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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7월12일자 사설
ⓒ 조선PDF
국가보안법 논란이 벌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가 아니다. 정치권은 국가보안법을 잊은 지 오래다. 이번에는 언론계에서다. 언론단체들과 정부가 합의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보완대책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언론단체와 정부가 공동 노력한다는 '합의문'이 문제가 됐다. <조선일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오늘(12일) 사설에서 한국기자협회장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가 이번 정부와의 합의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주장을 해 합의문에 들어갔다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조선일보>는 정부의 취재지원 시스템 문제를 다루면서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꺼낸 것 자체를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지금도 절차만 제대로 받으면 얼마든지 북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국보법 때문에 하지 못하는 취재라면 우리에겐 해롭고, 북한엔 이로운 이적행위일 뿐"이라고도 했다.

자다 봉창 두드리는 <조선일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조선일보>야말로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고 있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명기했다시피 정일용 기자협회장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것은 "국가보안법은 언론자유와 같은 선상에 놓고서는 도저히 이야기 될 수 없는 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일용 회장은 지난 5월 말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한창 논란이 됐을 때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제기했던 바 있다. 당시 인터뷰 내용을 보자.

- 기자협회에서 성명을 내면서 국가보안법부터 철폐하라고 했다. 이 문제와 국가보안법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모든 비밀주의, 정보 통제의 뿌리는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언론 쪽에서 보자면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고서 언론 자유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근본부터 제약하고 억압하는 실정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언론 자유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부의 구조적인 폐쇄성이나 비밀주의가 뿌리깊은 것도 바로 이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지금 언론의 자유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분들, 정당, 언론, 국민들이라면 바로 이 문제에 더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런 평소 소신을 정부 측과의 협의 과정에서도 역설했고, 정부로서도 상당한 부담임에도 불구하고 '공동노력한다'는 선에서 성의를 보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언론이 언론다우려면 무엇보다 모든 외압과 편견, 그리고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비판정신은 자유로운 사유가 가능할 때 비로소 온전히 싹틀 수 있다.

'브리핑룸 폐지'는 '언론 자유 침해' 지난 5월 28일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국회 문광위에 출석해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사상·언론 자유 억압하는 가장 독소적 법률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그런 점에서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가장 독소적인 법률로 손꼽힌 지 오래다. 정치권에서도 국가보안법의 이같은 독소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대가 이뤄진 바 있다. 다만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보수정치세력이 국가보안법의 폐지나 대체 입법에 강력하게 저항해 결국 국보법 폐지 논의가 좌절된 바 있다.

국가보안법 문제는 결코 북한 취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국가보안법 문제를 북한 취재 문제로 협소화한 것은 그야말로 <조선일보>다운 왜곡이다. 또 그런 태도야말로 사상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언론사의 취재 자유' 정도로 치부하는 '오만'이자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사상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차원에서, 또 민주사회의 기본 요소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일이다. 사사롭게 언론의 '취재편의' 차원에서 제멋대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기자실과 브리핑룸의 통폐합 문제로 불거진 취재 지원 문제를 놓고 왜 '국가보안법' 문제까지 거론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적절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실정법을 그대로 놓아두고 '언론의 자유'를 운위하는 것은 문제"라는 정일용 기자협회장의 주장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부의 구조적인 폐쇄성이나 뿌리깊은 비밀주의가 국가보안법 체제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는 그의 지적도 경청할만한 이야기다.

편의에 따라 멋대로 주장하는 것은 '언론자유' 아니다

사실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문제를 두고 엉뚱하게 '언론자유' 문제로까지 비화시킨 것은 바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들이다.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이 문제가 된 것은 공직사회에 대한 현장 취재를 어렵게 해 언론의 취재활동을 위축시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핵심 쟁점이었다. 그것을 일부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언론탄압으로 몰아가고,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라고까지 주장한 것은 필요 이상으로 정치쟁점화 시킨 '오버'였다.

굳이 언론자유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면 '공무원의 언론 자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그나마 이야기는 될 수 있었다.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이 불러올 수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통제의 강화'가 공무원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헌법상의 표현(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거나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이 언론으로서 온당한 역할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아무 때나 멋대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언론 자유'가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은 "명색이 언론단체라는 집단이 정권과 함께 어설픈 좌파 이념에 동승해 국보법 폐지에 합의한 우스갯짓은 한국의 언론 현실이 얼마나 기형적인 상황인가를 보여준 셈"이라고 단정 지었다.

언론 자유의 어머니 격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문제를 놓고 언론 스스로 뭐가 문제냐고 내놓고 우기고 있는 <조선일보>야말로 언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인하고 있는 한국 보수 언론의 기형적인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국보법 폐지'는 이적행위? 지난해 11월 2일 일명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이정훈씨, 손정목씨, 최기영씨의 부인과 이진강씨의 어머니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토로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국가보안법, #조선일보, #취재지원선진화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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