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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에 걸쳐 여러 공공미술관과 박물관에 330점의 그림을 기증한 화상이 있습니다.

자신의 화랑 벽에 걸면 계산하기 힘들 정도의 돈이 되는 귀한 그림들이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습니다. "좋은 그림일수록 영구히 보존될 수 있는 공공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야한다"는 그림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외국에서는 화상들의 작품 기증이 흔한 일이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많은 작품을 체계적으로 선별해서 기증한 화상은,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가 유일합니다.

바보같은 기증, 모두 330점

▲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한 120점 중 일부
ⓒ 김창열, 권진규, 전혁림, 김종식, 안창홍, 우메하라
▲ 경남도립미술관에 기증한 100점 중 일부
ⓒ 이우환, 문신, 전혁림, 송혜수, 유강열, 이상욱
그가 그림 기증을 시작한 것은 IMF의 한파로 화랑경영이 어렵던 1999년부터였고, 첫 기증지는 부산시립미술관으로 53점이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여러 면으로 그를 평가했습니다. 지인들은 '저 좋은 작품들을 다 기증하면 화랑 운영을 어떻게 하려느냐'며 그의 앞날을 걱정했고, 어떤 이들은 '화상이 자기 밑천을 기증한다면 그건 화랑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라고 단정했으며, 또 어떤 이는 '바보같은 짓'이라며 기증을 폄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진 자들의 사회환원'이라는 미덕이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사회에선, 그의 기증이 '바보의 행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랑은 지금껏 건재하며, 그는 기증을 계속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는 첫 기증 이후 경남도립미술관에도 100점, 부산시립박물관에는 고서화와 유물 30점 그리고 밀양박물관에 고서화 100점을 기증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에는 67점을 추가로 기증함으로써 120점을 채웠습니다.

그래서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그 작품들을 시민과 학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7월 17일까지 '신옥진 기증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부산시립미술관에 30점을 더 기증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화랑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 희귀성이 있는 작품은 '비매품'이라며 팔지 않습니다. 작품값이 수천만원 호가하고 애호가들이 돈을 들고와도 "이 작품은 훗날 미술관으로 보낼 작품이니, 감상만 하시라"고 말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모은 작품이기에, 그의 기증 작품에는 국내외 작가들의 수준작이 많습니다. 세계적 화가가 된 이우환 화백의 '조응', 권진규 화백의 흔치 않은 목탄화, 장욱진·김창열 화백의 초기 작품, 김종식·안창홍 등과 같은 부산 출신 화가들의 작품 등 작품성과 희귀성 그리고 향토성을 갖춘 수작들입니다.

▲ '기증전'이 열리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장
ⓒ 부산시립미술관
▲ 밀양시립박물관에 100점의 작품을 기증한 후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왼쪽이 이상조 밀양시장, 오른쪽이 신옥진 사장입니다.
ⓒ 밀양시
그는 밀양 박물관에 들렀을 때 전시품이 빈약한 걸 보고 기증을 결심했고, 박수근미술관을 열 때 당자의 작품이 없다는 소식에 소장했던 박수근의 작품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화단의 원로 전혁림 화백이 미술관을 열면서 초기작이 없다고 하자, 자신이 30여년 전부터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을 흔쾌히 돌려드렸습니다.

"신옥진 선생의 미술품 기증은 보다 많은 미술동호인이나 애호가들에게 작품감상의 기회를 넓히고, 나아가 작품의 영구보존을 소망하고 준비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리라 생각합니다." - 김상훈 부산일보 사장 <공간 30년> 13쪽

지금껏 그가 기증한 작품들은 근현대 그림뿐만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수집했던 고미술들도 많습니다. 발품을 팔아 고미술 경매장엘 가고 그곳에서 경합을 벌여 소장한 고서화와 유물들도 '마음을 비우고' 기증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신옥진 사장'이 아니라 '신옥진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사장'이 아닌 '선생'으로 불리는 까닭

▲ 부산시립박물관에 기증한 고서화와 유물 30점 중 일부. 호생관 최북의 '난'과 추사 김정희의 간찰 그리고 부산출신의 서예가 운여 김광업의 희귀 전각등이 포함되어있습니다.
ⓒ 부산시립박물관
▲ 부산청년미술상 수상식에서 축사하는 모습
ⓒ 청년미술상 운영위원회
그는 기증 외에도 원로 향토화가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향토전'을 개최하고, 젊은 청년화가들을 위해서는 '부산 청년 미술상'을 만들어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1989년부터 계속되어온 이 상을 통해 부산 지역의 많은 청년화가들의 작품 세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이제 그들의 대부분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화단의 중진 혹은 유망작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산지역의 작가들만 배려한 게 아닙니다. 서울이나 해외 거주 화가 중에서도 작품은 좋은데 형편이 어려워 전시회를 하지 못함을 알게 되면, 흔쾌히 전시회를 열어줬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고 오윤 화백의 전시회입니다.

▲ 1986년 6월 20일, '오윤 전시회' 오픈행사. 오윤 화백은 이 전시회 2달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 공간화랑
오윤 화백 생전에 개인전을 열어준 상업화랑은 부산 공간화랑 뿐입니다. 80년대 당시 오윤 화백은 민중미술의 전위그룹인 '현실과 발언'을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그의 전시회는 대부분 민중미술 전시장이었던 '그림마당 민'에서 열렸을 뿐, 상업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윤 화백의 작품성을 알아보고 또 그의 어려운 형편을 감안해 초대전을 열어줬습니다. 또한 간경화로 투병 중인 화가의 건강을 고려해 왕복 비행기표값도 보내줬습니다.

"그러나 화가 본인은 그 돈을 아껴 기차를 타고 왔다. 병세가 완연해 얼굴은 핼쓱하고 혈색은 좋지 않았으나 가끔씩 미소를 띠며 상대를 편하게 해 주었으며, 마호병에 미음을 넣어와 중간중간 마시기도 했다. 거의 별 말이 없었던 작가는 오픈 때 직접 케익에 초를 꼽고 호주머니에서 라이타를 꺼내 몇 개의 초에 일일이 불을 붙인 다음 입으로 정성스럽게 불어 끄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 신옥진 <공간 30년> 98쪽

당시 오윤 화백의 작품값은 7~25만원 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작품은 1/3 밖에 팔리지 않았습니다. 화랑의 수익은 고사하고 화가에게 보낸 비행기 값도 건지지 못했음에도, 그는 오윤 화백의 맑은 영혼에 도취되어 오랫동안 행복했다고 합니다.

▲ 이인영 유고시집 <어느 소명> 표지
ⓒ 공간화랑
그는 화가들뿐만 아니라 지역 원로 문인들에게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생전에 다 하지 못한 것은 사후에도 챙겼습니다.

가난과 술과 시로 한 생을 산 '불운의 천재시인' 이인영 시인, 그분에게는 남몰래 생활비를 보탰습니다. 시인이 치매 걸린 어머니 옆에서 숨진 지 닷새 만에야 발견될 정도로 허망하게 생을 마치자, 그가 교유하던 부산지역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유고 시화집'를 만들어 시인의 무덤 앞에 바쳤습니다. 생전에 시집을 내드리지 못했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 그였기에, 시인의 유고시 중에서는 이런 시도 발견되었습니다.

나에게는 빽이 세 분이 계시다./ 한 분은 '공간화랑' 신옥진백작이시고/ 한 분은 어머님/ 또 한 분은 하느님이시다/
대낮에 한 밤에/ 길을 잊어버리고/ 투 아웃/ 투 쓰리 절대절명의 위기에/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은 저기다./저기가 끝이다라고/ 가르치는 이 분들/
교과서로 삶을 살기 보단/
퇴학으로, 사람으로 있고 싶은/ 나에게/ 빽이 세 분이나 계시다./
- 이인영 <어느 소명 5> 전문


그림에 대한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들

▲ 전시회 참석차 부산에 온 장욱진 화백을 모시고 충무에 갔을 때. 쪼그리고 앉아 스케치를 하는 장화백의 모습과 왼쪽에서 구경하는 시민들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 공간화랑
▲ 공간화랑에서 여러 번 전시회를 한 이우환 화백과 신옥진 사장이(오른쪽) 함께 화랑 입구 계단을 올라갑니다.
ⓒ 김홍희
이런 자세로 삶을 살아온 그였기에, '문화의 소외지역'으로 불리던 부산에서도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부유한 환경 속에서 화랑을 운영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30여년 전 폐를 절단한 허약한 몸으로, 광복동 외국서점 거리의 허름한 찻집에 '공간화랑'이라는 작은 간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화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한 번 찾아가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찾아갔고, 장욱진 화백에게는 3년을 찾아가 명함이 든 과자봉지를 문 앞에 놓고 왔습니다.

"아직도 화랑을 하느냐" "아직도 부산에서 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으면서도, 부산을 떠나지 않고 열심히 화랑을 꾸려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공간화랑'은 서울의 어느 메이저 화랑과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화랑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자수성가'하며 모았던 그림이기에, 그의 기증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 그림들 속에는, 그가 어려움을 헤쳐오면서 흘렸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신옥진 기증전'에 가면, '기증을 통한 사회환원'의 의미뿐 아니라, 그림 한 점 한 점에 담겨있는 그의 깊은 '그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부산시립미술관 가는 길

지하철 2호선 시립미술관 역 (⑤번 출구) 하차, 부산시립미술관까지 약 100m 거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1413
전화 051)744-2602 

관람시간 : 10:00 ~ 18:00 
매주 월요일은 휴관(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을 휴관일로 함)


태그:#기증문화, #신옥진, #그림 기증, #부산시립미술관, #밀양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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