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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측의 일방적인 '삼성기사 삭제' 건으로 1년 넘게 끌어온 <시사저널> 사태가 막을 내렸다. 기자들 22명 전원은 일괄 사표를 제출하고 새 매체 창간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에 '시사기자단'은 아직 제호와 정확한 창간 날짜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하반기 새 매체 창간을 목표로 전력투구하고 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모금운동은 3일 오전 현재 2300여 만원의 후원금과 정기구독 약정으로 이어졌다. <오마이뉴스>는 시사기자단의 새 매체 창간을 독려하는 릴레이 편지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달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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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사저널> 기자 22명이 지난달 26일부터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편집권의 독립과 수호를 위해 1년이 넘도록 투쟁한 후 '장렬하게' 사표를 던졌습니다. '올곧은 선비는, 책은 팔아도 절개는 팔아 치욕스럽게 살지 않는다' 라는 옛 현인들의 가르침을 실천하듯, 그렇게 <시사저널>을 떠났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표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심입니다. 기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내이고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파업했던 지난 6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받지 못했기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배고프고 힘든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손뼉를 치고 격려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만약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자식이 그런 험한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칭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가족은 마음 속으로 '웬만하면 참고 다니지'라며 원망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들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자본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진짜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 하나 때문에 사표를 던지고, 새 매체 창간이라는 가시밭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말이 쉬워 창간이지, 초기 자금 20억원을 만든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자본을 투자했다고 압력을 행사하지 않을 20억원이어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어려움입니다.

그렇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시사저널> 기자들의 투쟁에 성원을 보내주고,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힘들을 모아 큰 힘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요, 우리 뭐든 한 가지씩 내놓읍시다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은 후배 기자들이 사표를 내던 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뭐든 한가지씩 내놓읍시다"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돈이면 다 된다는 삼성그룹이나, 기자도 회사 직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언론사주나 경영진에게 기적을 보여"주자면서, 새 매체 창간의 당위성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정치인도 교육자도 돈, 돈, 경쟁력만을 외치는 천박한 세태입니다. 언론 자유를 그토록 입에 거품을 물고 외치면서도 정작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의 상징적인 사건인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지난 일년 동안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조중동이 버젓이 언론 행세를 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세상을 보는 맑은 창 하나쯤은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견뎌내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언론사들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세습구조' 속에서 사주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신문이 편집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현재 5대에 걸쳐 상속되고 있는데 이런 대물림의 경영구조 때문에 많은 사람은 '사주의 취향에 거스르는 기사를 쓰고 편집할 수 있을까'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입니다. 신문사의 대물림은 조선일보뿐이 아니고, 이런 현상은 언론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언론사 사주에 대한 세무조사에 기자들이 '동원'되는 일도 없어야 하고, 사주가 비리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면 기자들이 조폭처럼 두 줄로서 서서 '회장님 힘내십시오'라며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부끄러운 풍경'도 사라져야 합니다. 따라서 이런 우리나라 언론 상황에서는,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매체가 하나가 아니라 몇 개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저는 그림을 내놓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광고주의 압력과 편집인의 부당한 기사삭제에 항의하며 집단사표를 낸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새 매체 창간을 지지하며, 제가 보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결론을 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진 건 돈이 아니라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 황규백 , 메조틴트(동판화), 에디션 6/75, 1996
ⓒ 황규백
제가 내놓기로 한 작품 중의 한 점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볼 수 있는 곳에 걸어놓고, 오늘 하루는 저렇게 맑고 상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매체 창간의 창문이 활짝 열리고 희망찬 앞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그림을 창간 준비팀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아는 화가 몇 명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히면서, 전 <시사저널> 기자들이 새로운 매체 창간을 위해 기금마련 전시회를 하면 작품을 기증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전 <시사저널> 기자들이라면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화랑대표 한 분도 소장품을 기증하겠다고 했고, 소장가 한 분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내서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서명숙 전 국장님에게 블로그를 통해 쪽지를 보냈습니다. 요즘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으니, 저의 그림뿐 아니라 화가들과 소장가들에게서 그림을 기증받아 전시회를 열어 창간 기금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의 연락을 받은 서 전 국장님은 '전직 기자'들에게 연락을 하셨고, 한 달 후쯤으로 예정되는 창간발기인 행사장에서 '창간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번듯한 전시장을 빌리면 대관료가 드니, 그렇게 해서 한 푼이라도 아끼기로 한 것입니다.

▲ 서병기 <꽃>, 하드보드에 유채, 53 x 41㎝
ⓒ 서병기

이 작품은 대구화단의 원로인 고 서병기 화백의 작품으로 이번에 내놓기로 목록중의 한 점입니다. <월간미술>에서 서화백 특집을 꾸밀 때 소개됐던 작품으로, 제 가족은 화사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 그림을 바라보며 오랜 기간 동안 눈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 때문인지 저의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게 주었기에, 새 매체가 이렇게 소박한 아름다움 속에서 건강하게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목록에 포함했습니다.

▲ 석정 윤병건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33 x 33㎝
ⓒ 윤병건

정지용의 시 '향수'의 일부를 쓴 서예작품입니다. 제가 조국을 떠난지 30년이 넘기에 고향이 그리울 때면 바라봤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목록에 이 작품을 포함한 이유는, 서예작품을 소장하신 분이나 서예가들도 '창간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에 작품을 기증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 이만익 <삶>, 석판화, 에디션 1/28, 45 x 52.5㎝, 1985
ⓒ 이만익

▲ 민정기 <과일장사>, 동판화(에디션 7/20), 38 x 30cm, 1983
ⓒ 민정기

화단의 원로 이만익 화백의 석판화와 민정기 화백의 동판화입니다. 저는 현재 멕시코가 바라보이는 애리조나 국경지역에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일하러 가기 전에 이 그림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열심히 장사하자!'라는 구호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보다 새 매체 창간이 더 급한 것 같고, 창간기금을 마련하려고 고생하는 22명의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모습이 바로 이 그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목록에 포함했습니다.

화가님들과 소장가님들도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독자 여러분!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한 달 후 개최되는 창간발기인 대회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기금이 마련될 수 있도록, 화가님들은 그림을 기증해주시고, 그림이나 서예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분들은 소장품 한 점을 기증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이 땅에 참언론을 대변하는 매체가 생기고, 그래서 22명의 '전직 기자'들이 취재현장으로 돌아가서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줍시다!

자신의 그림이 아깝지 않은 화가가 어디 있고, 자신의 소장품에 애틋한 정이 없는 애호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솔직히 저 역시 인간이기에 기증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눈 꾹 감고 모른 척 해도 욕할 사람 아무도 없기에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가끔은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말로만 좋은 사회를 보고 싶다고 외치기보다는, 작은 실천을 할 때 세상은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 한 사람의 힘은 적고, 그리 큰 보탬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혼자인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금방 10사람 100사람, 1000사람이 됩니다. 그림이나 서예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혼자가 내놓는 작품은 적지만, 한 명 두 명 동참하기 시작하면 10점, 50점, 100점이 되고, 그 작품들은 전시회를 통해 창간기금 마련의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동참할수록 새 매체 창간은 빨라지고, 22명의 기자는 공정보도, 사실 보도를 위해 취재현장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이 사회의 부조리를 감시하면서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기사를 쓸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좋은 기사를 쓰고, 독자들은 좋은 시사주간지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다시 한번 화가님들과 소장가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그림이나 작품 기증을 원하는 분들은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고재열 기자(kohjaeyoul@hanmail.net)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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