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을 앞두고 서울을 연고지 두고 있는 LG 트윈스와 OB 베어스는 각각 한양대의 유지현과 동국대의 류택현을 1차 지명 선수로 지명을 했다. LG가 지명한 유지현은 이종범의 뒤를 이를 재목으로 상당히 주목을 받던 내야수였고 두산이 지명한 류택현 역시 좌완 투수 기근에 시달리던 OB 마운드에 힘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 선수다.

바로 전 해 1차 지명자였던 이상훈에게 계약금만 1억 8800만원을 안겨준 LG가 어깨 부상 의혹 등을 이유로 유지현과 8000만원에 계약을 한 것이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같은 서울지역 1차 지명자 류택현의 계약금 4000만원은 기삿거리도 안됐을 만큼 그는 이른바 스타급 신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속 140㎞를 웃도는 직구,1m85cm, 80㎏의 당당한 체격에 좌완이라는 이점을 가진 류택현. 그러나 류택현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전지훈련에서는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였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고 경기에만 나가면 컨트롤이 흔들리며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워낙 담력이 약해 루상에 타자만 나가면 컨트롤이 잡히지 않았다. 류택현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새가슴' 투수였다.

결국 자연스럽게 선발 투수에서 밀려나 중간계투로 대부분의 시즌을 소화했고 승리를 따낼 기회도 그만큼 사라져갔다. 결국 프로 5년 동안 승리 없이 6패 2세이브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기록한 채 1999년 1월 22일 류택현은 같은 팀 외야수 김상호와 함께 1억원에 현금 트레이드 돼 OB를 떠나 LG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된다. LG에서 OB로 그리고 다시 LG 유니폼을 입은 김상호가 중심이 된 트레이드였다.

1월 23일 스포츠 신문은 '홈런왕 김상호의 찢겨진 자존심'이라는 제목으로 트레이드 사실을 보도했다. 나중에 "어, 류택현이 왜 LG에서 던지지?" 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로 류택현이 트레이드 됐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원 포인트 투수' 류택현 ... 눈물의 첫 승

 류택현은 14년 동안 마운드를 지켜왔다.
ⓒ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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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서 류택현의 보직은 '원 포인트 릴리프'였다. 말 그대로 경기 중간에 좌타자가 나오면 그 타자 한 명만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좌완 투수라는 것 이외에는 딱히 특별한 장점이 없었던 류택현은 좌완 투수가 좌타자에게 강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경기 좌타자들과의 승부를 위해 긴장을 하고 몸을 풀어야 했다.

최근 프로야구에서 상당히 전문화 된 보직 중 하나지만 당시 '원 포인트 릴리프'는 낯선 보직이었다. 당연히 그 중요성 또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류택현이 나와서 달랑 한 타자만을 상대하고 강판되는 모습은 왠지 서글퍼 보였다. 누구 못지않게 청운의 꿈을 꾸고 프로에 들어왔을 텐데 겨우 한 타자 상대하자고 마운드에 올라오는 투수가 된 것이 안타까워 보였다.

그렇게 1999년 프로야구도 중반을 넘어 종반을 향해 치닫던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이미 한 차례 어깨 이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1군으로 복귀한 류택현은 복귀 당일이었던 8월 9일 잠실에서 벌어진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 5회말에 마운드에 올라왔다.

3-3 동점, 무사 1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류택현은 5회 위기를 무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아내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맞은 6회초에서 LG 타자들이 역전 점수를 뽑아냈다. 경기는 6-3 LG의 승리로 끝이 났고 5회 등판해 1.1이닝을 던진 류택현이 승리 투수가 됐다.

행운의 승리였다. 어찌 보면 쑥스러운 승리였다. 그러나 프로 생활 6년, 무려 181경기만에 거둔 첫 승은 류택현에게는 눈물 날만큼 감격적인 승리였다. 그리고 지난 6년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2군을 오르내리며 그나마 1군에서는 달랑 한 타자만을 상대하고 마운드에 내려가는 아들의 늘어진 뒷모습에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던 어머니 박영자씨에게는 노히트노런 보다 더 값진 그런 승리였다.

첫승을 행운의 승리로 따낸 류택현은 2000년 5월 3일 SK를 상대로 선발 등판해 7이닝 1실점 호투를 하며 당당한 승리를 따냈다. 류택현의 프로데뷔 첫 선발 승이었다.

강한 남자 류택현

 좌타자 전문 투수 류택현.
ⓒ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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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프로야구는 전반기도 지나지 않았지만 류택현은 벌써 38경기에 등판을 했다. 평균 자책점 2.08을 기록할 만큼 투구내용도 훌륭하다. LG에서만 무려 475경기를 뛰었고 2004년에는 당시 한 시즌 최다 기록인 85게임에 등판했을 만큼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투수로 자리 잡았다.

더 이상 신인 시절처럼 빠른 볼을 던지지는 못하지만 빠른 볼을 버리는 대신 류택현은 살아남는 법을 택했다. '새가슴'이 아니라 철저한 승부사로 거듭난 류택현은 이제 '원 포인트 릴리프'라는 말 대신에 '좌타자 전문 스페셜리스트'라는 제법 세련된 이름으로 불린다.

어느덧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인 프로 14년차, 우리 나이로 38살이 된 류택현은 여전히 좌완 전문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류택현은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프로 14년 동안 469이닝을 던졌다. 이 기록은 올해 20살로 지난해에만 201 이닝을 던진 류현진이 21살이 된다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그런 기록이다. 그러나 철저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낙오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14년을 살아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흔히들 말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고. 프로 14년 동안 겨우 8승을 거두었고 6500만원의 연봉을 받지만 류택현은 지난 14년 동안 마운드에 있었고 앞으로도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그래서 류택현은 아주 강한 남자다.

류택현 김상호 류현진 새가슴 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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