로 만든 곡인 '찬비'는 작곡가인 이정표 자신의 진솔한 내면을 드러냈다고 한다. 20대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심경을 노래했다.

가요제 시상이 끝난 후 만난 이정표는 비교적 덤덤한 편이었다. 부상으로 받은 상금으로 음악작업을 할 수 잇는 장비를 갖추고, 음악공부를 위해 쿠바여행을 가겠다고 한다.

향후 이정표가 국악계와 가요계를 종횡무진 누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정표에게 굳이 국악을 강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이 시대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음악을 생산해내기 기대해본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