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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술 대학 앞 거리 인터뷰하는 임경란 팀장과 화면에 담고 있는 배상현씨.
ⓒ 배상현
한국군 파견 예정지역이던 이라크 모술과 킬쿡(키르쿠크)에서 민간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Corea평화연대' 소속 민간조사단 배상현씨가 7일~10일까지 활동상황을 전자우편으로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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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는 모술에서 '이라크 공산당' 사무실을 방문, 관계자로부터 "한국군이 오는 것에 대해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해왔다. 그리고 배씨는 미군과 같은 복장을 한 이라크인들을 시장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 당 관계자는 '미군과 같은 테러리스트'라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

배씨는 또 "곳곳에 미군들이 탱크 등을 앞세워 도로를 지키고 있고, 그 하수인인 친미 이라크 군대와 경찰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면서, "해만 떨어지면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리고, 조준 사격 자세의 미군들 차량이 어디론가 달리고 하늘에는 헬기가 정신 없이 다닌다"고 현지사정을 설명했다.

또 배씨는 "거리에서 만난 미군들은 사진도 찍지 못하게 했다"면서 "그곳에 갔다가는 사진기고 뭐고 다 빼앗기고, 감옥에 가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참 기가 막히면서, 상황이 이 지경이니 이들이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증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배씨 일행은 킬쿡에서 한 초등학교 여교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한국군이 온다면 한국군도 미군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맞서 싸우겠노라"고 말했다고 알려왔다. 모술에서 킬쿡까지는 250km 정도.

다음은 11월 7일부터 10일까지 보내온 활동상황 가운데 주요 내용을 간추린 것으로, 아래 내용은 배상현씨가 한국시간으로 11일 밤 11시30분 경 마산에 있는 Corea평화연대 사무실로 보내온 내용이다.

▲ 이라크 기독 민주당 관계자와 설문, 인터뷰 하는 임경란 팀장과 하이달.
ⓒ 배상현
[11월 7일] 이라크공산당 관계자 만나 이 곳은 한국 기준으로 금요일이 휴일이다. 그 사실을 잊고 아침을 서둘러 나섰는데 거리가 평소와 다르게 아주 조용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휴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에 차질을 빚는 순간이었다. 어렵게 '쿠르디스탄 정당'과 '이라크 공산당'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산당을 방문해서 나눈 얘기 중에 시장을 다니다 미군과 같은 복장을 한 이라크인들을 보고 그들에 대해서 물어보니 새롭게 조직된 이라크의 군대라고 했다.

그는 그 군대를 가리켜 '미군들과 같은 테러리스트'라고 하며, 한국군이 오는 것에 대해서도 결코 원치 않는 일이라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와 안정을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좀 더 많은 평화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들의 아픈 현실과 간절한 소망을 알 수 있는 시간 이 아니었나 싶다.

전쟁 이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무력감에 아파하는 이들을 안타깝게만 생각했는데, 작은 것에서부터 조용히, 그러나 큰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는, 이들의 위대하기까지 한 힘이 있음을 느꼈다.

한국군이 모술이 아니라 킬쿡과 하디사로 파견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사활동지역을 옮기기로 했다. 하디사까지는 바그다드에서 300km, 모술에서 킬쿡까지는 250km다. 우리 팀은 곧 바로 내일 킬쿡으로 갈 것이고. 그 후 하디사로 갈 것이다. 하디사는 팔루자, 라마디, 히트와 함께 사담과 미군의 격전지라고 이스마엘이 얘기해 주었다. 하디사에는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그것도 걱정이다.

[11월 8일] 미군헬기 격추소식 들어 모술에서의 조사 활동은 현지의 각 정당 대표들과 대학생, 시민들을 만난 것에 그쳐야 했다. 신문사와 경찰서, 미 사령부, 가정집 방문의 일정이 있었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일정이라 다음 지역으로 옮겨서 활동을 해야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어제 밤(7일) 회의 때 날이 밝는 대로 킬쿡으로 향하기로 했는데, 급작스럽게 우리를 통역해주던 하이달이 집에 다니러 가서 점심때가 다 지나가도록 오지 않아 그를 기다리는 동안 인터넷 카페에 들러 평화연대에서 온 메일을 확인하고 이곳 소식도 전했다.

곳곳에 미군들이 탱크 등을 앞세워 도로를 지키고 있고, 그 하수인인 친미 이라크 군대와 경찰이 거리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해만 떨어지면,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리고, 조준 사격 자세의 미군들 차량이 어디론가 달리고 하늘에는 헬기가 정신 없이 다니는 것이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이 있는 곳에 가서 얘기 해 보고 싶다고 하니깐 절~대 갈 수 없다고 했다.

미군들 사진을 찍는 것도 안되고 그곳에 가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그곳에 갔다가는 사진기고 뭐고 다 빼앗기고, 감옥에 가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참 기가 막히면서, 상황이 이 지경이니 이들이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증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9시면 온다던 하이달이 저녁 때가 되어서도 오지 않았다. 뉴스를 보니 이라크인들의 공격으로 미군 헬기가 격추되고, 사상자도 적지 않게 있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다보니 혹시나 하이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루의 일정이 덕분에 엉망이 되긴 했지만 함께 팀을 이룬 일행의 안위가 먼저 걱정이 되어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는 차에 마침 하이달이 왔다.

우리가 걱정했던 것처럼 오는 길에 미군들이 길을 막고 있어서 곧장 올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나저나 무사히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상황이야 어찌됐건 늦게 온 것이 많이도 미안한가 보다. 아부함멧(이스마엘)과 아랍어로만 뭐라고 이야기를 심각하게 주고받기만 하고 밥도 먹지 않는다. 식사도 못했을 텐데….

아부 함멧이나 하이달은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 우리가 만든 음식이나, 그 어떤 것도 먹은 적이 없다. 꼭 자신들의 식사는 언제 준비했는지 자신들이 지불해서 구입해 먹는다. 그렇다고 넉넉한 형편의 사람들도 결코 아니다. 보면 볼수록 말과 행동, 생각들이 경건하기 이를 데 없다. 배울게 많은 사람들이다.

어제는 새들이 엄청나게 날아들더니, 오늘은 어디서 왔는지 파리떼들이 득실거려서 이스마엘과 시장에 나가서 살충제와 저녁때 먹을 오이를 사왔다. 그리고 오늘은 겨우 아무함멧을 꼬드겨서, 샤오이망(양고기를 얇고 작게 썰어서 빵과 먹는 것)을 '대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종일 물도 먹지 않고 저녁 한 끼만 먹는 것으로는 그들이 먹는 빵 한 조각은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곁들여 먹을 야채 한 조각 없이 빵만 먹었던 것 같아 맘이 이만저만 불편했던 게 아니었는데, 조금은 부담을 든 것 같다.

우리 팀이 묵고있는 숙소의 앞길에 미군들이 체크 포인트를 설치하고 있어서 차들이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또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나 싶어서 미군들에게 다가갔더니 근처에 오지 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오지도 말란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다고 무조건 돌아가라고 위협했다.

어쨌든 내일 아침 6시에는 킬쿡으로 떠나기로 저녁 회의 때 결정했다. 밤에 갈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이스마엘이 해가 떨어지고 나면 몇 배는 더 위험해져서 되도록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단다.

[11월 9일] 킬쿡 미군부대 찾아가 모술을 출발해서 약 4시간을 달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킬쿡에 도착했다. 도중에 조금은 많은 비가 내려 색다른 느낌을 가지며, 비 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 동안의 부족한 잠을 청했다.

킬쿡에 거의 다다랐을 때의 느낌은 우리들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곳곳에는 불에 탄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고, 숙소로 삼은 호텔(BABA)의 옆은 은행인데, 은행 앞에는 예외 없이 철조망이 쳐져있고 총을 든 이라키 경찰들과 길게 늘어선 줄의 주민들이 있었다.
이스마엘(통역)은 경찰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NO! NO!"라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곧 카메라를 들고 그곳으로 갔다.

경찰들에게 촬영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바그다드나 모술과 다르게 웃으며 찍어도 좋다고 했다. 번호표 같은 것을 들고있는 주민들이 보였다. 은행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손에는 봉지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알고보니 후세인이 새겨져있는 지폐들을 새로운 화폐로 교환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쌀이나 음식 같은 배급도 받는다고 했다.

또한 특이 할 만한 건 예전에는 이라크에서 거리 청소 등을 하는 것을 아주 천하게 여겼었는데 지금은 미군 부대 앞이나 은행, 경찰서 앞에 새벽부터 나와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모여든 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지역의 지도자들은 미군들에게 가서 허리 굽히지 않도록, 주민들에게 일자리 제공을 하고 식량문제, 교육, 의료 등 많은 부분에서 그들의 사회를 지키고 다시 일으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들에 대해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눈으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순수하게 도움을 주는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발 빠르게 일정에 들어갔다. 킬쿡종합병원을 시작으로, 킬쿡대학, 경찰서, 신문사를 방문해서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미군 부대에도 갔었는데 거기서는 우리의 요구를 거절당하고 돌아 와야했다. 오늘의 활동 중에서는 대학에서의 일들이 가장 가벼운 마음이면서도, 흡족한 성과(?)를 얻은 것 같다.

▲ 배상현씨.
ⓒ 희망연대
[11월 10일] 하디사로 갈 채비 킬쿡에서의 활동을 오늘로 마치고 또 다른 파병 예상지인 하디사로 가기 위해서는 오후 늦은 시간에의 이동이 위험하기 때문에 오늘의 조사 활동은 오후 1시까지만 하기로 했다. 때문에 서둘러 일반 서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거리고 나섰다.

그런데 아침 일찍 나오자마자 우리를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모래바람이 불어 온 것이다. 눈과 호흡기가 고통스럽고 입안에는 모래가 자글자글 씹혔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도 않고, 이런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라크 인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에 무릅쓰고 거리를 누볐다.

자동차 타이어 수리공, 과일상, 음반 판매업자, 마켓점원, 식육점원, 빵 굽는 아이 등 다양한 직업에 다양한 연령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남 여 한 쌍은 몹시 화를 냈다. 어제 미군에 대해 저항군의 공격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의 피해는 전혀 없었음에도 그에 대한 보복으로 죄 없는 아이들만 몇 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들은 미군, 한국군, 그 외 다른 외국군도 다 필요 없다고 했다.

조사 활동을 하면서 매번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한 맺힌 이들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될 때이다. 한 초등학교에 가서 여성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한국군이 온다면 한국군도 미군과 같은 존재로 인식, 맞서 싸우겠노라고 했다.

킬쿡의 일정을 정리하고 바그다드로 돌아와서 일과를 정리하는 지금 밖에서는 어디에선가 총성이 들린다. 또 많은 민간인들이 다쳤다는 얘기를 듣게 될까봐 걱정스러워진다. 내일은 "하디사"로 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고 하루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 저녁 회의에서 기존의 킬쿡, 모술, 하디사의 일정 외에 좀 더 바쁘게 움직여 바그다드를 비롯해 팔루자, 나시리아, 바스라를 추가로 일정에 넣었다. 더욱 바빠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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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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