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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란 배상현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Corea평화연대(이하 평화연대)에서 파견한 이라크 민간조사단이 바그다드와 모술지역에서 벌인 1차 조사활동 보고서를 보내왔다. 민간조사단으로 파견된 임경란 배상현씨는 지난 2일 인천공항을 출국, 4일 이라크에 들어가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이라크 현지인들의 안내를 받아 민간인과 정당인, 지역 지도자들을 만나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터졌던 3월과 4월 두 차례 이라크에서 '인간방패'와 구호활동을 벌였던 배상현씨가 보내온 현지 보고서는 생생한 내용들이 많다.

민간조사단이 보내온 내용에 따르면, 바그다드 적십자사 건물이 폭격을 맞았던 것에 대해 이라크인들은 "적십자사도 미국과 같은 편이라서 공격했다"고 여기고 있다.

민간조사단이 만난 이라크인 아부 알리씨는 한국군의 파병에 대해 "우리는 군대를 요구하지 않았다"면서, "한국을 좋아하지만 또다시 한국군이 온다면 그들은 우리의 적이 될 것이다. 미군은 x들이다. (한국이) 그들과 같아지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민간조사단은 바그다드 시내 곳곳에 미군들이 설치해놓은 방호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내는 이라크 경찰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는데, 시민들은 그들을 '독스'(dog라는 뜻)라면서 "미군과 같다"고 말했다.

민간조사단은 학생들도 만났는데, 이들은 "무장세력의 저항은 정당하다"면서 "현재 인권 문제가 형편없는 수준이며, 미군은 그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배상현씨가 11월 3~6일의 조사 활동 내용을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전문이다. 배씨의 1차 조사보고서는 한국시각으로 7일 밤 늦게, 마산에 있는 Corea평화연대 사무실로 보내온 것을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것이다.

▲ 지난 3월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의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 모습.
ⓒ 배상현
- 11월 3일 어제 암만 숙소에 여장을 풀고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보니 이미 날이 밝고 있었다. 너무 오랜 비행 탓이기도 하고, 아침 일찍 이라크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대사관 업무를 시작하는 관계로 채 피로를 풀지도 못하고 숙소를 나섰는데 정작 대사관의 문은 굳게 잠겨 있는 것에 당황스러워 현지 사람에게 확인해 보니 우리가 현지 시간을 잘못 맞춰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려 혹시나 비자가 늦게 나오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비자 신청을 했는데 담당자의 말인 즉, 지금의 이라크 상황은 비자가 없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 아침도 거른 채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이 무슨 소린가. 그나저나 다행히도 큰 문제 하나를 해결한 것에 만족해하며….

다음 날은 이라크로 가기 위한 차량을 준비하는 일. 다행히도 암만에서 안내 일을 하고있는 수진이가 GMC차량(국경택시)을 계약해 주었다. 예전보다는 다소 값이 오른 $170이지만, 또 하나의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되어서 만족스러웠다.

이곳 암만 시간으로 밤 10시면 바그다드로 출발하게 된다. 모술지역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라 다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지만 앞으로 있을 일정동안의 모든 일 역시 오늘 같이 잘 풀려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랍권의 라마단 기간(오후5시 이후부터 사회활동가능)으로 식생활의 불편함이 우려된다.

- 11월 4일 어제 밤 10시 암만을 출발해서 국경을 넘어 사막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피로에 지쳐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요란한 경적 소리와 여기 저기 뒤엉켜있는 차량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코를 찌르는 매연을 느꼈을 때, 비로소 아! 드디어 이라크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을 보고서는 빠르게 변화되고있는 이라크를 느꼈다.

갓길에 늘어선 많은 견인 차량들 때문이었다. 아마도 폭발 등으로 차량들이 불에 타고….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견인하기 위한 차량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긴장감이 들었다. 또 하나는 시내 곳곳에 미군들이 설치해놓은 방호벽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미군들의 상황을 짐작케 해주었다.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2시간에 걸쳐 도착한 바그다드의 하루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선 숙소로 삼은 '알라비 아파트먼트'에 여장을 풀기로 하고 숙박 흥정에 들어갔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하루 숙박비용에 $45를 요구하기에 결국 $40로 하고 여장을 풀었다.

현지에서 또 하나의 과제가 생겼는데 그것은 '라마단 금식월'이었다. 오전부터 해가 지는 오후 5시30분까지는 물을 비롯한 일체의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 팀은 숙소에서 간단한 요기만 하고, 이라크에서의 일정에 들어갔다.

먼저 현지에서의 활동에 필요한 차량과 가이드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관계를 가졌던 카심과 하이달 등을 찾아 나섰지만 허사였고,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통신센터를 찾아 전화 연결을 해봤으나 전쟁 중 폭격으로 라인이 끊겨있어 그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환전을 한 뒤, 택시를 타고 또 다른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환전을 하며 화폐가 새롭게 바뀐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이라크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바그다드 시내와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안전한 뉴바그다드의 알 마시델 지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어렵사리 친구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이동화씨와 뉴바그다드지역 지도자로 있는 아마르를 비롯한 네빌, 쌀램, 아부알리를 만났다. 그렇게 아마르와 만나 우리팀이 할 일들을 설명하고 이야기 나눈 결과 향후 일정에 필요한 차량과 가이드를 해줄 사람을 소개해 주기로 약속 받았다.

덕분에 내일부터 무리 없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동화씨와 함께 바그다드 외곽지역에 있는 쌀람 아저씨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그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먼저 이라크에 와 계시던 '천주교 평화연대' 김재복 수사와 서울의 '이라크 지원연대' 최혁씨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주말께 모술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쌀람의 집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과 놀다가 숙소에 와서 한국으로 소식을 전하려고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지라, 인터넷이 내일이라야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팀의 앞으로의 일정은 내일(5일)은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워먼 리그'를 비롯한 여러 단체, 협회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모레(6일)부터는 모술로 가서 현지의 정확한 상황과 현지 주민들의 입장, 그들의 요구들을 면밀히 조사할 것이다.

오늘 아부 알리 아저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우리는 군대를 요구하지 않았다. 한국을 좋아하지만 또다시 한국군이 온다면 그들은 우리의 적이 될 것이다. 미군은 x들이다. 그들과 같아지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 11월 5일 오늘부터 우리팀과 함께 하기로 한 스마엘과 하이달을 오전 9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정확하게 맞춰와서 순조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선 아마르를 만나서 지역의 각 정당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았다.

이슬람정당(Islamic Party)의 알 다와씨, 이라크평화당(The peace iraqi party)의 사알레아브 하무라씨, 그리고 민족민주터키당(Turkman Democratic party)의 마지드씨를 만났다. 그리고 지역의 최고 지도자인 카셈 차프씨와 부지도자격인 아마르 마수드씨를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또 스마엘과 하이달도 이라크의 시민으로서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런 다음 한국으로 메일도 보냈고, 어렵게 통신센터를 찾아 의장님께도 연락을 취했다. 전기 사정은 많이 나아졌지만, 통신은 아직까지도 복구되지 않아서 이라크 내는 물론이고, 외부로의 연락이 많이 어려운 상황이다. 아마도 미군들이 연락책을 끊기 위해 고의적으로 복구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늘 저녁은 아부 알리 아저씨가 집으로 우리팀을 비롯한 한국 사람들을 초대해 주었다. 숙소로 가는 길이 위험하다며 아부 알리 아저씨가 직접 데려다 준다고 했다. 오는 길에 이라키 경찰들이 검문을 했는데, 아부알리가 그들을 가리켜 '독스'(dog의 뜻)라고 하며, 미군과 똑 같다고 했다. 일반적인 서민들의 정서에 미군들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 것 같다.

내일은 동화씨와 함께 모술로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팀은 이라크의 각 종교 지도자들과 정당 학생 시장상인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들을 들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파악할 것이다.

오늘 인터뷰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 드와씨는 먼저 "우리들의 노력 후에 각국의 연대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왜 후세인 당시는 우리를 돕지 않았느냐" "휴먼쉬드 조차도 믿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안전이 필요하다" "적십자사는 미국과 같은 편이라서 공격했다" 등의 말을 했다.

마지드씨는 "후세인이 20살 당시 알 카헤스쿨에서 마지드에게 공부를 배우던 학생이었는데, 말썽은 부렸으나 영리했다. 후세인 독재는 싫지만 그래도 후세인이 좋은 것은 유일하게 미국에 맞서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으며, "평화·안전·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헬씨는 "평화·안전·의료와 각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카심, 아마르, 아스마엘, 하이달, 아흐메드 알리를 인터뷰했다. 그들 역시 앞의 사람들과 비슷한 대답들을 했으며, 적십자사의 폭격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견차가 있었다. 대다수의 의견은 적십자사가 미국의 편이라서 공격받게 되었다는 얘기들을 했고, 혹자들은 그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는 소수 의견이 있었다.

- 11월 6일 모술로 가기로 약속한 시간에 가까워서야 잠시 눈을 붙였다. 모술은 바그다드에서 48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 새벽 6시30분에 출발해서 4시간 가량 걸려 도착했다. 모술지역에 우리팀이 모두 함께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정했다.

임경란 선생님과 동화씨랑 나는 어제 먹다 남은 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는데 하이달과 이스마엘은 라마단 기간이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친구들을 두고 우리만 요기를 하자니 미안한 마음에 연신 'sorry'를 날렸지만 오히려 우리가 불편할까봐 자는 척을 하는 이스마엘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함께 했다.

이후 곧바로 일정에 들어갔는데, 우선 모술에는 연고가 없기 때문에 이 곳 주민들에게 물어서 '이라크 크리스챤 민주당'을 방문했다. 특이할 만한 것은 "한국이라면 군대고 뭐고 다 좋다"는 것이었고,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건 공병이나 의료나 간에 언제든지 총을 들고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들은 군대의 성격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거의가 그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외국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군이 이곳 모술에 파병되어 오는 것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주고 그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는 대부분이 "I don't want them to come"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학생들을 만났을 때는 "무장세력의 저항은 정당하다. 한국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얘기들을 했고,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형편없는 수준이며, 미군은 그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의 고통이 어떠할지는 더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오늘 하루 동안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폭발음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전쟁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밤 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숙소 인근에 있는 티그리스 강변에 챠이(이 곳 사람들이 마시는 차)를 마셨다. 이 아름다운 곳에 이렇게 맛있는 차와 함께 하는 시간이 힘든 시간들을 잊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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