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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한나라당의 반대로 결국 좌절됐습니다. 수년째 이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위령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16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어떤 유족들은 가족들의 사망일자를 몰라 여태 호적정리는 물론 제사도 제대로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동족상잔의 전쟁과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동족을 죽고 죽이는 뼈아픈 역사를 겪어 왔습니다. 그 모습을 이곳 미국에서 다시 접하고서 저는 통곡이라도 할 것 같았습니다.

이 사진들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 중에서 필자가 가려 뽑아 보냅니다.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편집해서 보내지 못한 것은 상자에 담긴 사진이 뒤죽박죽돼 있고, 필자도 현재 가려 뽑는 가운데 그날그날 송고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점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필자 주


▲ 1950. 9. 27. 전주. 학살된 시신의 사진만 남아 있고 가해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구천을 헤매는 그들의 원혼에 묵념을 드린다.
ⓒ NARA
▲ 1950. 9. 27. 전주.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 계실까?
ⓒ NARA
▲ 1950. 9. 29. 충주. 마을 주민들이 학살의 현장을 파서 시신을 확인하고 있다
ⓒ NARA
▲ 1950. 9. 30. 진주. 한 소년이 씨레이션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고 있다
ⓒ NARA
▲ 1950. 10. 10.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 NARA
▲ 1950. 10. 10. 함흥.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울부짖는 아낙네들
ⓒ NARA
▲ 1950. 10. 13. 함흥. 우물에서 학살된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 NARA
▲ 1950. 10. 19. 함흥. 시신더미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 NARA
▲ 1950. 10. 19. 함흥. 지아비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 NARA
▲ 1950. 10. 19. 함흥. 학살에는 남녀가 없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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