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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에는 그 어느 때보다 '바람'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많은 바람 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박풍' 이른바 '박근혜 바람'이다. 그러나 '박근혜 바람'의 실체는 박근혜가 아니라 그의 부친 박정희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이런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고, 그 영향은 무엇인지 현역 역사학자와 역사학을 배우는 학생들로부터 들어봤다. 먼저 성공회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한홍구 교수의 의견이다... 필자 주)

ⓒ 박상규
'차떼기'와 탄핵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이 선택한 박근혜 대표. 박 대표의 등장으로 곤두박질 치던 한나라당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지지율은 소폭이나마 오르기 시작했고, 전통적인 지지기반들이 재결집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박근혜 바람'의 영향이라 진단한다.

이 '박근혜 바람'을 두고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비판부터 한국정치의 희망 혹은 여성의 희망이라는 의견까지. 그러나 '박근혜 바람'에는 박근혜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97년 IMF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박정희 향수가 불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박근혜 대표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딸 정치'의 한계에 매몰되어 있는 박 대표를 비판했다. 그러나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안 된다"식의 의견에 분명한 반대를 피력하며 또다른 형태의 연좌제를 경계했다.

한홍구 교수는 "박근혜 바람이 한나라당에게 자기 반성의 기회를 빼앗아 갔다"고 지적하면서 "박근혜 카드는 장기적으로는 한나라당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박상규
한 교수는 또 90년대 이후 박정희 향수가 커진 이유에 대해서 "전두환 정권의 성격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는 역사학자다운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으며, "박정희 신화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말로 박정희 향수를 일축했다.

아래는 한홍구 교수와의 일문 일답이다.

- 요즘 사회적으로 '박근혜 바람'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우선 연좌제를 떠올리게 하는 논의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장인을 들먹이는 게 정말 야비했던 것처럼, 부모의 멍에를 자식에서 씌우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본다. 이회창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친일파의 자식이 대통령이 된다는 게 물론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 자체로 반대한다는 것은 연좌제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박근혜는 박근혜이고 박정희는 박정희로 봐야한다.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는 또다른 형태의 연좌제에 불과하다."

ⓒ 박상규
- 박근혜 대표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인가?
"박근혜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의 대표가 될 만큼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는가를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아직까지는 여성 정치인보다는 '딸 정치인' 이미지가 더 크다. 자기만의 색깔과 비전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받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연좌제를 거론하는 것은 야비한 짓이다. 아버지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유린한 잘못을 박근혜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물론 박근혜도 아버지에 대한 비판에 맞서 몇 번 불쾌감을 표시하곤 했는데, 그렇게 아버지의 행위를 변명하는 것도 문제이기는 하다. 정치인으로 크려면 자기 것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박근혜는 자기 것을 만들지 못했다고 본다."

"박근혜는 아직 '딸정치인' 이미지 못벗어"

- 박근혜가 위기의 한나라당을 구할 것이라 보는가?
"'딸 정치인'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한 채 위기 상황에서 한나라당 대표를 맡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정말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상당히 회의적이다. 한나라당의 뿌리 깊은 수구적인 이미지는 박정희 질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지 않는가. 그러나 박근혜는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가 보수층을 결집하고 새롭게 재편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여옥 같은 경우는 최병렬이 영입한 것이기에 차치한다 하더라도 비례 대표에 송영선을 앉혀 놓은 것을 보면 박근혜도 한나라당을 구하는 데 역부족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송영선을 전면에 내세우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홍구 교수는 누구?

한홍구(46)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시사 주간지 <한겨레21>에 '역사이야기'와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를 연재하면서 '역사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뛰어넘는, 신선하고 도발적인 글쓰기로 독자들의 폭넓은 호응을 얻었다. 베트남전 진실위원회 집행위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평화박문관 건립추진위원회 사무처장, 성공회대 사이버 NGO 자료관장 등을 맡고 있다. / <대한민국史>인용
탄핵정국이 오기 전부터 사람들은 이렇게들 많이 이야기했다. 민주당은 호민련(호남 자민련), 한나라당은 영민련(영남 자민련)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나라당이 박근혜 효과로 의석을 몇 개 더 얻는다면 박근혜 때문에 위기에서 살아났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는 한나라당이 자기 반성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영남에서 의석을 몇 개 더 얻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상황을 모르는 것 같다.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가 관건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느냐, 아니면 의석에 연연하느냐. 바닥까지 떨어져서 솟아오르는 전략을 쓰느냐 아니면 핵심 지지층을 결집해서 어떻게든 영남에서 의석을 건지려는 전략으로 가느냐. 정말 바닥까지 가서 깨질대로 깨지는 전략으로 가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은 몰락할 것이다.

선거 후 합리적이고 말이 통하는 중도 보수당, 작지만 진보정당, 지역에 기반을 둔 수구 정당으로 재편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미래에 18대 총선을 거치고 19대 총선에 이르면 지역 수구 정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박근혜 바람'은 한나라당이 살 수 있는 길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마이너스이고 추락할 때 조금 덜 아픈 경우에 불과하다."

"'박근혜 바람'으로는 한나라당 못 살아나"

ⓒ 박상규
- '박근혜 효과'로 인한 한나라당 지지율 상승은 박정희 향수와 후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런 지적이 맞다고 본다. '정치인 박근혜'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적이 없지 않는가. 가령 정동영, 노무현, 유시민 등등은 나름대로 대중적 어필을 해왔지만 박근혜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박근혜가 살 수 있는 길은 자기만의 색깔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박정희 향수는 오래갈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강력하긴 하다. 탄핵정국에 의해 다소 줄은 것에 불과하다. 탄핵정국 자체가 국민들로 하여금 거대한 수구 이데올로기의 미몽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 박정희 이데올로기 자체도 탄핵정국에서 엄청나게 타격을 입었다.

박근혜 효과에 한나라당 지지율이 올라간 것은 묻지마 지지층을 다시 결집한 것이다. 과대 평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순수하게 '박근혜 효과' 속에 박근혜는 많지 않다고 본다. 한나라당 지지율 상승은 박근혜 효과만은 아닌 것 같다."

- 우리 사회가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우선, 역대 대통령의 무능에 한 원인이 있다. 김영삼 때 IMF 이후 가장 큰 향수가 일어났는데, 민주화 운동 한 사람을 대통령 시켰더니 나라가 이게 뭐냐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IMF는 박정희 프로그램과 모델의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또 하나, 박정희 향수가 되살아 난 중요한 이유는 전두환 정권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이걸 제기하지 않고 있는데, 전두환 정권이 한 짓이 바로 박정희 지우기와 감추기였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아들인 자신이 유신독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광주학살을 등에 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신독재까지 더해지는 것이 전두환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따라서 전두환 자신이 유신 본당이면서도 그것을 감추기 위해 유신의 전면에 나선 사람들을 제거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없는 것은 당연했다. 80년대 박정희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시대는 박정희를 지우는 과정이었으니까 전면에 나설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박정희 행적이 감춰진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없었고, 평가되지 못한 역사가 강시처럼 되살아나 90년대 이후 박정희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 박상규
- 그렇다면 역사학자로서 그리고 평화운동 활동가로서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본다. '박정희 신화'의 상당 부분은 그가 유능한 지도자였다는 것인데, 난 그 신화가 굉장히 잘못되었다고 본다. 한일국교정상화를 두고 봤을 때 우리가 어떤 것으로 유능함을 따져야 옳은가. 일본으로부터 철저하게 역사적 배상을 얼마를 받을 것인가가 아닌가. 그러나 이 부분에서 박정희는 절대로 유능하지 못했다.

베트남 파병도 마찬가지다. 백 번을 양보해서 파병으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시켰는가를 봐도 박정희는 빵점이다. 우리는 베트남 특수로 미국으로부터 10억 달러를 받았다.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때 박정희가 경제적 측면에서 국익을 극대화시키려고 달려들었다면 30억 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한국군 파병으로 25억 달러를 절약했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겨우 10억 달러만 받았다. 대신 박정희는 자신의 정치적 지원을 받은 거였다. 이런 지도자가 유능하다고 할 수 있나?

박정희 신화에 대해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신화는 그 자체로 허구다."

- 여성계에서 박근혜 대표 체제를 일정부분 반기는 분위기였는데.
"여성정치가 너무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의 정계진출이 너무 억눌려 있었기에 현상적인 모습이 반가울 수도 있다. 그건 이해한다. 그러나 이젠 그런 걸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한다.

전여옥 같은 경우를 보자. 역대 그 어떤 대변인도 그런 저질 논평을 내지 않았다. 송영선 같은 경우도 이라크 파병 문제가 나왔을 때, 정말 놀라웠다. 어떤 사람도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하지 않았다. 이제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치인의 능력과 자질을 봐야한다.

여성이라고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현재 정치권에 들어간 여성들 개개인을 봤을 때 좋은 분들도 많지만, 여성 정치에 실망을 안겨줄 분도 많이 들어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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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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