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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현장에 선 고인의 장녀인 김한나씨. "어떻게 취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민 기간이나 가족 이름도 틀렸고 영어 못해서 참변을 당했다는 식으로 오도한 것이 불쾌했다"며 한국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 조명신
지난 4일, 미 텍사스주 댈러스시 오크 클리프 지역에서 초행길의 한인 부부가 탄 차량이 강으로 빠져 두 명 모두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거친 날씨 속에 일어난 뜻밖의 사고로 인해 댈러스 한인사회는 물론 북텍사스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러한 비보는 한 통신사의 특파원을 통해 한국에까지 알려졌고,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서 국제뉴스로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보도는 이 사건의 기본적인 사실조차 부정확했고, 추가적인 취재나 확인 없이 참사의 원인을 '영어 미숙'으로 단정해버렸다.

사고 이틀 후, 차량이 인양된 6일 현장을 취재한 미국 언론의 보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한국의 지인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유가족들은 분노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정신이 혼미했고, 한국 언론의 오보로 인해 두 번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참사였지만 댈러스 한인사회가 한마음이 되어 장례식을 치렀다.

사고가 있었던 주말인 8일과 9일, 고인이 몸담고 있던 교회가 주관해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자녀들도 아픔을 이기고 아쉬움과 눈물로 부모를 떠나보냈다.

행여라도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간 부모에게 누가 될까봐 언론과의 접촉을 주저했다던 고 김영환(60)·조숙연(57) 부부의 큰 딸 김한나(28)씨를 지난 12일(화) 댈러스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사고 전·후의 자세한 정황을 들었고, 사고 현장을 방문해 도로 표지판을 분석함으로써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살폈다. 사고 당일 기상자료를 입수하고 도로의 구조를 확인했으며, 고인의 최후 목소리가 녹음된 911통화 내용을 들어 보았다. 사고 당일 현장 상황을 재구성함으로써 가려진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자 했다.

이 참사의 진실은 무엇이고, 보로 왜곡한 한국 언론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파헤쳐 보았다.

참사를 희화한 한국 언론

"영어 미숙해서… 미 한인부부 참변" <동아일보>
"재미교포 부부 '어이없는 참변'" <조선일보>
"'차에 물 들어온다' 911 전화 걸었지만… 영어 서툴러 교포 부부 익사" <중앙일보>


김영환·조숙연 부부의 참사를 보도한 한국 일간지의 제목들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기사들의 공통적인 내용은 '영어 미숙'으로 '한인 부부가 참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좀 더 세밀하게 기사를 분석해보면 기본적인 사실조차 부정확한 것이 3∼4개씩 있다. 전체적으로 길지 않은 기사의 분량에 비추어보면 한 단락에 한 개씩 오보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시각으로 8일에 보도된 이 기사들의 원출처는 <미주 중앙일보>다. 댈러스 시각으로 6일 오전 9시경 트리니티강에서 김씨의 승용차가 발견되면서 모여든 언론사 기자 가운데 <미주 중앙일보>의 기자가 있었고, 한인 언론으로는 첫 기사를 썼다.

그러나 사실에 오류가 있었다. 11년 6개월 전인 1995년 12월에 미국에 온 김씨 부부의 이민 기간을 "20년"이라고 했고, 이미 물에 잠겨 꺼져있던 "휴대전화의 전파가 강 속에서 감지됐다"고 했는가 하면, 사고 현장에 나온 유가족들의 이름을 틀리게 표기했을 정도다.

이 기사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연합뉴스> 특파원을 통하면서 더욱 부실해졌다. 이 특파원은 자신의 기사 속에서 "오후 3시에 실종됐다"고 했으면서도 기사의 시작 부분에서는 "한밤중 폭우 속에 운전하던 차가 강물에 빠졌다"고 쓰는 등 앞뒤도 맞지 않았고, '오크 클리프' 지역을 '오크 클리크' 지역으로 잘못 표기하기도 했다.

기사 뒷부분에서는 "유가족들은 … 교환원은 영어를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었다고 주장했다"고 썼으나, 유가족들은 "이와 같은 주장을 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이 기사를 쓴 특파원은 유가족 어느 누구와도 인터뷰를 한 사실이 없다.

한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연합뉴스>를 받아 오보를 양산해냈다. 길지 않은 분량의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등장하면서 참사는 '희화화' 되었다. 전후좌우에 대한 언급이 간략해지면서 고인들의 이민 기간과 영어 능력을 지적하는 기사로 돌변했다.

이 기자들은 자신이 쓴 기사의 부정확성을 인식하고 있을까? 문제의 기사를 쓴 <미주 중앙일보> 기자는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오보를 인정'했다. 그는 "이민 기간을 잘못 기재한 것은 고인의 가까운 지인에게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적었다"면서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것은 본인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분들을 돕고자 취재를 했으며 기사 한 줄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썼다"고 해명했다. 또 그는 "오열하는 가족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이 그들의 슬픔을 부추기는 일이라 생각해 사고 현장만 카메라에 담을 정도로 조심했는데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오보가 나면서 다른 방향으로 문제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연합뉴스>의 특파원도 "한국에 있는 고인의 친척으로부터 항의메일을 받았다"면서 부정확한 기사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이 사건을 언제 인지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7일 아침 <미주 중앙일보>와 <미주 한국일보>를 통해 알았다"고 밝히고, "긴박한 상황이라 유가족과의 통화는 못했고 미국 언론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어느 언론이었는지 묻자 "구글 검색을 통해 참고했던 것이라 정확한 언론사명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현장 취재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유가족이나 사건 관계자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고, 이미 보도된 기사만 취합하면서 부정확한 기사를 재생산해 낸 것이다.

유가족들의 심적 고통을 유발한 오보에 대한 정정 보도 가능성을 묻자 "이 사건과 관련해 추가로 밝혀진 사실이 있으면 새로운 기사를 써보는 것을 생각해 보겠지만, 그렇다고 한국 언론이 다시 실을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다"고 답했다.

▲ 지난 9일 오전 10시, 고인이 생전에 출석했던 빛내리교회에서 치러진 추모예배에 부부의 관이 나란히 놓여있다.
ⓒ <코넷> 박경환
섣부른 베껴 쓰기 보도의 위험

미국에서는 '안타까운 사고사'로 보도된 죽음이 한국에서는 '영어 못해 죽은 참변'으로 희화화된 배경에는 확인 절차 없이 베껴 쓰는 한국 언론의 관행이 자리하고 있다.

최초 보도를 한 기자가 실수를 하면 정정될 기회를 잃어버린 채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겠지만, 실수가 번지는 데도 바로 잡을 장치가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보인다.

고인의 장녀인 김한나씨는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어떻게 취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민 기간이나 가족 이름도 틀렸고 영어 못해서 참변을 당했다는 식으로 오도한 것이 불쾌했다. 그나마 미국 언론은 사실에 의거해 기본적인 내용이 비교적 충실했지만 한국 언론은 서로가 다 복사해 모두 오보를 냈다. 이번 사건에 관한 한 지역 신문인 <달라스모닝뉴스>의 기사만 정확히 번역했어도 오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잘못된 기사를 서로 복사하기만 할 것 같으면 한국에 많은 언론사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특히 김한나씨는 "한국에서 잘못된 보도를 접한 친척들의 연락을 받고 마음이 아파 오보를 정정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장례식도 안 치른 상황에서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장례식 후에는 이미 시간이 지나가 버려 다시 문제 삼는 게 아름답게 떠나신 뒷모습에 누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갈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나씨는 인터뷰에 응한 이유로 "섣부른 보도에 위험요소가 많았다는 것과 한국 언론이 같은 한인들을 그렇게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2편 '사고당일 김영환·조숙연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의 한인 주간지 <코넷>의 제휴기사입니다. <코넷>의 인터넷판인 '코넷닷컴'(www.thekonet.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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