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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부는 왕궁터 발굴을 위해 집안시 정부청사 건물도 철거했다. 발굴결과 왕궁터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 김태경
기자는 지난 97년 '집안'을 배낭여행 했다. 당시만 해도 집안 시내의 고구려 유적은 거의 버려지다시피 방치된 상태였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2002년 북한이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지난해 초 불과 6개월 동안에 집안과 환인의 고구려 유적지를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당시 기자가 장군총(장수왕릉)을 찾아갈 때 길은 좁은 비포장 도로였고 주변에는 군 부대와 민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장수왕릉 맨 꼭대기까지에는 쇠로 만든 계단이 있어 미관도 좋지 않았다. 광개토태왕비의 경우 누각으로 보호했지만 가까이 접근해 비석의 글자가 나올 정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직접 비석을 만져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환도산성은 '환도산성'이라고 쓰여진 콘크리트 안내벽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산성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국내성은 아파트 단지의 화단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1만기가 넘는다는 고구려 고분들이 대개 밭이나 주택가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이런 상태이니 유명한 무덤이라도 제대로 찾아가기가 힘들었다. 당시 제대로 정돈된 곳은 지난 93년 보수한 환도산성 밑의 산성하 무덤떼 정도였다.

집안박물관의 경우 입구에 '고구려는 중국 변경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 정권 가운데 하나로…' 시작되는 설명서가 나붙어 있을 뿐 전시품도 오랫동안 바꾸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에 본 집안과 환인은 확실하게 변해있었다. 중국 정부는 올해 초 불과 6개월동안 3억 위안(약 450억원)이상의 돈을 들여 완벽할 정도로 모두 복원시켰다. 중국의 물가수준과 토지가 모두 국가 소유라는 것을 감안하면 3억 위안은 대단한 돈이다.

일단 고구려 유적지로 가는 도로들이 모두 널찍하게 포장됐다. 그리고 중요 유적지 주변의 민가를 모두 철거해 멀리서도 확실하게 잘 보이도록 만들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유적 곳곳마다 설치된 감시카메라였다. 너무 감시카메라가 많아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장수왕릉(장군총) 부근의 군부대 등을 완전히 철수해 반경 1천m 정도는 아무 것도 없이 깨끗하게 정돈했다. 장수왕릉의 쇠 계단도 철거하고 나무로 만든 계단을 설치했다.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도 주변의 민가 400호를 철거하고 두 곳을 합쳐 하나의 유적권으로 만들었다. 광개토대왕비에는 방탄유리를 설치했다. 광개토대왕비 부근에 아직도 남아있는 100여호 정도의 민가도 올해 모두 철거할 예정이다.

집안시 통구하의 '약진교' 부근의 국내성 서벽 1천m 정도를 복원했다. 서벽에서 치(雉)를 발굴했고 이 치 옆에 배수구를 발굴해 투명한 플라스틱 지붕을 만들어놓았다. 국내성 보수 과정에서 300호 정도의 민가를 모두 철거했다.

집안박물관도 전시물 90%를 지난해에 발굴한 유물 등 새 유물로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마선구의 무덤떼, 미천왕릉, 춤무덤(舞踊塚)과 씨름무덤(角抵塚) 등도 주변의 민가를 철거하거나 포장도로를 만들어 주변에서 잘 보이고 접근하기 쉽도록 했다.

칠성산 211호 무덤의 경우 이전에는 주변의 민가 때문에 밖에서 거의 보이지 않아 존재 자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도로로 차를 타고 가면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다섯무덤의 경우 이전에는 관람객들이 직접 들어가 보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부에 TV 카메라를 설치해 30평 정도의 별도 관람실에서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집안시 정부청사도 혹시 궁궐터가 있을까 해서 철거했다. 그러나 새로 발굴된 유물은 없었으며 대신 공원으로 바뀌었다. 집안시는 올해부터는 주요 교통 수단 가운데 하나였던 오토바이 삼륜차를 모두 없애고 소형 택시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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