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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강유선씨(52)가 머슴밥을 풉니다. 보통 밥그릇보다 더 넓적한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한가득 퍼 담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담은 밥을 머슴밥이라고 한답니다. 밤새 일할 사람들이 먹을 밥이니 오죽하겠습니까?

된장국, 조기구이, 김, 깍두기 등 예닐곱 가지 기본반찬과 물, 머슴밥, 그리고 주문한 음식까지 차려놓으니 밥 한상이 푸짐합니다. 이제 머리에 수건 한 장만 얹으면 배달 준비는 완벽하게 끝납니다.

강씨는 이곳 동대문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자그마치 10년이 넘게 배달 일을 하고 있습니다. 덕원상가, 제일상가, 남평화상가, 광희상가 등 총 네 곳 상인들의 새벽밥상을 강씨가 책임지는 셈입니다.

ⓒ 김진석
강씨가 머리 위에 밥상을 인 채 요란한 네온사인과 귀청을 찢을 듯한 음악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정신없이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러다 추운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넘어질까 걱정도 됩니다.

“음식장사는 빨리 가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음식이 식어 버리잖아. 동대문엔 얼음이 얼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잦으니까 얼음이 얼 틈이 없지. 그리고 차들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알아서 잘 피해 다니니깐 사고 난 적은 없어.”

동대문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는 높은 건물과 점점 화려해지는 네온사인, 그러나 요즘만큼 장사가 안 될 때도 없다 고 합니다.

“장사가 너무 안돼. 예전 같으면 새벽 3~4시까지 배달이 밀려 있었는데, 지금은 두 시간 바쁘면 많이 바쁜 거야. 주머니 사정들이 안좋으니까 도시락도 많이 싸와.”

ⓒ 김진석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강씨의 인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오고가며 마주치는 상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눌 때도, 돈을 건네받을 때도 강씨의 활기찬 음성이 상점 안에 울립니다.

음식을 배달하는 일도, 그릇을 찾으러 가는 일도 모두 강씨의 몫이기에 음식에 대한 불만사항은 고스란히 강씨에게 전달됩니다.

“다 먹어놓고 다른 소리할 때가 젤 속상하지. 어떨 때는 정말 밥 한 톨도 안 남겨놨는데 뭐라 할 때가 있어. 그런 건 자기네들이 물건 팔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나한테 푸는 거야. 다 이해해.”

ⓒ 김진석
“삼촌, 밥 시켰어요?"

요리조리 사람들 속을 비집고 나간 강씨가 드디어 상가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한시를 훌쩍 넘긴 시간, 장사치에게 강씨의 방문은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여기선 다 삼촌이고 언니야. 사장님은 어려워. 삼촌이 가깝잖아.”

배달만 십수 년. 그만한 세월만큼 쌓인 단골손님 수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잘 먹는지 아는 건 기본입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더 담고 가리는 음식은 빼놓고 가져갑니다. 가끔 주소가 잘못 전달되어 배달에 차질이 생겨도 음식을 보고 제 주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 김진석
몇 번을 물어봐도 힘든 걸 모르겠답니다.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꼬박 12시간을 배달하고 집에 돌아가면 녹초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달리 무엇을 할 시간도, 기운도 없습니다. 10년 전과 비교해 몸무게가 10kg이나 줄었다는데도 손사래를 칩니다.

“힘드냐고? 아니야. 그건 자기가 하기 나름이야. 내 일이다 싶으면 힘들게 없어. 내 아들, 딸이 먹는다 생각하면 맛있게 해주고 싶고 그러잖아. 남의 일이다 생각하니까 하기 싫고 못하는 거지.

신문 보면 생활고로 자살한다는 소식이 많더라고. 보면 다 30∼40대야. 난 정말 그게 화나. 그 몸이면 먹고 살지.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현장 나가봐. 왜 일자리가 없겠어? 여기도 보면 한국 사람이 거의 없어. 열이면 여덟이 조선족이야. 한국 사람들은 여기 와서 하루 이틀 일하고 힘들다고 그만둔다고.“

ⓒ 김진석
강씨는 이제 스무살인 딸아이와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 그리고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 이렇게 네 식구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입니다.

5년 전 남편이 위가 나빠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병원을 퇴원한 남편은 빚쟁이에게 시달리게 되었고 많은 빚을 감당하지 못한 채 집을 나갔습니다.

"처음엔 원망도 많았지. 하지만 지금은 아무 감정 없어. 그때 많이 힘들었으니까. 병원비로 나간 돈 때문에 빚은 졌지. 일은 못하지. 미안해서 그랬을 거야. 당신이 미안해서 안 들어오는 거겠지.

불쌍하고 안된 것은 우리 어머님이지. 이제 90세를 바라보는데, 아들 하나 있는 거 보고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불쌍하지 다른 건 없어. 노인네가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불쌍해. 자식이 아무리 몹쓸 짓을 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않잖아.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강씨가 두 어깨로 받치고 있는 것은 동대문 상인들의 따뜻한 밥 한 끼만은 아닌 것입니다.

ⓒ 김진석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어떻게 사냐고 물어. 뭐가 힘들어. 아들, 딸 착하지. 요즘 누가 치매 걸린 할머니를 하루 종일 옆에서 돌봐줘. 내 몸 건강하지. 힘든 걸 못 느끼니까 이리 살지.”

정신없이 돌아가는 식당일에 가끔씩은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씨는 지금껏 단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항상 그래왔습니다. 강씨보다 나이가 어린 손님들이 짜증이나 화를 내도 강씨는 그저 “죄송합니다”는 말과 함께 돌아서서 한번 웃으면 그만입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살고, 그러다 보니 얼굴 붉힐 일 많은 우리네 모습이 떠올라 강씨에게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비결은 없어. 욕심을 버리면 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해 주듯이 손님들한테도 해 주면 돼. 웃고 살아도 바쁜데 왜 화를 내?”

ⓒ 김진석
강씨는 그저 아이들이 잘 자라주는 것을 보람으로 알고 일했습니다. 지금껏 어디 아픈 데 없이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내년 봄쯤 빚도 다 갚을 수 있을 거라 합니다.

“다른 건 바라는 거 없고 애들만 잘 자라주면 돼. 언제까지 일할 거냐고? 그건 내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놀면 못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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