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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씨의 기사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 당신들은 아는가?'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속옷 사러 꼭 찾아가겠습니다"
'속옷가게 아줌마' 원고료 400만원 넘어서

'속옷가게 아줌마' 이은화씨에 대한 훈훈한 온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17일 오전 9시15분 현재 해당 기사의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에 모두 648명이 참여해 400만원이 넘는 등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는 네티즌의 정성이 쌓여가고 있다.

2000원을 결제한 ID '밤하늘'은 자신을 두 아이의 아빠라고 소개하면서 "적은 금액이지만 힘내시구요... 그리고 꼭 속옷을 사러 찾아가겠습니다"라며 "붕어빵 봉지에서 스며 나오는 따스함을 가진 네티즌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런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세상 살아갈 만하다는 것 아닐까요?"라고 위로했다.

1만원을 결제한 ID '충청인심'은 "따뜻한 마음이 모아지니 힘내세요"라고, 5000원을 결제한 ID '무구'는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겠지요"라고, 안홍국씨는 3000원을 결제하면서 "현실에 힘들어도 어깨를 추스리고 힘을 내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아이가 있는데 한번 더 힘을 내야죠"라고 작은 정성과 함께 격려를 보냈다. / 조호진 기자
"어제 한 손님이 '매장이 썰렁해졌네요'라고 말했을 때 가슴이 쓰렸습니다. 내복을 팔아야할 시기에 내복이 없는 속옷가게… 정말 비참한 마음이었지요. 그래도 한 푼이라도 벌고자 저는 밤 12시까지 가게를 지키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내면서 살아가려고 애썼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내복을 들여놓을 여유가 없어 '내복 없는 속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시민기자의 기사에 십시일반'(十匙一飯) 네티즌들의 '좋은기사 원고료 올려주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각박한 세상에서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하고 있다.

지난달 도올 김용옥의 '헌법재판소 비판' 기사에 2700여 만원의 원고료가 모아진 데 이어 또다시 네티즌들이 자발적 참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민기자의 기사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도 아닌데다 필자 역시 무명의 시민기자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또다르다고 하겠다.

주인공은 이은화(43·인천)씨. 이씨는 13일 오후 작성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 당신들은 아는가? - 어느 속옷가게 주인의 눈물겨운 분투기'라는 기사에서 임대료조차 벌지 못하는 자영업자로서의 현실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시민기자 기사, 네티즌 원고료 주기 하룻새 46만원

특히 이씨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무엇이든 해보려고 노력한다면 살 길이 있을 것이다. 함께 믿으며 열심히 살자"는 희망의 메시지까지 더해 많은 네티즌들에게 감동을 줬다.

<오마이뉴스>는 15일 오전 시민기자 이씨의 기사를 톱으로 배치했다. 이후 네티즌들의 '원고료 주기'는 꾸준히 늘어 16일 오전 9시 30분 현재 만 하룻만에 71명이 함께 한 가운데 46만원이 모아졌다.

네티즌들은 1천원부터 최대 1만원까지 자발적으로 원고료주기에 동참했다. 오마이뉴스는 원래 원고료의 절반을 지급하기로 돼 있지만 이씨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 특별히 전액을 전달할 방침이다.

▲ 수십명의 네티즌들이 원고료주기로 이은화씨에게 격려를 해왔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네티즌들은 원고료 주기 외에도 독자의견란을 통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남겼다. 독자들은 주로 이씨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서민경제 침체의 원인'이 현 정부에 있음을 지적했다.

지난 98년 '흰손'(백수)이 됐다는 '질경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이은화님. 힘을 내세요. 괜찮습니다'란 글을 통해 "이기자님의 글을 읽노라니 가슴이 콱콱 막히는군요"라고 밝힌 뒤 "도시가스가 끊긴 날에는 기가 막혔고, 유선방송 시청료를 내지 못해 텔레비전도 나오지 않으며 며칠 후면 인터넷도 끊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길섶에서 밟히면서도 질기게 살아가는 질경이를 보았으면 한다"며 격려했다.

아이디 '북극여우'는 '은화님, 당신이 희망입니다'란 글에서 "우리 희망을 갖고 살아가자"며 "속옷가게 위치가 어딘지 알려 주시면 고맙겠다. 우리 어머니 순면 내의 한벌 사고 싶다"고 말했다.

또 아이디 '스타일'은 '힘내세요, 정말 눈물이 납니다'란 글을 통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언제쯤 우리 서민들에게 희망의 빛이 찾아들지… 오직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호소했다.

네티즌 격려 이어져 "은화님, 당신이 희망입니다."

이와 함께 네티즌들은 경기침체의 원인을 정부에게서 찾고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 히포드롬'은 '서민생활파탄의 책임을 노씨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건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민들이 사는데 무지하게 힘이 든다. 이젠 익숙해 질만도 한데도 힘이 든다"며 "정부는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노 대통령 얘기대로 우리 국민 생활은 안 그럴까"라며 "경기는 수 년째 얼어 붙어있고 돈 빌려준다는 은행 문턱은 여전히 넘어갈 수 없다. 얼어붙은 경기에 대해 노씨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 되는 건가"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아이디 '고독천사'는 대선 당시를 떠올리며 "'매년 경제성장률 7%를 달성하고 일자리 25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은 어디 가고 야당 탓, 언론 탓만 하는지"라고 노 대통령을 비난했다.

네티즌 중에는 이씨의 기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를 지적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좋은 말씀 가슴 새긴 채 희망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 것"

한편 네티즌의 격려가 이어지자 이씨는 독자의견란을 통해 감사의 뜻을 직접 써서 올렸다. 이씨는 '이 기사를 쓴 이은화입니다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란 글에서 "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눈물이 나왔다"며 "8가구가 사는 빌라에 4가구의 가스가 끊길 정도로 유난히 힘든 동네에 살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살아보고자 노력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씨는 또 "아파트 아래로 몸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지만 가족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줄 것 같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며 "기사를 작성할 때는 망설였지만 힘든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나 스스로도) 자신을 추스리고 다짐을 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오늘 이 글이 올라가고 많은 독자분들이 좋은 말씀을 주신 것, 가슴 깊이 새기고 더 용기를 내어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힘들지만 네티즌에게 매일 '희망의 글' 보내는 메신저
[인터뷰] '속옷가게 아줌마' 이은화씨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의 사정으로 통화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이은화씨 집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위와 같은 안내가 흘러나왔다. 통화료를 내지 못해 전화가 끊긴 것. 하지만 가게 전화는 살아있었다. 이씨는 "밀린 금액이 약 16만원인데 3번에 걸쳐 내겠다고 한국통신에 전화했다. 때문에 다행히도 일시정지는 됐지만 번호는 쓸 수 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씨의 기사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이날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15일 밤 이씨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 기사를 쓴 계기는.
"자꾸 나약해지니까 힘든 상황을 알리고 싶었고 토해내듯이 썼다. 사실 살아오면서 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몸도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는데 원인도 안 나타난다. 신경성이니까 마음을 편안히 가지라고 했다.

내가 마음을 추스리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고2인 딸아이 때문이다. '엄마 힘들어하지마, 참아'라는 식으로 격려를 해준다. 다른 엄마들처럼 과외를 시켜주지도 못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보면서 엄마인 내가 좌절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

- 하루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
"담배 가게도 함께 운영하는데 거의 담배만 팔고 있다. 담배는 마진이 별로 없다. 속옷은 하루 5~6만원 정도다. 그나마 마진은 25% 수준이다. 임대료도 밀려 있는 상태다."

- 언제 가게를 열었나. 처음부터 안 좋았는지.
"2002년 12월에 시작했다. 작년의 경우 동네에 속옷가게 처음 생겨서 그랬는지 괜찮았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이후 조금씩 나빠지면서 올해 완전히 바닥을 기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해 카드매출이 한달 2~3백만원까지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한달 카드 매출이 20만원도 안나온다. 현금은 말할 것도 없다. 하다못해 담배를 사러 오더라도 동전을 긁어 온다. 그 정도로 돈이 없다.

내가 업종을 잘 못 선택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처 상가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동네 슈퍼마켓도 가끔 전화가 끊기는 것 같고 매장 물품들이 비어나가는 것 같다. 나는 같은 심정이니까 말 안 하는데 손님이 '폐업정리하나'고 물으면 아픔으로 다가온다."

- 회복의 기미는 보이나?
"회복기미는 전혀 없다. 나 뿐 아니라 상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저녁 때 가게를 혼자 지키며 한숨만 쉬고 있다."

- 기사를 쓴 뒤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줬다.
"독자의견을 보면 정치적으로 몰고 가는 분도 있는데 그것은 반대다. 어떤 독자가 마지막 부분에 '넘어져도 일어나겠다'는 내 글을 보며 격려해줬는데 그 글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인터뷰 중 이씨가 다음카페 '은행나무 아래 빈 의자'(http://cafe.daum.net/longevity8990)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거의 매일 아침에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글을 전체메일로 보낸다. 이 카페 역시 집이 경매를 당했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에 힘든 사람들과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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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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