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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팀]
- 취재 : 조호진 기자
- 사진 : 권우성 기자
- 오마이TV : 김도균 기자


▲ K-6(캠프 험프리) 미군기지와 마주한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大秋里). 팽성읍 출신 설치미술가 최병수씨가 논에 설치한 전투기 모형물 사이로 '이땅은 우리목숨 끝까지 지킨다'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영농창고가 보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팽성읍 주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농성장위로 미군헬기가 지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 공군기지가 조성되면서 이승만 정부는 토지를 강제 수용했고 주민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기 땅에서 추방됐다. 그리고 50여 년 동안 미군기 이착륙에 의한 소음·진동 피해, 미군부대의 기름유출에 의한 농토오염, 개발제한에 의한 경제피해 등으로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주민들의 고통은 안보논리에 묻혔다.

억눌러온 신음이 미군기지 확장과 미 용산기지 평택으로의 이전 합의에 의해 분노로 바뀌고 있다. 50여 전 강제 토지수용에 의해 땅을 빼앗기다시피 쫓겨난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안보논리는 반미성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 평택시 K-55(일명 오산공군기지) 인근 마을인 서탄면 황구지리(黃口池里). 그리고 30분 거리 떨어진 K-6(캠프 험프리) 인근 마을인 팽성읍 대추리(大秋里).

잔설과 햇살에 어울린 두 마을의 정경은 산수화 속의 겨울 정취처럼 고즈넉했다. 하지만 F-16 전투기와 블랙호크 헬기의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덮치면서 풍경은 이내 깨졌다.

농토 곳곳에 내걸린 "이 땅은 우리 목숨, 끝까지 지킨다", "미군기지 이전 결사반대" 등의 깃발과 플래카드에서 알 수 있듯 주민들은 정부의 토지 수용을 허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미군이 강제 토지수용을 강행할 경우 '제2의 부안사태'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K-55 미군기지 확장반대 황구지리대책위원회'(이하 황구지리대책위)는 △비행기 소음과 주민건강역학조사 등 실태조사 △피해지역에 대한 보상과 대책마련 △한국공군 작전사령부의 탄약고 이전 폐기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이하 팽성대책위)는 토지수용에 관한 어떤 협상도 있을 수 없다며 미군기지 확장계획과 용산기지 이전 백지화를 위해 전면 투쟁한다는 입장이다.

▲ 미군 기지 확장 소식에 황구지리 마을 주민들이 50년전부터 시작된 미군기지로 인한 고통을 하나씩 풀어 놓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강경한 주민들 "안된다, 절대 안된다"

28일 <오마이뉴스> 기자가 찾아간 황구지리 노인정에는 10여 명의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지난 26일 국방부에 찾아가 용산 미군기지 평택 이전 합의를 규탄하고 돌아온 이들은 52년 동안 억누르며 참아온 고통을 토해냈다.

K-55 미군기지는 서탄면 일대 40만 평을 확장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황영성(73·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 노인정 회장)씨는 미군기지 확장과 미 용산기지 이전에 대한 질문에 "절대 반대한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이렇게 말했다.

"50년 전에도 땅을 빼앗기고 쫓겨난 뒤 피눈물 나는 세상을 살아왔는데 또다시 쫓아낸다면 죽기 살기로 반대할 것이다. 정부가 주민들에게 고통을 계속 강요한다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농사꾼이 논밭을 빼앗기고 쫓겨나면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살란 말이냐."

노인정 회원들은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미군기 굉음에 놀란 소가 날뛰면서 달구지에 탔던 주민이 떨어져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건, 굉음에 의해 귀가 멀고 고막이 터진 사례, 미군기가 논에 추락해 혼비백산한 이야기, 미군 기지가 쏟아버린 기름유출에 의한 농토와 지하수 오염 등 ….

황호성(83)씨는 "미군들은 주민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훈련한다며 탱크로 논을 망가뜨리고 사격 연습 삼아 짐승들에게 총을 쏘기도 했다"면서 "주민들은 미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억울한 세월을 털어놓았다.

▲ 미군 비행기 굉음으로 인해 고막이 터졌다는 임영자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주민들은 한결 같이 미군기 이착륙에 의한 소음의 고통을 호소했다. 취재 도중에도 비행기 굉음은 쉴 새 없이 고막을 괴롭혔다. 임영자(여·60·평택시 서탄면 금각2리)씨는 5년 전 비행기 굉음에 의해 고막이 터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5년 전 논에서 일하는데 미 전투기 4대가 한꺼번에 뜨면서 땅이 흔들린 뒤 귀가 찢어지는 것 같더니 고막이 터지고 귀에서 물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자식들의 학비도 제대로 댈 수 없는 형편이어서 수술도 하지 못한 채 참고 살았다. 귀에서 소리가 계속 들리고 머리가 아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이렇게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아온 인생이 바보 같기만 하다. 미국이 진짜 동맹국가라면 50년 동안 주민들에게 입힌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신용조(38·황구지리 이장)씨는 "K-55 미군기지가 평택에 집중돼 있는데도 기지 명칭이 '오산에어베이스'라고 표현돼 피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면서 "'평택 K-55 미군기지'로 정확히 명칭을 바꿔 평택 주민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과 대책을 조속히 강구해야 한다.

신씨는 또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해달라고 정부당국에 수차례 문제제기 했지만 해결 기색은 전혀 없이 외면하고만 있다"면서 "주민들의 인권유린을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지난 1월초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 설치미술가 최병수씨가 미군기지에서 떠오르는 비행기들을 모형물로 만들어 기지앞 논에 설치해 놓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K-6 미군기지에서 이륙한 블랙호크 헬기가 마을위로 낮게 날아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취재중에도 쉴새없이 울리는 비행기 굉음... 기지확장 반대하며 농로 봉쇄

K-6(캠프 험프리) 미군기지와 마주한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大秋里). 마을 입구에는 '미군 막기 대장부'와 '땅 지킴 여장부' 장승이 버티고 서있고 황량한 빈 들녘에는 '미군기지 확장 결사 반대' 등의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K-6 미군기지 주변 팽성읍 일대 공중에서는 블랙호크, 시누크 헬기가 쉴새 없이 이착륙하면서 굉음을 쏟아냈다. 베트남 전쟁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긴박한 장면이다. 세계 최강 군대의 헬기들은 인근 주택 위를 야트막하게 오르내리면서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팽성대책위는 토지 강제수용을 저지하기 위해 도두리와 함정리 방면의 농로를 트랙터로 봉쇄했다. 표지판에는 "미군기지 토지수용 문제를 해결까지 도로를 봉쇄한다"고 쓰여져 있었다.

이곳 황새울 영농조합 창고 벽면에는 "이 땅은 우리 목숨, 끝까지 지킨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부착돼 있었다. 영농창고 맞은 편 논밭에는 헬기, 탱크, F-16폭격기 등 미군장비를 상징하는 모형물 5점이 설치돼 있었다. 설치미술가 최병수씨가 미군기지 확장반대를 요구하며 세운 설치작품이다. 이곳 출신인 가수 정태춘씨는 팽성대책위 고문을 맡아 고향 지키기에 동참하고 있다.

▲ 팽성대책위 주민들이 미군기지 활주로로 사용될 논 위에 현수막을 내걸어 놓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팽성읍 주민들이 토지 강제수용을 반대하며 농기계로 도로를 봉쇄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해 12월 26일부터 24시간 천막 농성중

지난해 11월 팽성읍 일대 24만평 농지가 미군기지에 수용된다는 방침이 발표되면서 71개 마을 이장들이 모여 팽성대책위를 결성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26일부터 농로에 천막 농성장을 마련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주민들은 24시간 교대하면서 국방부의 토지수용 움직임을 감시·저지하고 있다.

천막 농성장에 들어가자 그곳에 모여있던 부녀회원들은 미군에 의한 피해를 털어놓았다. 이옥자(여·59·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씨는 "미군기지에 땅을 빼앗기고도 보상은 커녕 알몸으로 쫓겨나 움막을 짓고 살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경분(여·50·대추리 부녀회장)씨는 "미군기 굉음으로 인해 애들이 경기가 들리고, 미군들이 폐유를 마구 태워 그을음 때문에 빨래를 널 수도 없었다"며 "미군에게 요구할 것은 없고 다만 바라는 것은 자기들 나라로 조용히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작년 11월부터 K-6 미군기지 주변 농로에서 농성을 벌이는 팽성읍 주민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부녀회원들은 미군에 의한 강간, 성희롱 등의 사례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미군이 무서워 밤에 돌아다니지도 못했고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마음껏 치장도 못했다"면서 "당할 만큼 당했고 참을 만큼 참고 살아왔으니 더 이상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수용(36·팽성읍 대책위 총무)씨는 정부와 미군이 국가안보를 위해 희생당하며 살아온 주민들을 반미주의자로 만들고 있다고 항변했다. 이씨는 "대추리의 땅은 주민들의 땅이지 국가의 땅이 아니다, 주민들은 모든 것을 걸고 땅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면서 "주민들끼리 농담 삼아 차라리 미군을 내보내고 핵폐기장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미군에게 땅을 내주는 것을 결사반대하고 있다"고 절박한 상황을 전했다.

이씨는 또한 "정부와 미군이 국가안보를 위해 희생해온 순진한 주민들에게 또다시 피해를 강요하면서 반미주의자로 만들고 있다"면서 "올해부터는 미군기지 이전반대 단체들과 전국적으로 연대해 투쟁할 것이며 3월에는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투쟁계획을 밝혔다.

김지태(44·팽성읍 대책위원장)씨는 미군기지 확장지역 토지 소유주들이 토지매매 협상을 일체 거부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미군 기지에는 한 평의 땅도 내줄 수 없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봐라"면서 "정부가 강제로 토지를 수용하려고 한다면 부안보다 더 심각한 저항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K-55 미군기지 담장 주변에 위치한 '평화의 논'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김용한씨(오른쪽)와 재일교포 2세 도유사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용산기지 이전은 용산의 고통이 평택으로 이전되는 것"

평택대책위는 지난해 5월부터 '평화의 논 한 평 사기 운동'을 전개, 전국 각지의 시민 605명이 동참해 K-55 미군기지 담장 부근인 평택시 서탄면 금각리 일대 논 605평을 매입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며 전개한 '한평 반전 지주회'에서 착안한 것.

평택대책위는 지난해 '평화의 논' 농사로 지난해 3가마(20kg 12포대)의 쌀을 수확했다. 이중 1가마(4포대)는 부안 핵폐기 대책위원회에 보냈고, 1가마는(4포대) 평택시의 소년소녀가장 4명에게 전달했으며 나머지 1가마는 전농의 '통일 쌀 보내기'를 통해 북한에 보내기 위해 보관하고 있다.

▲ K-55 미공군기지에서 굉음을 내며 수송기가 이륙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군기지 피해 반대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재일교포 도유사(47·여중생범대위·매향리범대위 국제연대위원·오키나와-한국민중연대 특별회원)씨가 28일 평화의 논 현장을 방문했다. 도씨는 지난해 9월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미군차량에 의한 일본유학생 조미란(KBS 성우출신)씨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유족 방문차 입국한 상태였다.

도씨는 28일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미군기지 주둔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면서 "용산기지 이전은 미군기지 이전이 아니라 용산의 고통이 평택으로 이전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군산 미 공군기지 인근 주민 2035명이 제기한 미 전투기 소음 피해에 따른 집단 소송판결이 일부 승소한 것으로 27일 밝혀지자 미군기에 의한 소음피해 소송을 준비해 온 평택대책위도 다음달에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용한(49·민노당 평택시 지구당위원장·SOFA개정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위원장은 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회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도움을 받으며 소송을 추진해 왔다"면서 "미군기 소음피해에 대한 평택시 용역 결과 K-55 미군기지 일부 지역의 경우 군산보다 소음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승소에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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