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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2월 25일 개방형 등록제로 바뀐 청와대 기자실 첫 브리핑 장면.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정부와 신문사들 사이에는 지금까지 항상 '두 개의 전선'이 존재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신문들과의 전선이 한 축이었다면, <경향> <한겨레>와는 또 다른 전선을 쳤다.

이 두 전선 때문에 노무현정부로서는 좌우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는 모양새이기도 했다. 하지만 좌우협공을 당한 때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 어느 한쪽으로부터는 도움을 받는 '도우미 효과'가 더 컸다.

부동산 대책 등에 대해서 '조중동'이 십자 포화를 퍼부으면 <경향> <한겨레>가 그래도 방어선을 쳐주었다. 한미FTA에 대해서는 그 역할이 바뀌었다. <경향> <한겨레>의 비수와 같은 날 선 공격을 '조중동'이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 철벽 방어했다.

노무현 정부를 가운데 두고 '조중동'과 <경향> <한겨레>가 가장 첨예하게 대치했던 분야가 바로 '언론' 문제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 정책에 대해 '조중동'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경향> <한겨레>는 그런 '조중동'에 대해 정부 탓을 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라며 언론 스스로의 '자정'을 촉구해왔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말은 삼갔지만 "뭔가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기도 했다.

'조중동'과 <경향> <한겨레>가 한편 된 이유

▲ 산자부 출입기자실 입구
ⓒ 오마이뉴스 김병기
그런 '조중동'과 <경향> <한겨레>가 '언론문제'에서조차 한편이 돼 '노무현정부'와 정면충돌했다.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자실 통폐합 조치다. 국정홍보처가 그 안을 마련해 22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이 방안은 각 정부 부처에 산재해 있는 37개의 브리핑실과 기자실을 5개의 '브리핑 및 기사송고실'로 축소 조정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남게 되는 기자송고실은 브리핑 룸이 있게 되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과천 정부종합청사 ▲대전청사 ▲대검 ▲경찰청 등 5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머지 브리핑 룸과 기자실은 폐쇄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오늘(21일) 기사("기자실 청사 출입증 회수/기자실 폐쇄 후 상주 불허")에 따르면 기자들에게 발급됐던 "정부종합청사 출입증도 회수하고, 브리핑이 실시될 때 마다 매번 방문증을 발급받도록 하는 방안도 내부에서 논의 중"이라고 한다.

19일 <조선일보>의 첫 보도로 알려진 뒤 오늘 대다수 신문들은 '사설'등을 통해 일제히 이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경향신문>은 '다시 도마에 오른 노정부 언론정책'에 아예 한 면을 털었다. <서울신문>만 침묵했다.

'기자실 폐쇄' 계기나 저의가 불순하다?

'조중동'과 <경향> <한겨레>가 이 문제에서 한 편이 된 데에는 무엇보다 이번 대책에 대한 '계기'나 '저의' 자체가 불순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조치가 '대통령의 한 말씀' 때문에 마련됐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 1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기자들이 보도 자료를 가공하고 담합하는 구조가 일반화돼 있는지 조사하고 보고해 달라.…몇몇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기사 흐름을 주도하는 기자실의 실태를 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이 그 직접적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경향>은 이를 두고 노대통령의 이런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똑 같은 사안을 두고도 신문·방송·인터넷 매체의 보도가 다르고 진보·보수 언론의 보도가 다른 현실을 외면하고 여론을 오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은 이어 "참여정부는 '홍보정부'라고 불러도 될 만큼 국정홍보에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 반면에 "2003년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했으나 언론 견제만 강화했을 뿐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지는 못했"다고 비판했다.

<경향>은 이런 마당에 브리핑 룸과 기자실을 크게 축소하는 등의 조치는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권력 감시기능을 크게 제한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언론'과 '권력'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소통부재 속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도 소개했다.

모든 언론에 십자포화 맞고 있는 노무현 정부

▲ 대검 기자실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한 출입기자.
ⓒ 오마이뉴스 유창재
<한겨레> 또한 노무현정부의 이번 방안을 '국민 알권리 경시하는 정부의 언론정책'이라는 사설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기자실을 줄이는 것은 물론 관리들과의 접촉 까지 더 엄격하게 제한할 경우 ▲정부의 정책 수립이나 집행, 평가 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언론의 통로는 지금보다 더 제한되는 반면 ▲범정부 차원에서 조율된 보도 자료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지고 ▲관리들은 언론의 감시의 눈길에서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거대언론사의 정보독점만 더 커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조선일보> 또한 사설(국민 눈·귀 가리려 온갖 아이디어 짜내는 정권)에서 굳이 기자실의 통폐합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기자실이 부처마다 있어야 할 이유도, 배타적으로 운영돼서도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되 과연 "기자실을 이렇게까지 없애도 될 만큼 정부의 정보공개 의지와 체제가 돼 있느냐"고 물었다. <중앙일보>는 "언론이 그렇게 못마땅하냐"고 물었고, <동아일보>는 '국민의 알 권리 박탈'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왜 그렇게 기자실 없애기에 집착하나'고 힐난했다. <한국일보>는 "노무현대통령의 울컥하는 한 마디에서 모든 게 시작됐다는 점에서 주무 부처인 국정홍보처의 시대착오적 '무한 충성' 체질도 거듭 확인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사설은 노대통령 발언의 배경을 "보수 매체 뿐 만이 아니라 방송과 진보 매체까지 뒤늦게 비판의 날을 세운 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며 "더 이상 신경질적인 언론정책에 매달리지 말라"고 촉구했다.

'우군'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황

다른 신문 사설 제목들은 더 험하다. <국민일보>는 '언론 재갈 물려 암흑천지 만들려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일보>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자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이런 정부를 상대로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설명하는 것조차 이젠 지쳤다"고 토로했다.

한마디로 십자포화다. 노무현정부로서는 '우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절제에 절제를 거듭한 <한겨레>조차 이번 방안에 대해 강행에 앞서 "당사자인 언론과 시민사회와 건강한 토론을 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국정홍보처는, 또 내일 노무현 대통령은 과연 어떻게 할까?

그나저나 '조중동 타파'의 기치를 높이 세웠던 노무현정권이 한미FTA로 '조중동'의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된 것도 그렇거니와, 정작 언론문제에서 '조중동'은 물론 <경향> <한겨레>까지 등을 돌리게 만든 상황은 참으로 희극적이다.

태그:#백병규, #미디어어워치, #기자실, #국정홍보처, #언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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