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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1월 16일 당시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TV토론과 국민 여론조사를 뼈대로 한 후보단일화 방안을 놓고 극적 대타협을 이뤄낸 뒤, 포옹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국정치는 무엇으로 움직일까?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하나만 들라면? 아마도 '여론'이라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여론'이 정치의 주요 변인이라는 것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여론조사'다.

여론을 재는 여론조사야 말로 언제부턴가 한국정치에서 '주술적인 힘'을 갖게 됐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도 '여론조사'로 정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있어서도 '여론조사'가 단연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여권의 대안 후보들이 여론조사의 추이에 따라 제대로 힘도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갔다.

여론조사에서 이기는 사람이 정치적 승자가 된다는 '맹목적 믿음'이 마치 신앙과도 같다. 정치의 결과가 여론조사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가 정치를 만든다.

이런 여론조사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한나라당을 두 쪽 낼 뻔 했던 경선 규칙 싸움도 여론조사 때문이었다. 그 싸움은 2회전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주술, 여론조사

이런 가운데 선거관리위원회가 여론조사 기관들을 조사하겠다고 나서 정치권과 언론, 여론조사기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선관위는 지난 주 16개 여론조사 기관에 공문을 보내거나 전화통지로 대선 주자들과 관련된 여론조사 질문지와 조사설계서 등 자료 일체를 제출토록 요청했다. 선관위는 특정 주자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조사를 공표 보도함으로써 선거운동에 이용하고 있는지 하는 문제들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조사 배경을 언론에 설명했다. 정치권 일부에서 언론에 발표되는 여론조사의 공정성에 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한 여론조사기관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것이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미룬 채 엉뚱하게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여론조사나 그 발표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모든 여론조사 기관이 다 문제가 되는 것처럼 조사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과거에는 잘못된 여론조사 보도가 있으면 선관위가 그때 그때 나서 지적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아예 손을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모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자신들의 직무유기를 가리려는 적반하장이라는 것이다.

또 정치권에서 문제가 된 것은 주로 언론에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인데, 정작 언론사를 상대로 한 조사는 하지 않고, 여론조사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 공정성 논란을 일으킨 여론조사를 비롯해 문제가 된 여론조사들은 언론사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것들인데, 자료를 요청할 것이면 언론사에 요청할 것이지 왜 여론조사 기관에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기도 하다. 저작권도 언론사가 갖고 있기 때문에 자료를 구하자면 언론사에 먼저 요청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언론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언론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면 되고, 질문지 내용이나 조사방식 등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여론조사기관을 조사하는 것이 수순이라는 이야기다.

한국 갤럽 같은 곳은 "여론조사 결과는 물론 질문지 내용이나 조사방법 등을 모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는 데 무슨 자료를 더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뜬금없는 선관위의 자료 요청에 의아해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은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총괄과의 한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여론조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객관성이 결여돼 있으며,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자료가 나오고 있다는 말들도 있어 여론조사가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되고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실태파악을 위한 사전 조사라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무지한 정치권과 언론

▲ 지난 3월 22일 오후 '4.25 화성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승리를 위한 한나라당 경기도당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당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일부 정치권에서 문제 제기가 있어 조사하게 된 것 아니냐는 반문에는 "그것은 나중에 결과를 봐 공표하든지, 하지 않든지 할 것"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어쨌든 정치권 어느 한쪽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그것이 이번 선관위 조사의 배경이 된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크게 여론조사 방식의 문제점과 언론 보도의 문제점으로 대별된다.

먼저 언론의 보도 태도. 박무익 한국 갤럽 소장은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응답 회수율이 낮은 것은 물론 설문 등 기초적인 점에서부터 문제가 눈에 띄는 여론조사 결과는 언론이 아예 보도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박 소장은 정치권이나 언론은 물론 자칭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여론조사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오해가 많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여론조사 1위에 대한 평가와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 쪽으로 쏠리는 현상)이다.

보통은 여론조사 결과 1위가 나오면 밴드왜건이 작용한다고 보는데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박 소장은 "여론조사 결과가 불만을 품는 쪽은 주로 여론조사 결과에서 불리한 쪽이고, 전문가들까지 여론조사 1위가 밴드왜건 효과로 유리하다고 말한다"며 "이는 정말 무지와 오해의 소치"라고 질타했다.

미국의 역대 13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조사 1위 후보와 2위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좁혀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의 4번의 대통령 선거 또한 시간이 갈수록 그 순위가 뒤바뀌는 등 밴드왜건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박 소장의 말대로라면 오히려 '견제효과'가 더 큰 셈이다.

여론조사 방식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관계자들 다수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된 몇 가지 여론조사 결과들과 직접 관계가 된다.

첫째는 전화여론조사와 ARS(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한 여론조사의 차이. ARS 조사의 경우 우선 응답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 표본의 신뢰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응답비율이 경우에 따라서는 채 10%도 안 된다는 것이 여론조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정치관련 여론조사의 경우 ARS 조사는 이런 낮은 응답률 때문에 몇 가지 경향성이 나타난다. 저학력, 저소득층의 응답비율이 상대적으로 크고 반면 정치에 대한 관심은 높은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두 번째, 조사 시기의 문제. 정치관련 여론조사의 경우 저녁과 밤 시간대에 조사하는 것이 원칙으로 돼 있지만, 낮에 조사를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낮 시간대에 조사를 실시할 경우 표본의 왜곡이 심각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직장인들이 응답대상에서 사실상 빠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설문지 구성의 문제다.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조사 결과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도 이 문제가 결국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지지율 조사를 할 때 보통 세 가지 질문지가 많이 쓰인다.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느냐 ▲누구를 지지하느냐 ▲당장 오늘 투표한다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고 묻는 방식이다.

적임자라고 묻는 것은 보통 '선호도 조사'라고도 한다. '지지자'를 묻는 것은 선호도 조사 보다는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누구에게 투표할 것이냐'고 묻는 것은 출구조사에 버금가는 투표율 예측 때 많이 쓰인다.

여론조사... 문제는 '언제, 어떻게 물을 것이냐'

문제는 시기다. 선호도 조사는 자신의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적임자 여부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알아볼 때 많이 채택하는 문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선거전이 한참 남았을 때 유력 주자군을 알아볼 때 유효하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지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누가 좋을지 알아볼 때, 즉 유력후보군을 추리는 방식일 수 있다.

지지도는 그 보다 한 단계 더 나간 국면에서 많이 쓰인다. 정당 후보 경선 국면에 접어들어 각 당의 후보주자군이 대략 윤곽을 드러냈을 때 후보주자군의 우열을 가늠할 때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수의 후보군을 놓고 구체적으로 지지 여부를 물음으로써 각 후보주자들에 대한 지지도를 알아보는 방식이다. 또 한편으로는 당내 경선에 나선 후보들을 두고 '대중적 지지도'를 조사할 때도 주로 사용한다.

'누구에게 투표할 것이냐'는 각 당의 대표주자들이 결정돼 최종 승부에 들어갔을 때 그 선택을 물을 때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후보 비교뿐만이 아니라, 당의 선택까지를 포함한 종합적이고 최종적인 '유권자의 선택'을 물을 때 효과적이다.

여기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세 번째('당장 오늘 투표한다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 방식이다. 당내 경선 후보들을 놓고 첫 번째('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느냐')나 두 번째('누구를 지지하느냐') 방식을 채택했을 때와 세 번째 방식을 택했을 때 그 결과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당내 경선 후보를 놓고 첫 번째나 두 번째 방식을 사용하면 자신의 '정당 선택'(즉 특정 정당 경선 후보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당 후보나 후보주자에 대한 선호)과 무관하게 거론된 후보들 중에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반면 세 번째 방식은 '종합적이고 최종적인 투표행위'에 대한 의견을 묻는 방법이다. 거론된 후보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 후보들이 아닐 경우 '무응답'하는 비율이 높게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특정 정당에서 후보 주자들에 대한 지지도를 알아보고자 할 때 정당 지지자들 중심으로 지지율을 알아보자면 세 번째 방식을, 정당에 대한 지지와 무관하게 대중적 지지도를 알아보고자 할 때는 첫 번째나 두 번째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다수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근에 가장 논란이 됐던 여론조사는 지난 4월 14일 발표됐던 YTN-글로벌 리서치 조사다. 이 조사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무려 '13.7%'나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표는 2주 전과 같은 22.1%를 유지했다. 반면 무응답층이 2주 전 조사의 16.5%에서 32.5%로 급증했다.

논란이 된 이 조사는 ARS방식으로, 또 '당장 내일 투표한다면 누구에게 찍겠느냐'고 물었다. 그 전 조사가 전화조사방식으로 '선호도'를 물었던 것과는 조사 방식이나 설문 문항이 바뀐 것이다. 여론조사 방식에 따라 지지율 조사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빅2 대전' 2라운드 예고되는 이유

▲ 한나라당은 15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대선후보 `경선 룰` 관련 당헌ㆍ당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본격적인 검증 모드에 들어간 한나라당에서 불꽃 튀는 신경전이 내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여론조사다. 이때문에 '2차전'이 예고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17일 '여론조사 설문 방식 또 충돌 예고'(홍석준 기자) 기사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 간에 "여론조사 방식과 내용을 둘러싸고 또 한 차례 양측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박 진영에서는 "대통령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후보 이름을 불러주는 방식의 설문을 선호하고 있는 반면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오늘이 대통령 선거일이라면 어느 당의 누구를 대통령으로 찍을 것이냐"라고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후보 경선 여론조사가 과연 '과학의 영역'에 머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태그:#이명박, #백병규, #박근혜, #여론조사, #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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