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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7일 오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린 '한반도대운하 설명회'에서 대형 홍보용 그림을 살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백두산 천지 못은 맑다."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후보가 지난 17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반도 대운하' 설명회에서 한 말이다. 단순하게 그 취지를 설명하면 이렇다.

'천지의 물은 고여 있다. 그런데 맑다. 운하의 물도 고인 물이다. 고로 맑다.'

이명박의 황당 삼단논법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 이런 황당한 삼단논법을 구사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운하의 물은 일정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양쪽을 보로 막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고인 물은 썩는다. 이명박씨는 국민 80%의 취수원인 한강과 낙동강의 수질이 나빠질 것을 우려한 이같은 세간의 비판에 반격을 가한 셈이다. 하지만 그 비유가 과연 적절한 것일까.

하긴, 이날 이명박씨의 옆에서 보좌했던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갇힌 물이 무조건 썩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수천년간 갇혀 있는 바이칼호'를 예로 든 적이 있다. 그나마 먼나라 얘기에서 지근거리로 비유 대상을 옮긴 셈이다. 하지만 바이칼호나 천지못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백두산 천지는 산꼭대기에 있는 화구호로서 화산이 분출할 때에 생긴 분화구자리에 물이 고여 이뤄졌다. 천지의 기본물원천은 대기강수이며 여기에 천지바닥에서 솟아 오르는 지하수가 보충된다. 물은 대단히 맑고 깊다. 천지의 둘레는 14.4㎞이고 제일 긴 곳은 4.64㎞이며 가장 넓은 곳은 3.55㎞이다. 수심은 제일 깊은 곳이 384m인데 평균 213.3m이다. 천지의 총 물량은 19억5500만㎥.

천지에는 떠살이식물·수중식물·수서동물들이 있다. 떠살이식물로는 4종의 남색말류·3종의 풀색말류·8종의 규조류, 수중식물로는 새우이끼·개울이끼·산시내물이끼·거친이끼·습지이끼, 수서동물로는 천지산천어·돌미끼류·풀미끼류·지렁이류 등이 있다."

하지만 운하는 어떠한가. 이명박씨의 말대로라면 수심이 6~9m에 불과하다. 배가 수시로 들락거리고, 물고기의 서식처인 강바닥의 모래와 자갈을 수시로 파헤쳐 뱃길의 수심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게다가 운하는 파랑에 의해 침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멘트로 강의 양안을 덮어야 한다. 또 운하 주변에 유입되는 오염원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백두산 꼭대기에 있는 천지의 주변 조건과는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이런데도 천지의 수질과 운하의 수질을 동급에서 비교할 수 있는가. 이명박씨는 이날 수질 문제를 거론하면서 경부운하가 취수원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반대하려면 과학적인 근거를 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갇혀 있는 운하의 물을 천지와 비교하는 것이 과학적인가.

박석순 교수가 '바이칼호' 운운할 때는 극단적이지만 단순한 비유를 든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명박씨마저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캠프 내에서는 운하의 수질에 대한 우려를 희석시키려는 정치적 선전용으로 '천지 못'을 활용하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허무맹랑한 '이중 수로' 제안 폐기... 당연한 일

▲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대운하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부운하 경제성 논란에 이은 BBK 경영 연루설, 옥천 땅 투기설, 그리고 위장전입 전력. 이명박씨는 이런 쏟아지는 의혹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이날 설명회를 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간 일방적인 '경부운하 찬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새로운 주장이 있다면 최근 운하 수질 문제의 타개책으로 내놨던 '이중 수로', 즉 뱃길의 물과 먹는 물을 분리하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거둬들였다는 점과 대구·경북에 이어 상수원 보호구역 사람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정치적 제안이다.

이미 폐기처분했지만, 이명박 캠프가 반짝 제안했던 이중수로 문제를 다시 한번 들춰 보자. 우선 경부운하 구간 550㎞ 중 취수원 부근 4㎞를 수로와 먹는 물길을 두 쪽내겠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수로 중간에 시멘트 옹벽을 쳐서 뱃길과 먹는 물길을 나눈다는 발상이 그간 이명박씨가 그토록 강조했던 '수십년동안 이 분야에서 연구해온 수십명의 학자'들이 내놓을만한 대안인가.

홍수 때 등 강물이 불어날 경우 어찌될까? 양쪽의 물을 밀봉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섞일게 자명하다. 각 취수원의 4㎞지점 구간만 물길을 나누면 같은 수질의 물이 4㎞정도 떨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형국이다. 또 강바닥을 콘크리트로 바르지 않는 한 강 바닥을 통해 양쪽 물이 교통할 수밖에 없다. 이게 먹는 물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이중 수로 대안을 잠시 꺼냈다가 정치권과 시민사회진영에서 집중포화를 받고 금세 거둬들였다는 것만 보아도 '제2의 국운융성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이명박씨의 경부운하 구상이 여전히 미완성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대선은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명박씨의 제1공약 경부운하, 대체 언제까지 우왕좌왕하겠다는 것인가.

선진국 시민들은 강변여과수만 먹나

이명박씨는 이날 설명회에서 "(운하가 건설되면) 수량이 풍부해지고 수질이 개선되며 선진국형인 취수 방식인 강변여과수·인공함양수 등을 도입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박석순 교수는 이어 강변여과수가 어떤 방식인지에 대해 그림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이날 시연한 '한반도 대운하, 물 문제 확실히 해결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화려한 동영상에도 소개됐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선진국 사람들은 강변여과수만 먹고 살고, 선진국이 되려면 왠지 강변여과수를 먹어야할 것같은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강변여과수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운하의 나라 독일의 경우도 강변여과수 취수율은 5%를 밑돌고 있다. 74%는 지하수를 먹고, 하천 등 표류수를 취수해 식수로 사용하는 비율은 21%이다.

이런 현실을 이명박씨는 모르고 있는 것인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학계의 추종자들도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인가. 강변여과수를 거론할 때마다 '선진국형'을 거듭 외치면서 그 실상에 대해서는 이명박씨측 그 누구도 얘기를 하기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강변여과수는 비싼 물이다."

독일에서 만난 프랑코 수로컨설팅 피터 리히켄 대표의 말이다. 그만큼 제반 시설 설치 비용과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그래서 기자는 이날 설명회에서 이명박씨에게 물었다.

"강변여과수를 설치할 부지가 있는가. 그 부지 매입 비용도 엄청날텐데, 대략 추산되는 금액은 얼마인가. 국민 80%가 한강과 낙동강 수계에서 먹는 물을 취수하는데, 강변여과수로 이 중 어느 정도를 충당할 구상인가. 오늘 발표를 보면 경부운하 건설비를 14조원 정도로 잡았는데 강변여과수를 만들기 위한 토지보상비와 시설비 등을 건설비에 포함시킨 것인가."

적어도 강변여과수를 대선 공약으로 발표하려면, 지난해 10월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지 8개월여가 지난 지금 이 정도의 질문에 대한 준비된 답변이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이날 기자는 이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설명회 종료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먹는 물 오염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어설프게 이중수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가 다시 주워담은 것에 비춰볼 때 강변여과수 문제도 현실 가능성이 없는 막연한 '선전용' 제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 경북에 이어 상수원보호구역 '표심'도 자극

이날 이명박씨를 비롯해 그의 주변에 앉아 있는 학자들이 유독 강조했던 것은 상수원 보호구역 주민들을 향한 '표심' 자극 발언이다.

이명박씨는 "한강 유역의 경우 취수원 이전이 검토되고 있으며, 취수 방식이 하천에서의 직접취수에서 간접취수로 바뀌면 지금과 같은 상수원 보호 규제는 상당부분 불필요해진다"면서 "더 맑은 물을 공급하면서 점차적으로 규제를 풀어 지역 주민들의 숙원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는 "강변여과수를 하게되면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의 경우 5분의 4정도 지역의 규제를 풀 수 있다"면서 "팔당상수원 규제로 인한 손실액이 수십조원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박석순 교수는 또 "취수원 이전 계획은 운하 사업 때문이 아니라 이미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취수원을 양수리로 이전하면 50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며 그럴듯한 비용도 제시했다.

▲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대운하 설명회'에서 대운하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취수원을 옮기면, 현재 상수원 보호구역 등으로 묶여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을 지 모르겠지만, 취수원 이전 지점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부담이 고스란히 전가되는 것이다.

또 기자가 정부 부처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 어느 부처도 취수원 이전을 검토하지 않고 있었다. 환경부 한 관계자는 "이전을 검토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면서 "팔당 지역 주민들이 종종 그런 주장을 하는데, 식수원을 옮기게 되면 서울시민에게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는 물의 양이 되는 지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하고, 상수도 시설 등 기존 인프라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교부와 수자원공사 관계자도 취수원 이전 문제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씨와 박석순 교수는 무슨 근거로 취수원 이전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경부운하가 관통하는 "대구·구미·밀양·문경·상주·충주·여주 등 내륙도시는 세계로 통하는 항구도시로 변모할 것"이라며 '표심'을 자극하더니, 이제는 정부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취수원 이전을 들먹이며 상수원 보호구역 사람들을 향해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이라면, 성실하고 과학적으로 답하라

이날 기자가 이명박씨에게 던진 또다른 질문은 이런 것이다.

"이상호 세종대 교수는 이명박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나?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음.) 이 교수는 경부운하로 흡수될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을 1020만톤(컨테이너 화물 51만7000TEU. 1.5TEU를 15톤 트럭 한대분으로 계산)으로 계산하고 있다.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는 곽승준 고려대 교수도 1039톤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물동량을 운송하려면 경부운하에 하루 몇척의 배를 띄워야 하는 지 혹시 계산해 봤나. <오마이뉴스>가 최근 이를 계산해 보도했다.(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의 글) 고작 12척의 배가 다닌다는 결론이다. 1020만9000톤÷2500톤급 선박÷350일(이명박씨가 주장하는 경부운하 1년 운행 가능 일수)=11.7척이다.

수십조원을 들여 하루 12척의 배가 다닐 뱃길을 낸다는 것이 과연 경제적인가?"

기자는 또 곽승준 교수가 발표한 경부운하 관련 자료에 따르면 산업파급효과 11조7000억원 등이 투자대비 편익 비율(B/C)에 포함되는 등 상당히 부풀려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기자는 이날 설명회에서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대신 이명박씨는 기자들의 질의를 받기 위해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곽승준 교수에게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곽승준 교수, 골재 안 팔리면 내가 수출할테니, 걱정 마세요."

이에 앞서 이날 이명박씨는 기자를 향해 "(경부운하에 대해) 부정적인 질문이 나와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아쉬운 것은 기자였다. 이날 설명회는 기자들 앞에서 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국민들 앞에서 경부운하 공약에 쏟아지고 있는 의혹 등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당선되지도 않았고, 아직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지도 않은 그가 이미 경부운하 사업이 확정된 것인양 발언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했다.

만약 골재 수출이 막히면 어떻게 하겠는가. 수십조원을 쏟아부은 경부운하라는 대역사가 파리만 날리는 골칫거리로 전락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이 이명박씨 한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안인가. 이명박씨의 말처럼 이같은 질문에 '과학적'으로 답변해야 한다. 경부운하에 대한 경제적이고 환경적인 문제제기에 성실하게 답변하는 것이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다.

태그:#경부운하, #이명박, #박석순, #한반도대운하, #강변여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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