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 2005년 5월 30일 재보궐선거일 저녁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사에 마련된 종합상황실을 나서며 전여옥 대변인의 손을 다독이며 "수고했다"고 치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의 '이명박 지지' 선언이 당 안팎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후보가 당대표를 맡던 시절에 20개월 동안 박 후보의 '입' 역할을 했던 그가 박 후보를 저버리고 이 후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버리고 '정몽준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김민석 전 의원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전 의원이 그 동안 박 후보에 대해 쏟아냈던 말들을 돌이켜보면, 그의 선택은 더더욱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한다.

[정치 입문 전] "박근혜는 '영남권 공주'"

전 의원은 정치를 하기 전에는 박 후보에 대해 탐탁치 않은 평가를 내렸다. 2004년 2월24일 <조선닷컴> 칼럼에서 그는 박 후보를 '영남권 공주'라고 폄하하고 "죽은 박정희가 딸 박근혜를 통해 일종의 '유훈정치'를 하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박 후보가 당 대표가 된 이후 그는 "박 대표를 아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썼으며, (박 후보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비상한 능력과 식견, 풍부한 경험을 지녔다"고 한 달만에 말을 바꾸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내뱉었던 '독설'을 주워담으려는 듯, 박 후보를 깍듯이 보필했음은 물론이다.

박 후보가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재보선 불패' 신화를 만들어내는 등 '실세 대표'로 주가를 올리자 전 의원도 '실세 대변인'으로 인정받았다. 이 무렵 그는 김무성 사무총장, 유승민 대표비서실장과 함께 '친박(親朴) 3인방'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박 후보가 당내 비주류들로부터 공격받을 때마다 그를 온몸으로 지켜내려고 했던 사람도 전 의원이었다. 홍준표 의원이 전 의원을 "당 대변인이 아니라 박근혜 대표의 대변인"이라고 부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박 후보가 2005년 2월 연찬회에서 박 대표가 비주류로부터 '과거사' 문제로 집중 공격을 받자 이들을 의리없는 '뺑덕어미'라고 비난한 일화는 유명하다.

전 의원은 대변인을 그만둔 2005년 11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총선만 끝나면 다들 박 대표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딱 되고 나니 언제 그랬느냐는 것이었다, 정치가 무시무시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 지난 2004년 3월 한나라당 신임대변인으로 임명된 방송인 전여옥씨가 오전 입당식에서 당직자들이 선물한 한나라당 점퍼를 입자 최병렬 대표가 옷깃을 매만져주고 있다.
ⓒ 이종호
[입당 이후] 충성 과시하는 박근혜의 '입'

전 의원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한 박 후보도 그에게 오랫동안 대변인을 맡기는 등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2005년 6월 '대졸 대통령 발언'은 역설적으로 두 사람의 '동지애'를 재확인해줬다.

당시 전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음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이 때 주변의 눈총 때문에 대변인직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고생 끝에 눈물을 쏟아내는 그의 손을 잡아주며 "이겨내라, 우리는 동지다"라고 용기를 준 사람이 박 후보였다.

전 의원은 작년 12월 출간한 에세이집 <폭풍전야>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동지였고 동지이고 앞으로도 동지일 것이다. 나는 만일 대표가 박 대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십중팔구 문제가 생기자마자 나에게 사표를 내라고 했을 것이다…(중략) 우리는 동지이다. 나는 그녀의 강한 동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 의원은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명박 캠프로 가지 않겠냐는 질문을 받으면 펄쩍 뛰었다. 그는 5월 3일 <연합뉴스> 기자로부터 "이명박 캠프로 갈 가능성은 있냐"는 질문을 받자 "박근혜 전 대표와는 요즘도 자주 전화통화를 한다"며 이렇게 답했다.

"내가 거길 왜 가겠나? 이 후보가 2등을 한다면 또 모르겠다. 경선이 재미있어야 하니까. 경선까지는 어느 캠프로 가는 일은 없을 거다. 중립을 지키고 누가 후보로 선출되든 운동을 열심히 할 것이다. 마음 속으로 누가 됐으면 하는 생각은 있다. 특히 박 전 대표가 갖고 있는 지지율 20%는 로열티가 굉장히 강하다. 이 사람들을 화나게 해서도 안되고 적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오늘] "21세기 시대정신은 이명박"

그러나 70여일이 지난 지금 그는 "21세기 시대정신은 이명박"이라며 이명박 캠프에 합류했다. 정치 생명이 걸린 선택을 한 만큼 이 후보에 대한 지지의 변도 과감했다.

"이명박은 배고픔에 소리죽여 울어본 사람입니다.
없는 설움과 아픔을 고스란히 겪은 사람입니다.
이 시대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몸부림쳤던 '우리같은' 사람입니다.
오로지 맨주먹 하나로 자기 땀과 실력 하나로 일어섰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사람, 스스로 성취한 사람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라면 땀흘린 사람들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청계천'은 더 이상 '전설'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꿈을, 눈 앞의 현실로 만든 최초의 정치인입니다.
그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와 함께라면 대한민국은
무한대의 꿈에 도전하고 그 목표를 초과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 절망의 시대에 '샐러리맨의 신화'에 기름을 부어
'대한민국의 신화'를 활활 타오르게 할 인물입니다."


▲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12일 여의도 당사와 캠프 사무실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이 후보를 돕는 길만이 정권교체의 지름길이라 확신하고 모든 힘을 다해 돕겠다"며 이명박 후보 지지를 전격 선언했다. 전여옥 의원이 지지선언을 한 뒤 이명박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전 의원은 에세이집 <폭풍전야>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정권교체를 간절히 열망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 대표로서 박근혜 대표가 밤하늘의 큰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큰 별은 동방박사가 보던 별처럼 밝게 빛나 한나라당을 대선승리까지 이끌어줘야 한다고 확신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전 의원 자신이 7개월 전에 추켜세웠던 '큰 별'을 지금의 그는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