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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사소송사상 초유의 대응으로 친일파 재산문제에 쐐기를 박겠다는 봉선사 혜문스님
ⓒ 송영한
경기 남양주군 진접읍 부평리 운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봉선사(주지 철안스님)는 대한불교 조계종 25교구 본사이다. 서기 969년 법인국사 탄문스님이 운악사로 창건한 뒤 1469년(예종1) 정희왕후 윤씨가 인근 광릉의 세조를 추모하여 89칸으로 중창하고 봉선사라고 하였다.

이런 때문인지 봉선사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스님들의 도성 출입마저 금지됐던 조선시대에도 1551년(명종 6)에 교종(敎宗)의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되어 승과시(僧科試)를 보고,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한 교학(敎學)진흥의 중추역할을 하는 등 우리나라 불교의 대들보 역할을 한 사찰이다.

봉선사는 조선시대 7년 전쟁(임진왜란) 중에 불타고 6.25 때도 불타는 등 소실됐으나 그때마다 나라와 사부대중이 힘을 합쳐 중건되었다.

특히 1969년에 불교계의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운허(耘虛)스님이 큰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혁신계 독립운동을 이끌던 운암 김성숙 선생이 부평리 3.1 만세를 주도한 본거지이며 지금은 친일논란의 정점에 서 있는 춘원(春園) 이광수가 말년에 회한의 세월을 보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봉선사가 요즘에 말사(末寺)인 내원암(주지 재문스님) 일원 4만8천여 평을 되찾겠다는 친일파 이해창(당시 백작을 받은 이완용보다 높은 작위인 후작의 작위를 받음) 후손들의 재산반환소송에 맞서 '위헌법률제청' 신청을 내고, 이해창 후손들이 소를 전격 취하하자 이번에는 '소 취하 동의'를 거부하는 등 민사소송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추석을 이틀 앞둔 16일 봉선사 종무소로 찾아가 이번 소송을 책임지고 있는 봉선사 총무과장 혜문(33) 스님을 만나 일반적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는 이번 결정의 배경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나라 팔아먹은 죄보다 더 큰 죄는 없어"

혜문스님은 인터뷰 내내 "나라 팔아먹은 죄보다 더 큰 죄가 있는가?"라고 일갈하며 "우리의 법적 대응이 법조계의 통념으로는 비상식적인 결정으로 치부되고 이로 인해 내원암 일원 5만여평의 땅을 잃을 수도 있지만 진실은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것"이라며 초연해 했다.

이어서 스님은 "해방 전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제헌헌법 부칙 101조를 57년 동안 이행치 않은 국회와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사법부가 매국의 대가로 친일파들이 받은 땅을 고스란히 그 후손들에 일부 돌려주는 등, 어이없는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고 분개하고 "국회는 하루빨리 '친일파 재산환수 특별법'을 입법하고 사법부는 그때까지 친일파후손들의 재산반환소송 재판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의 경과에 대해 혜문스님은 "2004년 12월 소가 제기되고 금년 8월 17일 이해창 후손이 소유권확인소송을 취하할 때까지 원고(이해창 후손 20여명)들의 주장은 6.25때 소실된 등기를 회복하지 못했다며 관련 증거로 1910년 총독부가 제작한 '임야조사부'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장에는 이해창 소유라고 기록돼 있지 않고 총독부로부터 무상임대 받았다는 기록만 있어 결국 원고들은 자기 발등을 찍은 꼴이 되고 만 거죠."

"처음에는 땅을 뺏길 수 없다는 법리에 집중했으나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 사건은 재산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락산 일대 40만평 이상으로 추정되는 방대한 토지를 하사받은 것으로 알려진 후손들이 내원암 땅을 미끼로 재판에 선례를 만들어보자는 의도라는 판단이 서자 우리도 그런 선례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죠. 지금대로라면 재판부는 소취하한 사람에게 땅을 돌려줘야할 곤혹스런 처지에 있고, 9월 1일 재판에서도 져도 괜찮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니 이런 재판도 드물겁니다"하고 그간의 사정을 소상하게 들려준다.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위헌법률신청' 내"

▲ 운허 스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수행자 될 것
ⓒ 송영한
재판부에 신청한 '위헌법률제청'에 대해 스님은 "이해창 후손이 낸 소장을 보면 피고가 대한민국, 서울시, 내원암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는 땅보다도 나라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일 뿐 아니라, 이번 소 취하에 동의해 주면 유사사건에 관련해 위헌법률제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렵기 때문에 소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운허스님의 법통을 이어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싸움은 세상에서 보듯 단순한 재산권 싸움이 아니라 '대한민국은 3.1운동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된 헌법 전문을 수호하기 위한 것인 만큼 재판부는 이를 신속하게 받아들이고 즉시 '위헌 판결'로 이어져야 60년 동안 역사 바로 세우기를 수수방관한 우리의 잘못을 속죄하는 길이 열리고 지하의 독립선열들에게 얼굴을 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을사늑약으로부터 해방 때까지 이 땅에 살면서 친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으며 해방된 지 이미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친일 논의가 타당하냐?"는 질문에 스님은 "프랑스는 지금도 나치에 협력한 직접증거가 드러나면 8, 90대의 노인들이라 할지라도 감옥에 집어넣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에 시한은 없다”고 일축하고 “최소한 일제로부터 훈장과 작위를 받은 매국노들이 나라 판 대가로 받은 재산은 국가에서 환수하는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양민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모은 재산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국대가로 받은 은사금 국공채를 정부가 지불하겠는가?"

스님은 "만약에 매국노들이 나라 판 대가로 일제로부터 받은 은사금 국, 공채에 대해 후손들이 현금 지급을 원한다면 정부가 지불해야할 것인지를 묻는다면 사법부는 물론 국민들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법을 내세워 매국노의 재산을 속속 후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사법부는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것"이며 "민법을 헌법에 앞세우는 것은 마치 수레를 소 앞에 매는 꼴"이라고 사법부에 일침을 가했다.

"'위헌법률제청'신청을 내고 '소 취하'까지 동의하지 않는 데 대해 주변의 반대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스님은 "일반적으로 보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황당한 시추에이션일 수도 있지요(웃음). 처음에는 안팎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으나 지금은 종단의 큰 스님들이나 신도회 등에서도 모두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십니다. 진실은 결국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진실 뒤에는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웃음)"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이나 외는 스님이 이런 돈키호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리라 하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그것은 일반대중이 보는 시각이고 불제자의 눈으로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삼론종(三論宗)근본교리인 파사현정(破邪顯正)에 충실한 것"이라며 "티끌 같은 실리를 좇아 명분을 잃는 소탐대실의 행보는 구도자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로써 결코 친일파와 타협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재판부가 기각하면 직접 '헌법소원' 낼 것"

앞으로의 투쟁 일정에 대해 혜문스님은 "지난 13일로 예정됐던 조계사 촛불집회가 법장스님의 입적으로 연기됐습니다만 9월 30일로 예정된 변론종결을 지켜본 뒤 10월초쯤 다시 촛불집회를 할 생각입니다. 종단과 신도회에서도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동참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9월25일에는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동북부지부(지부장 문만기)와 공동으로 내원암까지 기념 등반을 하고 봉선사의 항일운동 유적도 같이 탐사할 예정입니다"하고 향후 일정을 공개하며 "재판부가 '위헌법률제청'신청을 기각할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을 낼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구리넷(www.gurinet.org)에 송고한 기사입니다.
송영한 기자는 구리넷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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