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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철학교수들이 1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있다.
ⓒ 장윤선
"참담하게도 이들의 달콤한 언사와 겉치레 참회행각에 넘어간 유권자들의 수가 위협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의회폭거를 감행한 100여명의 잔당들이 여전히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직을 목표로 약진하면서 또 다시 대한민국 국회를 점거할 수도 있는 불길한 조짐에 우리는 전율한다. 비극의 역사는 또 되풀이 되는가."

전국의 철학교수 92명이 오는 총선에서의 '탄핵 심판'을 촉구하고 나섰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철학교수들이 시국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사회적 발언을 자제해왔던 철학교수들이 '격문'에 가까운 성명을 발표한 것은 그만큼 총선 정국과 관련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특히 이번에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수 중에는 그간 중도 보수를 표방해왔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주목된다.

@ADTOP@
철학교수들 '격문', 총선 정국 위기의식 팽배 반증

'탄핵·수구·지역주의 정당의 심판을 호소하는 전국 철학교수 기자회견'이 12일 오전 서울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렸다. 이날 성명서에 연서명한 철학교수는 92명이다.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4월 10일 밤 10시부터 12일 새벽 1시까지 메일과 전화를 통해 전국 철학교수 92명이 성명에 동참했다"며 "무엇보다 영호남 대학 교수들의 뜨거운 지지와 대구부산 지역 교수들의 '과 차원' 집단참여로 순식간에 의견을 모았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이들이 발표한 A4용지 2쪽 분량의 성명서는 격문에 가까웠다. 그만큼 철학교수들이 총선을 앞둔 최근 여론 추이에 대해 위기의식이 팽배하다는 반증이다. 이들은 특히 이번 총선에서 심판해야할 세력으로 '탄핵·수구·지역주의'를 꼽았다.

우선 이들은 '탄핵·수구·지역주의 정당을 심판하자!'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

"나도 보수주의자... 민주주의 후퇴는 안된다"
[토막 인터뷰]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탄핵안이 가결될 때도 가만히 내 일을 묵묵히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진석 인하대 서양철학과 교수는 "탄핵안 가결 당시보다 4·15총선을 3일 앞둔 지금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철학교수들이 기자회견에 나섰다"며 탄핵·수구·지역주의 세력의 심판을 호소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홍윤기 동국대 교수, 김상봉 문예아카데미 교장 등과 함께 현 시국을 논의하다가 시국성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전국 철학과 교수들에게 직접 전화와 이메일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근본적인 학문을 다루는 철학 교수들이 사회·정치적인 현실인식은 다소 보수적이다"라면서 "87년 6월항쟁 이후 최초로 철학 교수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유주의적 경향이 강하나 나도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학자"라며 "특정 정당의 유불리를 떠나 지금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로 진보하느냐 퇴보하느냐 갈림길에 와 있고 그만큼 유권자들의 선택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총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철학교수들은 이번 총선이 지역주의 수구정당들을 심판하고 오랜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진정한 결실을 맺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동향은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 다시 지역주의와 색깔론으로 무장한 수구세력의 의회장악을 염려해야 할 지경입니다."

이들은 또 "그들은 시종일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지난 3월 12일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데서나 무단으로 절판, 눈물판을 벌이는 이미지 정치로 시종해 왔다"고 성토한 뒤 "그네들은 눈물의 절만 하고 그 어떤 참회의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우리 국민들을 말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듣지 말고 그들의 절에 감동만 해야 하는가?"고 반문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회폭거를 합헌적 절차에 따른 민주적 거사라고 만세 불렀던 이네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짓밟았던 독재자의 미소까지 불러내 구차한 정치생명을 부지하려는 그 무분별한 권력 기회주의는 그저 놀라울 뿐"이라면서 "노동자나 농민, 서민 복지 얘기만 꺼내도 사회주의자로 몰아붙이던 저들이 독재자의 영정을 들고 맨먼저 표를 구걸하러 찾아간 곳이 영세민촌이었다, 이들의 정치적 위선과 자기기만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라고 비판했다.

참회 없는 '눈물의 절' 앞에 감동해야 하나

이들은 이어 "3·12 의회폭거를 감행한 100여명의 잔당들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직을 목표로 약진하면서 또 다시 대한민국 국회를 점거할 수도 있는 불길한 조짐 앞에서 전율한다"며 "눈물과 애교를 앞세워 다시 의회를 점거해 탄핵을 성공시킬 경우, 우리는 2004년 내내 새로운 대통령을 뽑느라 국력과 정신력을 소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회적 앙가주망이 익숙하지 않은 철학교수들이 긴급히 나선 것은 감성을 자극하는 위선적 눈물과 미소, 애교로 우리의 4년을 내맡길 수 없기 때문"이라며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 판단으로 국민주권을 수호하자"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우리는 특정 정당의 이해와 관련이 없다"고 못 박고, "대통령과 의회권력 모두의 원천은 국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대통령과 국회, 두 헌법기관에 대한 궁극적 심판자로서 국민은 4월 15일 탄핵 수구 지역주의 세력을 심판하고 그들의 부활을 철저히 봉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는 "지금 대한민국은 친일 수구세력이 다시 제1당으로 재집권할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들을 제1당으로 뽑아주는 유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고, 유권자들은 친일 수구 반민주세력이 제1당으로 등장하지 않도록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철학교수 성명에 동참한 인사 명단이다.

구영모(울산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연구실), 권용혁(울산대), 권순홍(군산대), 권인호(대진대), 김국태(호서대), 김광수(한신대), 김기현(전북대), 김대오(한신대), 김상봉(문예아카데미), 김석수(경북대), 김선욱(숭실대), 김성민(건국대), 김수중(경희대), 김양현(전남대), 김영민(한일장신대), 김영호(인하대), 김의수(전북대), 김재기(경성대), 김재철(경북대), 김재현(경남대), 김재홍(가톨릭대 인간학 연구소), 김준수(부산대), 김진석(인하대), 나성(한신대), 노양진(전남대), 노희천(순천대), 나종석(울산대 연구교수), 류의근(신라대), 문성원(부산대), 문장수(경북대), 문창옥(연세대), 박구용(전남대), 박상환(성균관대), 박승찬(가톨릭대), 박정호(인제대), 박해용(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 방인(경북대), 백은기(전남대), 서유석(호원대), 선우현(청주교육대), 설헌영(조선대), 성진기(전남대), 손영식(울산대), 손철성(경북대 윤리교육과), 송인창(대전대), 안옥선(순천대), 양해림(충남대), 위상복(전남대), 원승룡(전남대), 유원기(계명대), 유흔우(동국대), 윤선구(서울대 연구교수), 윤평중(한신대), 이강서(전남대), 이기상(한국외대), 이병창(동아대), 이봉규(인하대), 이봉재(서울산업대), 이상하(계명대 강의교수), 이상훈(대진대), 이성백(서울시립대), 이승환(고려대), 이엽(청주대), 이유선(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이윤일(관동대), 이장희(경인교대), 이정호(방통대), 이중표(전남대), 이중원(서울시립대), 이충진(한성대), 임재진(조선대), 장은주(영산대), 장춘익(한림대), 정기철(호남신학대), 정상모(신라대), 정원규(서울대 사회교육학과), 조대호(연세대), 조민환(춘천교대), 조윤호(전남대), 최대오(전남대), 최소인(영남대), 최유진(경남대), 최인숙(동국대), 최종덕(상지대), 최종천(순천대), 최한빈(천안대), 최화(경희대), 하주영(영산대 겸임교수), 홍원식(계명대), 홍윤기(동국대), 황갑연(순천대), 황희경(영산대 초빙교수)

이상 총 92명.

"의회폭거를 민주거사라고 만세 불렀던 그들"
철학교수 성명서 전문... "탄핵·수구·지역주의 정당 부활 봉쇄해야"

다음은 이날 철학교수들이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편집자주

탄핵·수구·지역주의 정당을 심판하자!

드디어 17대 총선의 날이 목전에 박두하였다. 3·12 의회폭거에 경악했던 우리는 이 심판의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리고 냉전과 분단의 체제가 혹여 없어질까, 민족의 화해와 시민의 참여를 조금이라도 입에 올리면 색깔공세를 퍼붓고, 삼남의 유권자들을 볼모로 오직 자기네 당의 부패비리 의원들을 감싸기에 급급했던 저 수구·지역주의 정당들 역시 3·12 의회 폭거를 감행하면서 또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렸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국민의 뜻이야 어떻든 대통령 하나만 갈아 치우면 이번 총선에서 모든 것이 잘 될 것으로 낙관했던 저 오만한 탄핵·수구·지역주의 정당들이 매일 전국을 뒤덮는 촛불 축제에서 가위눌려 철저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것으로 기대했다. 우리는 지난 보름동안 그네들이 선거 운동 기간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통해 앞으로 국민의 여망에 맞게 이 나라의 국가정치를 책임질 새 정당으로 거듭 날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해 왔다.

하지만 그들은 시종일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지난 3월 12일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데서나 무단으로 절판, 눈물판을 벌이는 이미지 정치로 시종해 왔다. 그네들은 눈물의 절만 하고 그 어떤 참회의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우리 국민들을 말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듣지 말고 그들의 절에 감동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이미 사반세기 전에 이 땅에서 떠나보낸 독재자의 유령을 불러내어 우리 서민들의 삶을 짓누르는 현재의 고달픔을 마치 그 유령의 힘으로 이겨낼 것처럼 정치적 사기 행각을 벌리는 것에 경악했다.

자신들의 의회폭거를 합헌적 절차에 따른 민주적 거사라고 만세 불렀던 이네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짓밟았던 독재자의 미소까지 불러내 구차한 정치생명을 부지하려는 그 무분별한 권력 기회주의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노동자나 농민, 서민 복지 얘기만 꺼내도 사회주의자로 몰아붙이던 저들이 독재자의 영정을 들고 맨먼저 표를 구걸하러 찾아간 곳이 영세민촌이었다. 이들의 정치적 위선과 자기기만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참담하게도 이들의 달콤한 언사와 겉치레 참회행각에 넘어간 유권자들의 수가 위협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의회폭거를 감행한 100여명의 잔당들이 여전히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직을 목표로 약진하면서 또 다시 대한민국 국회를 점거할 수도 있는 불길한 조짐에 우리는 전율한다. 비극의 역사는 또 되풀이 되는가.

이번엔 이들이 몸소 방송사를 찾아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언론 관계법 개악을 밀어붙이고 수구언론의 기를 돋울 것이며 문서 하나로 방송사를 제압할 것이다. 이들의 의회폭거를 결정적으로 좌절시킨 촛불 시위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도록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저 독재자가 단행했던 긴급조치 수준으로 가다듬어질 것이다. 시민의 공론장인 인터넷은 가혹한 실명제로 그 자유의 기풍이 질식당할 것이다. 아니 그들이 찾아다니며 표를 구걸했던 서민 동네들은 무자비하게 재개발당하면서 자본의 이익과 권력의 개발주의에 맨먼저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탄핵·수구·지역주의 정당들이 마치 자기들은 탄핵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다는 몸짓으로 다시 용틀임치는 모습을 본다.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이들이 눈물과 애교를 앞세워 다시 의회를 점거하여 결국 탄핵을 성공시킬 경우, 우리는 2004년 내내 새 대통령을 뽑느라 우리의 국력과 정신력을 소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전국을 뒤덮은 촛불 축제에서 다가오는 4월 15일 평화적으로 심판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위기를 넘겼고 살아갈 의욕을 되찾았었다. 우리의 성숙한 자세가 아니었다면 분에 못이긴 순결한 생명들이 자신을 학대하다 목숨까지 끊는 사태가 속출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는 평생을 철학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 왔던 우리의 학문적 양식을 걸고, 아니 무엇보다 동시대를 이 땅에서 같이 사는 동료 시민으로서 주권자 국민들에 호소한다.

주권자 국민은 대통령과 의회 권력 모두의 원천이 되는 모태 권력이다. 이 두 헌법기관에 대한 궁극적 심판자로서 우리 국민 모두 4월 15일 탄핵·수구·지역주의 정당을 심판하여 그들의 부활을, 그들의 번식을 철저하게 봉쇄하자.

국민을 외면한 정당간의 파쟁에 또다시 우리 삶을 휘둘리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민주주의는 헌정위기를 넘긴 우리 손으로 개척할 것임을 안팎에 천명하자. 우리 손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 우리 손으로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 말자.

민주대한 만세! 자유와 번영의 우리 미래 만세!

탄핵·수구·지역주의 정당의 심판을 호소하는 전국 철학교수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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