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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대학생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 <서울신문> 백무현 화백은 만평을 그렸다. 부시대통령의 말풍선엔 '한방에 33명… 이로써 우리 총기기술의 우수성이 다시한번…'이라는 대사가 삽입되었다. 하지만 마감 후 범인이 한국인으로 밝혀지자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서울신문>은 만평을 내려야 했고 백무현 화백은 사과의 말을 전해야 했다.

하지만 이 만평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난은 끊일 줄 몰랐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백무현'이란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결국 백 화백과 <서울신문>은 19일 백화백의 만평연재를 당분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왜 그래야 했을까? 이 만평은 왜 그렇게까지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

졸지에 '매국노'가 된 백무현 화백

사람들이 이번 사건에 몰입하는 이유는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인 듯하다. 그것이 정서적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사실은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가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 총을 쏴 33명의 사망자를 내고 자살한' 것이다.

한국은 그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정부차원에서 조문사절단을 파견하려고 했지만, 미국이 거절한 것을 보면 미국이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미국은 범인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한국 누리꾼들은 이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호들갑스럽게 '나라망신'을 이야기하며, '경제대국'답게 먼저 사과하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론의 보도 태도 역시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민족감정'에 지나치게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 CNN 방송엔 한국 언론이 그토록 우려하는 '한국과의 외교 재검토'니, '한국 비자면제 재검토'니, '한미FTA재검토'니 하는 말들은커녕, 그가 '한국인'이라는 점 이외에 한국과 관련된 어떤 것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는 '히스패닉'이나 '미국계 중국인'이나 다른 미국계 소수민족들 중 한 명일 뿐이다.

특히 백무현 화백의 만평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난은 지나치다. 누리꾼들이 백무현 화백에 대해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매국노로 모는 것은 지나치다.

백 화백 만평의 의도는 '총기 난사 사건의 근본원인'에서 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국라이플협회(NRA)'의 로비와 정부의 의도적 방관을 비판하려 했다. 아울러 NRA보단 그 로비를 받아주고 있는 미국 행정부의 잘못이 더 크다고 판단해, 대상을 좁혔던 것으로 읽힌다. 미국 행정부의 수장은 부시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가 만평에 등장했고, 대사가 삽입되었을 것이다. 물론 대사 삽입 과정에서 지나친 비약이 있었다. 거기까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건에 지나치게 몰입해, 결국 만평이 갖는 풍자마저 몹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문제는 그 만평이 이미 번역되어 외국에 돌고 있다며 '한국인 망신시킨다'는 주장이다. 만평가에게는 '만평'으로만 말해야 한다. 그의 만화가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면 그를 비판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을 '매국노', '한국인 망신'으로 표현하며 비판의 범주를 민족과 국가적 차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왜곡된 쇼비니즘이다. 다른 이의 잘못까지 '민족과 애국'의 이름으로 미안해 하며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배타적 애국주의와 사촌관계쯤 된다.

이번 사건으로 졸지에 '매국노'가 되어버린 백무현 화백은 누리꾼 여론 재판의 희생자가 되었다. 누리꾼들은 '범인은 한국인'(범인은 히스패닉계라고 했대도 충격을 받았을까?)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후 희생양을 필요로 했을지 모른다.

호들갑스럽게 굴 필요가 없다

백 화백은 번뜩이는 상황설정과 풍부한 비유를 통해 수준 높은 만평을 그려온 작가다. 쉽게 말하면, '매국질'하는 그림을 그려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38살에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이봉주 선수 소식을 다룬 3월 19일자 <서울신문> 만평이나, 고 윤장호 하사의 비극을 기린 3월 1일자 만평을 보면 그가 여론에 잘못 알려진 대로 '파렴치한'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의 백무현 화백은 공중으로 사라져버리고 단지 '한방에 33명'이라는 문구만 희뿌옇게 남게 되었다. 과연 백무현 화백이 그렇게 '꼴통적' 자세로 만평을 그려온 작가인가? 그렇지 않다.

문제가 된 만평 정도의 풍자는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하지만 범인이 단지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우리만 호들갑스럽게 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엄숙하게 애도만 표명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사과할 일도, 통탄할 일도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개 만평작가가 한국인을 망신시켰다고, 한미관계에 균열을 초래했다고 비난할 일도 없는 것이다. 딱 그만큼만 보자.

덧붙이는 글 | 박세열 기자는 뉴스툰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기자협회보에 보낸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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