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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소비’는 생활 그 자체이다. 먹고, 자고, 일하고, 움직이는 모든 일에 돈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세상을 향해 11월 26일, 하루 동안 ‘아무 것도 사지 말자’라고 외치는 곳이 있다.

▲ 지난 11월 22일 녹색연합의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캠페인'
ⓒ 이유진
지난 22일, 녹색연합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소비중독’ 바이러스를 잡기 위한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캠페인을 벌였다. 세계 50여 개 나라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의 의미는 단순히 과소비를 줄이자는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과도하게 소비하는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오염, 노동문제, 불공정한 거래에 대해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2001년 국내에서 소비된 휴대폰은 약 1천5백만 대, 그 중 60%인 9천여만 대는 신형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일부 재활용 된 것을 제외한 820만 대는 폐기처분됐다. 액수로는 1조5천억 원. 여기서부터 휴대폰 과소비로 버려지는 엄청난 돈의 액수보다 더 기막힌 일이 아프리카에서 벌어진다.

휴대폰 핵심부품으로 쓰이는 탄탈룸의 원료인 ‘콜탄’을 캐내느라 아프리카의 숲이 뽑혀 나가고, 강바닥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콜탄 값이 무려 10배나 뛰면서, 콩고, 르완다, 앙골라 등 내전이 계속되는 국가의 군벌이 서로 콜탄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1990년대, 콜탄 광산의 이권다툼 소용돌이 속에서 무려 5백만 명의 주민들이 사망했다. 세계 콜탄 매장량의 80%가 묻혀 있는 콩고는 고릴라의 지구상 마지막 서식지이기도 하다. 콜탄 채굴 열풍이 불면서 고릴라 수가 지난 5년 동안 80~90% 줄어들었고, 코끼리를 포함 야생동물 90%가 사라졌다.

내년 1월부터 실시될 이동통신 번호이동성제도를 앞두고 이동통신사들은 고객을 지키기 위해 가입자들에게 고성능 신형 휴대폰을 교체해 준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우리가 멀쩡한 휴대폰 하나를 폐기하는 순간 지구반대편 아프리카에서는 ‘비명’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최첨단 제품 원료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면 중국 광둥성 기유마을은 최첨단 제품 폐기물로 수난을 겪고 있다. 대형 컴퓨터에서 휴대폰까지, 일명 'e-쓰레기'는 엄청난 양과 유독성으로 인해 지난 1989년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을 통해 국제간 이동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e-쓰레기' 최대 방출국인 미국은 협약 비준을 유보한 채 엄청난 양의 'e-쓰레기'를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컴퓨터 쓰레기로 덮인 기유마을에서 1년 동안 버려진 컴퓨터와 전자제품을 차곡차곡 쌓으면 자유여신상 높이의 두 배가 된다고 한다.

▲ 전세계인들이 한국인들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려면 지구가 하나 더 필요하다
ⓒ 이유진
부서진 채 방치된 모니터 유리조각에서 나온 납과 수은으로 오염된 지하수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30km이상 떨어진 곳에서 트럭으로 물을 실어다 마시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기유마을의 주민들은 하루 $1.5를 벌기 위해 마스크 한 장 얼굴에 걸치지 못한 채, 쪼그리고 앉아 플라스틱을 태우고, 모니터 유리를 깨고, 부품에 있는 금, 구리, 철, 팔라듐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위험한 작업에 어린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기유마을 주민들은 모두 산화연, 수은, 납, 카드뮴, 비소, 크롬과 같은 독성 물질에 노출돼 있다. 컴퓨터 보급대수 1천만 대를 돌파한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폐컴퓨터 발생량과 처리경로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업계에서는 폐컴퓨터의 60%이상이 중국으로 수출된다고 추측하고 있다.

커피, 설탕, 초콜릿, 그리고 종이 한 장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파괴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희생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의 목적은 소비에 대해 ‘죄의식’을 갖자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만족’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가 소비를 조장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윌은 68달러 25센트짜리 나이키 신발을 사기 위해 저금을 하고 있다. 윌이 주당 3달러 25센트를 번다면, 몇 주 동안 돈을 모아야 할까?” 미국 16개주에서 사용하는 초등학교 수학교과서에 실린 문제이다.

우리 아이들은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100만 번의 광고를 접하게 된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소유’에 대한 욕구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디즈니 만화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이 큰 인기를 끌자 아이들의 성화에 못 견딘 미국 가정에서 앞다투어 달마시안을 구입했고, 얼마 안가 미국 전역에서 버려진 달마시안으로 홍역을 치렀다.

최근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가 성공하면서 열대어 수요가 급증, 남태평양 바누아투 산호초 일대 열대어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아이들이 포켓몬스터 빵에 들어 있는 스티커를 모으려고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모은 것과 같은 사례이다.

1992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캠페인을 처음 시작한 칼레 라스의 직업은 광고기획자였다. 그는 자기가 만드는 광고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소비하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광고를 비판하기 위해서 광고를 만드는’ 애드버스터즈(Adbusters)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해마다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과 ‘TV 안보는 날’ 캠페인을 함께 펼치고 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저자 전우익 선생님은 현대인을 “죽어라고 일해서, 죽어라고 사재끼고 또 죽어라고 버린다”라고 표현했다. 최근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살인, 납치, 유괴, 자살과 같은 흉흉한 소식의 원인은 어이없게도 유흥비와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쓴 카드비용 때문이었다.

한국의 신용카드 발급은 세계 4위 수준으로 18세 이상 경제활동 인구 한사람 당 평균 4.5장의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03년 8월말 집계 신용불량자수는 341만 명으로, 결제일만 되면 불안해하는 ‘신용카드결제일 증후군’이란 신종 질환까지 생겨나고 있다.

쇼핑 중독증은 ‘불필요한 물건을 마구 사들인 뒤 무엇을 샀는지 정확히 기억도 못하고 쇼핑을 못하면 왠지 불안해하는 증상’을 말한다. 1999년 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20세 이상 성인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쇼핑중독증에 걸린 사람은 6.6%였다. 2001년 한국소비자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TV홈쇼핑 채널을 통해 제품 구입 경험이 있는 사람 10명 중 1명은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이상 홈쇼핑을 이용하는 쇼핑중독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 '소비로 부터 탈출'을 의미하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상징 로고
ⓒ 이유진
미국사회 쇼핑중독을 지독한 독감 바이러스에 비유해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신조어로 만들어낸 존 더 그라프는 어풀루엔자를 ‘고통스럽고 전염성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병으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 등의 증상을 갖고 있다’라고 정의했다.

그라프가 쇼핑중독에 대해 내리는 처방은 간단하다. “소비에 대한 욕구를 줄여라.” 자연자원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는 것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릴 곳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가 미덕이자 곧 경제발전 척도인 사회에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더 가질 것이냐’ 아니면 ‘자연 속에서 가족과 함께 자기성찰을 하는 검소하고 단순한 삶을 살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살면 '지구'가 몇 개나 필요할까?

"인도가 영국처럼 부강해지길 원합니까?" 간디가 대답했다.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몇 개나 더 있어야 할까요?“ 간디는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단 한사람의 '욕망'을 채우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구가 몇 개가 필요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캐나다 진보재정의협의회(Redefining Progress) 경제학자 마티스 웨커네이걸과 윌리엄 리스는 '생태발자국'을 제시한다.

생태발자국은 우리가 소비하는 에너지, 식량과 주택, 도로 같은 인공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자원을 생산하고, 또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드는 모든 것을 토지로 환산한 것이다. ‘하나 뿐인’ 지구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생태발자국 지수는 1인당 1.8헥타르(5445평)이다.

그러나 실제 평균 한국인의 '생태발자국'지수는 1인당 3.3헥타르(9982평)로 나타났다. 이대로 살아간다면 우리에겐 지구가 하나쯤 더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의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외국으로부터 돈을 주고 사들인 목재, 광물, 식량, 석유를 생산해 내기 위한 만큼의 토지는 ‘생태적 적자'로 남게 된다.

휴대폰을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의 콜탄을 사오거나 사용한 컴퓨터를 중국에 폐품으로 수출하는 것 모두 '생태적 빚'에 해당한다. 목재 소비량을 따져보면 우리의 '생태적 적자'가 얼마나 큰지 잘 드러난다.

한국인이 매년 소비하는 목재를 강원도에서 생산한다면 강원도 숲은 2년, 한반도 전체의 숲은 15년이 채 되지 않아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다. 실제 우리가 쓰는 목재는 브라질 아마존의 숲이나 인도네시아 열대밀림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목재'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하지만 그 돈이 사라지는 자연과 숲에 의존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상해 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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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에너지전환을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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