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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오전 8시. 허남주(여·40)씨는 마을버스와 지하철, 시내버스를 차례로 갈아타고 1시간 남짓 걸리는 출근길에 올랐다. 월요일이라서 조금 피곤한 것을 빼면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하다. 난생 처음 해고 통지서를 받은 지도 벌써 18일, 이제 보름 뒤면 다시 실업자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돈보다도 자존심”

▲ 2월 말 은행으로부터 해고통지서를 받은 허남주씨. 그는 15년 경력의 은행원이지만 100여만원의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이다.
ⓒ 김윤섭
오전 9시. 허씨가 A은행 인천광역시 간석동 지점에 도착했다. 그는 2002년 9월부터 이곳에서 공과금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은행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좋은 직장이라며 부러워한다.

상대적으로 월급을 많이 주고 다양한 복리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에 근무한다고 해서 모두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허씨처럼 3개월에 한번씩 재계약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허씨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1983년 상고를 졸업하고 13년간 B은행에 다니는 동안 그는 아쉬울 게 없는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은행권에 구조조정의 태풍이 불어닥치면서 허씨도 명예퇴직 대상자가 됐다.

허씨는 B은행을 그만둔 뒤 3년만에 C은행에 계약직으로 취직했는데, 당시 월급은 B은행을 퇴사할 때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C은행 시절 허씨를 더욱 힘들게 만든 것은 돈보다도 재계약에 대한 스트레스였다.

정규직보다 많은 실적을 올리고도 6개월마다 가슴을 졸이며 재계약을 하는 것이 너무 괴로워 2년만에 사표를 썼다. 그 뒤 금융권은 정규직이 빠져나간 자리에 경쟁적으로 비정규직을 채우기 시작했고, 허씨도 A은행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하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 사람들은 재계약할 때마다 심한 모멸감을 느껴요. 은행이 필요해서 사람을 쓰는 건데도, 인사부 사람들은 비정규직들에게 큰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대합니다. 정규직과 별 차이 없이 일하면서 월급은 1/3밖에 못 받는 것도 속상한 일이지만, 왠지 무시당하는 느낌 같은 게 더 견디기 힘들어요. 계약서 문구를 보면 완전히 노비문서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돈보다도 자존심. 이것이 바로 허씨를 분통 터지게 만드는 대목이다. 월급이라고 해봐야 100만원 남짓(15년 경력 인정). 허씨는 그거 없어도 먹고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전업주부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단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면 앞으로의 인생도 계속 그렇게 끌려 다닐 것만 같아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아직도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는 후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3월 19일 오후 6시. 허씨는 지하철 1호선을 탄다. 이번 주에만 두 번째 서울행이다. 16일에는 A은행 노동조합 간부와 본점 인사부 관계자를 만났고, 오늘은 금융노련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예정이다. 그러나 1시간 15분이나 걸려 찾아간 금융노련 사무실은 일찌감치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청소하는 날이라고 한다.

허씨가 허탈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A은행 비정규직 입사 동기이자 이번 해고 사태를 맞아 허씨와 의기투합한 친구 권혜영(여·40)씨의 전화였다. 권씨도 금융권 구조조정이 시작되기 전까지 C은행에서 10여 년간 근무한 바 있다.

“비정규직은 남을 도와줘도 손해”

허씨와 권씨는 종로의 허름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권씨가 먼저 한 장의 문서를 내밀었다. 공과금 업무를 담당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57명을 한꺼번에 해고한 것에 대한 A은행측의 답변서였다. 두 사람은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가면서 수차례나 “기가 막혀”를 연발했다. 은행측의 주장은 법률적으로 하자가 없는 계약 해지이며, 계약서에 장기 계약 등을 명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권씨는 비정규직이야말로 회사와 노동조합, 어느 곳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집단이라고 말한다. 회사는 사정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비정규직을 정리하고, 노동조합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만 급급해 비정규직의 권익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다. 한번은 집회에 참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유인물을 뿌리려 하는데, 노동조합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이번엔 허씨가 맞장구를 친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비정규직의 적이 정규직이 돼 버렸어요. 금융노련에 비정규직 지부가 생겼는데, 노동조합은 그걸 비정규직들에게 알려 주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비정규직들이 한날 한시에 똑같이 해고 통지서를 받았는데, 노동조합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같은 노동자끼리 이렇게 갈라져서 반목하는데, 어떻게 그 회사가 잘될 수 있겠습니까?”

화제는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문제로 이어졌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비정규직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차가운 현실의 비애가 생생하게 묻어 있었다.

▲ 허남주씨(오른쪽)와 함께 해고된 권혜영씨. 두 사람이 직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윤섭
권 : "경기도의 어느 지점에서 일하던 직원은 완전히 급사 취급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직원들 커피를 타 주고 잔심부름까지 해 주고…. 어쩌다 싫은 내색을 하면 ‘너 나가도 상관없다, 사람은 많다’ 뭐 이런 식으로 나왔나 봐요. 나이가 어려서, 여성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그런 서러움을 당한 거죠."

허 : "처음에 발령 받고 사무실에 갔더니 책상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창구 바깥에 청원경찰이 쓰는 자리에 앉으라는 거예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몰라요. 이런 수모를 당하고 여기서 일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권 : "비정규직 한 분이 시간이 날 때마다 옆 동료의 일을 도와주었나 봐요. 그러다가 수표가 없어졌는데, 분위기가 자기를 의심하는 것 같더래요. 그 분도 그걸 못 견디고 퇴사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비정규직은 남을 도와 줘도 손해구나.’"

허 : "은행에서 직원들의 복리를 지원하기 위해 자기계발 카드라는 걸 만들었어요. 그런데 정규직은 45만원, 비정규직은 15만원으로 한도를 정한 거예요. 영어학원이나 헬스클럽에서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50% 할인해 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 갖고 마음의 상처를 입혀야만 하는지…."

작지만 소중한 배려의 부족

3월 22일 오후 A은행 인천광역시 간석동 지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왼쪽 창가 구석자리에 허씨가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공과금 봉투가 수북히 쌓여 있고 그 옆으로 문방용품과 서류철 등이 보였다. 허씨는 쉴새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무척 분주한 모습이었다. 월말이 다가오면서 공과금 업무가 늘어난 탓이다.

잠시 후 공과금 수납기를 작동하던 할머니 한 분이 창구를 향해 손짓했다. 뭔가 뜻대로 기계가 작동되지 않는 모양이다. 허씨는 왼쪽 창구 끝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요리조리 피해 오른쪽 창구 끝까지 가서 통로를 빠져 나와, 다시 왼쪽 끝의 공과금 수납기로 걸어가 할머니를 안내했다. 허씨는 왕복 60m가 족히 넘는 이 구간을 하루에 수십 번씩 오갈 때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허씨가 앉아 있는 창구 앞으로 작은 통로를 만들면 허씨가 3m만 걸어도 될 텐데, 왜 먼 길을 돌아서 다녀야만 하는가 하는 궁금증이다. 창구에서 서류를 정리중인 허씨에게 그 이유를 묻자 인상부터 찌푸린다.

“그 동안 여러 번 얘기했죠. 하지만 어렵다는 거예요. 아마도 창구 안에 돈이 쌓여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결국 보안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과금 수납기를 반대편으로 옮겨서 이동거리를 줄일 수는 없었을까? 필자는 허씨가 창구를 돌아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부족한 배려가 아쉽게 느껴졌다.

간석동 지점에는 허씨 말고도 비정규직 ‘텔러(창구에서 수납업무 등을 하는 직원)’가 몇 명 더 있다. 필자는 30여 분 가량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를 비교했다. 누가 몇 사람의 업무를 처리하고, 몇 통의 전화를 받으며, 모니터에서 몇 번쯤 얼굴을 돌리는지…. 결과는 대동소이. 실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비정규직 텔러는 정규직의 50% 수준의 임금을 받고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한다.

▲ 허남주씨가 '고용계약 만료 통지서'를 보이고 있다.
ⓒ 김윤섭
“우리가 이겨야 너희들이 좋은 거야”

오후 4시 30분. 은행 셔터가 내려지면서 은행원들의 일손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허씨도 동료의 업무를 거들기 시작했다. 돈을 세서 묶거나 전화를 대신 받아 주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이따금씩 공과금 수납기를 점검하며 고객들을 안내했다.

오후 5시경 허씨가 수납기에 남아 있던 공납금 봉투를 모두 챙겨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하루 업무가 끝나는 모양이다. 공납금 봉투를 정리하는 그의 모습 뒤로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청춘남녀들이 편안하게 누워 있는 포스터가 보였다. 사진보다도 문구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행에서 꿈을 이루어 갑니다.” 뭔가 색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아 허씨에게 포스터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햇빛 가리기에는 그런 대로 괜찮아요. 여기 앉아서 햇빛을 보는 것도 일주일 밖에 안 남았네요.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정 붙이고 다녀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네요.”

22일 저녁. 인천지역 비정규직 후배들이 허씨를 위해 조촐한 송별식을 마련했다. 평소 ‘왕언니’로 불릴 만큼 서글서글한 그의 성격 때문인지 여러 명이 패밀리레스토랑에 모였다. 허씨는 후배들에게 덕담을 건넸고, 후배들은 갑작스레 떠나는 언니를 안타까워 했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이 자리에서도 비정규직의 설움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왔다.

“열심히 하면 인사고과를 잘 주고 정규직으로 옮겨 줄 수 있다는 말까지 해요. 그래서 비정규직들은 불만이 많아도 참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실제로 정규직이 되는 경우는 드물어요.”

“비정규직에게는 미래가 없어요. 연차가 높아져서 월급이 많아지면 그만큼 잘릴 위험이 높다는 거예요. 필요할 때 싸게 쓰고, 몸값이 올라가면 내버리는….”

후배들의 푸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허씨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오래 다녀라. 앞으로 비정규직도 많이 좋아질 거야.”

후배들이 자조적으로 ‘왕언니’의 말을 받는다.

“언니, 그때쯤이면 우리도 다 잘릴 거야. 솔직히 떠나는 언니가 부럽기도 해. 갈수록 환경이 안 좋아지니까. 언니가 우리보다 조금 먼저 가는 거라고 생각해.”

‘왕언니’가 다시 말고삐를 잡는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너희들도 좋은 거야.”

레스토랑을 떠나기에 앞서 허씨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실업자가 되는 첫날에 무얼 하실 겁니까?”

그의 당찬 목소리에서 다부진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첫날부터 바로 싸움을 시작해야죠. 남편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며 응원하고 있어요. 4월 1일에 해고자 모임을 가질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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