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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당무보고를 받기 위해 24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회의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승리로 끝난 뒤 보수언론들이 한층 바빠졌다.

경선승복을 선언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극찬이 쏟아진다. "박근혜 후보 역시 오늘의 승자다" "박근혜의 아름다운 승복" …. 박 전 대표의 이탈이 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 일이나 되는 양.

이명박 후보를 향해 방심하지 말고 승기를 굳히라는 훈수도 잇따른다. '경선에서 제기된 의혹 해소'와 '당의 화합' '선거공약 재검토' '선거진용 일신'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북풍 경고' 등 주문은 전방위적이다.

작은 승리에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무장하라는 조·중·동의 사설에서는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이명박 캠프 측근들에 대한 2선 후퇴를 주문하고,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대목에선 마치 이명박 캠프의 선거참모를 보는 듯 하다.

한나라당 선거보고서·당보 같은 보수언론

그야말로 정권교체를 위해 총력전이다. 기사와 사설은 물론 외부칼럼까지 총동원령이다. 이제 국민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몽땅 벗고 뛰는 꼴이다. 그들은 김대중·노무현 집권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이번 기회를 다시 놓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선거에서 정치적 주장을 펴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선진국에서처럼 아예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의 기본자세와 책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지금 요구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또 그것을 구현할 대안을 적극 찾고, 그런 후보가 국민의 선택의 마당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과 시대에 희망을 안겨줘야 한다.

언론 스스로 마치 정치인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자신이 마치 권력의 주체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자세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수언론의 행태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신문인지, 한나라당 당보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언론의 한 기자가 야당 후보에게 선거전략용 보고서를 써줬다가 들통난 일이 새삼 떠오른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신문 자체가 선거용 보고서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들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지지율 낮다' 타령만 하는 진보언론

그렇다고 진보언론들이 국민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 같지도 않다. 진보언론들은 한나라당 후보가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는 경제살리기와 샐러리맨 성공신화는 과거 개발독재시대에나 먹혔던, 그러나 지금은 이미 생명력을 다한 낡은 패러다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선과정에서 같은 당 후보가 지적했듯이 재벌편향의 외눈박이 성장전략으로는 비정규직 양산과 좋은 일자리의 축소, 중소기업의 몰락으로 상징되는 양극화의 늪만 깊어질 뿐이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하지만, 참여정부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재벌위주 성장전략의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보언론들은 한나라당 후보에 대적할 여당후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지지율만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한나라당 경선 이후 실시한 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6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인 반면 범여권 유력 후보들조차 10%를 넘지 못한다. 나머지는 아예 숫자가 거의 안 나올 정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야당 후보에 대한 비판과 여당후보 부재에 대한 한탄에서 끝이다. 거기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스스로 정책과 비전의 실종을 한탄하면서도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과 비전을 갖고 있는 잠재력 있는 후보를 찾으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일종의 착각이 깔려있는 듯 하다. 언론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과 보수언론들이 보이는 일탈행위를 혼동하는 것 같다. 아무리 시대정신에 맞는 정책과 비전을 갖고 있어도, 국민이 아무리 그런 사람을 찾고 있어도, 유력한 야당후보와 견줄 수 있는 높은 지지율 수치가 나오지 않는 한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정책과 비전이 좋아도, 경쟁력 있는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 후보를 크게 다루는 것은 편파적인 보도태도로, 권위 있는 언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럼 한번 되돌아보자.

시대정신 반영한 '희망의 대안' 찾아줘야

▲ 2002년 10월, 당시 대선후보 시절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아준 돼지저금통들이 민주당 1층 마당에 쌓여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처음에 지지율 1~2%로 시작한 노무현 후보는 어떻게 대통령이 됐을까?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한 범여권 후보의 참모는 "보수나 진보언론을 막론하고 대다수 기자들이 기존 정치판의 정치공학적 사고에만 매몰돼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데 놀랐다"고 말한다.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건설 중심·재벌 중심 가짜경제'와 '사람 중심·중소기업 중심 진짜경제'의 대결을 주장하며 성공한 CEO의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의 지지율은 1% 선이다. 그러나 정작 조·중·동의 일원인 <중앙일보>는 그와의 특별인터뷰에 전면을 할애하며, 그의 잠재적 가능성을 엿보는 유연성을 보였다. 혀를 찰 수밖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경우를 보자. 정 전 총장은 여권 후보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상황에서 여권의 유력한 대항마로 꼽혔다. 그러나 끝내 출마선언도 못하고 낙마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 때까지 어떤 언론도 그의 정책과 비전을 제대로 조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 똑같았다. 이유는 지지율이다. 그의 지지율이 1~2%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판은 후보 개인의 의지와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다. 야당이나 보수언론은 정 전 총장의 부상을 집중 견제했다. 여당의 유력 정치인들도 겉으론 부추겼지만 내심은 오십보백보다.

정 전 총장은 사석에서 "보수언론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탄식을 하기도 했다. 묘목이 거목으로 자라려면 정성스레 물도 주고, 햇볕이 잘 들도록 돌봐야 한다. 물 안주고 햇볕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영양공급원인 떡잎마저 떼어내려는 보수언론과 기성 정치권의 견제 속에서, 후보 스스로의 힘으로 몇 %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뒤에야 조명하겠다며 하늘만 쳐다보는 게 진보언론의 할 일인가?

2007년 대한민국 대선은 비극이다.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보수언론의 '과잉'과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 적극 나서지 않는 진보언론의 '과소'가 샴 쌍둥이처럼 기이하게 맞붙어 있다.

진보언론들은 한나라당 경선과정을 비판하면서도 연일 대서특필 하는 데 썼던 지면의 10분의 1만 할애해서라도,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희망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진정 21세기 미래를 열어갈 대통령 후보가 누군지 국민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

그 대상은 누구든 상관없다. 정책과 비전으로 판단하면 된다. 그 잠재력을 현재의 지지율이라는 숫자로만 판단하는 경직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 한국 진보언론은 2007년 대선에서 어떤 희망을 쏘았느냐고 물었을 때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곽정수 기자는 한겨레신문 대기업 전문기자입니다.


태그:#대선, #보수언론, #진보언론,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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