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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롱뇽 소송'의 주인공 지율 스님이 30일 청와대 앞에서 세번째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대통령이 큰가, 천성산이 큰가.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생명의 가치관이 열린다."

'도롱뇽 소송'의 주인공 지율스님이 30일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작년 2월초 28일간의 단식, 그해 10월 초 45일간의 단식에 이어 세 번째 단식농성이다.

지율스님은 "정부는 현재 진행중인 항소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고속철도 천성산구간 공사를 중단하라"며 오전 10시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지율스님이 다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은 무엇보다 천성산 터널 진입로 공사가 90% 이상 진행된 상황에서 조만간 터널 발파 공사마저 시작된다면, 이른바 '도롱뇽 소송'에 이기더라도 그때는 이미 천성산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될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지율스님은 "이미 청와대에 수차례 공사중지를 요청하는 공문과 편지를 보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일 뿐"이라며 "대통령은 스스로 내세운 공약을 뒤집은 원죄가 있는 만큼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22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지율스님은 "'도롱뇽 소송'은 그동안 우리가 자연과 생명을 어떻게 대하여 왔는가를 반성·성찰하는 목소리"라며 "대통령은 최소한 법원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공사 중단 결정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대통령 공약 위반, 시민단체 활동성과까지 꺾어놔"

지율스님의 무기한 단식농성이 진행되고 있는 청와대 앞에는 청년환경센터 등 환경단체 회원들과 대학생들의 방문이 꾸준히 이어졌다. 지율스님은 그 자리에서 직접 '도롱뇽 책갈피'를 만들어 방문한 이들에게 나눠주며 천성산 살리기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기자와 닮았다'며 지율스님이 건낸 책갈피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렸다는 도롱뇽 그림과 함께 '도와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율 스님은 "'도롱뇽 소송'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교육인 것 같다"며 아이들의 그림을 자랑스럽게 펼쳐보였다.

▲ 지율 스님은 아이들이 그린 도롱뇽 그림 등으로 책갈피를 만들어 방문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천성산 공사를 중단하라고 대통령한테 몇 통의 편지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하도 묵묵부답이라 이렇게 왔다. 이제는 청와대에 직접 '올인'해야 되나보다."

- 천성산 문제에 대통령이 어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나.
"청와대는 원인제공자다.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 천성산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로 인해 천성산 문제가 정치적인 이슈가 되어버렸고, 그 바람에 시민·환경단체들이 그동안 이뤄논 성과까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노 대통령과 정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지 않다. 내가 끝까지 천성산 터널공사를 막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 환경영향평가의 재실시를 주장했는데.
"천성산에는 보호해야 할 생물이 단 한 종도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소위 전문가들의 양심을 믿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면 종교인인 내가 왜 이런데 나서겠나. 지질·생물학자들이 먼저 나서야 되지 않나. 슬플 정도로 그들은 개발의 편에 서 있다. 현행 환경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목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전도된 가치관으로 세상 이끈 기성세대, 무한책임 느낀다"

- 천성산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과연 이후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전쟁·개발과 같이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을 물려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천성산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 가치관을 성찰하자는 것이다."

- 세 번째 단식, 건강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라고 내 목숨이 귀하지 않겠나.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라고, 사람이 꼭 밥숟가락으로만 먹고사는 게 아니다. 마음의 양식도 있다. 감사의 마음도 그 중 하나다. 솔직히 김선일씨 사건을 보고나서는 정부가 나 같은 스님 한 사람 때문에 국가정책을 바꿀 거라는 기대를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렇게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나보고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하는데, 나는 절망적인 사회상을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때 바로 정신적인 죽음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문화에는 정신적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나 역시 40대지만 40대 이후가 세상을 전도된 가치관으로 이끌었다는데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 국책사업을 중단할 경우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한 비구니가 감성적인 주장으로 국책사업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이성적인 사람들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 온 국토에 터널을 뚫어대는 바람에 지하수 유출, 사막화, 생태계 파괴 등의 피해가 끊임없이 접수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과학적·이성적인 국토개발 운운하는데 정말 그렇게 추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무분별한 개발이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공사를 강행할 경우 정부가 지금 이야기하는 피해의 몇 배를 우리와 후손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 항소심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나.
"재판부 역시 이번 소송을 통해 사회 갈등 현안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전례를 만들고싶다는 의욕이 있는 것 같다. 환경문제에 대한 이해도 깊다. '도롱뇽 소송' 이후 법조계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촉발됐다는 이야기도 반가운 소식이다."

"천성산이 무너지면 생태계도 무너진다"

지율스님은 현재 청와대 앞에서 밤샘농성을 벌일 계획이지만 경찰 측은 경호상의 이유로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는 청와대 앞에서의 농성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만난 지율스님은 기자에게 "천성산에 터널이 뚫릴 경우 생태계의 장이 무너진다"며 심각한 우려를 반복해서 표명했다.

천성산 환경보존 대책위 홈페이지(www.cheonsung.com)에서 진행중인 '천성산 살리기·도롱뇽 소송 100만인 서명운동'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한다는 말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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