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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비로소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지난 1971년 이래 불과 40여 년 만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국가의 재정이 튼실해지고 정치, 군사적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는 중동의 산유국 아랍 에미레이트.

정치적으로 반대 세력이 용납될 수 없는 군주제 국가, 국가의 정책에 대한 몽매한 백성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통치의 수월함, 무진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석유로 인해 백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국가의 권위, 분쟁 지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다소 원거리에 있는 지리적 이점, 군주의 혁신 의지로 인해 아랍 내 상대적 자유로움을 통한 상거래의 편의성 등 어느 것 하나 문제 될 것 없는 유토피아 아랍 에미레이트.

'두바이' 하면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단순히 재수출 시장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진일보한 두바이 소재 회사들과 자본 및 기술 합작을 통한 생산 거점 전략으로 옮겨가는 등 일신우일신을 거듭하고 있는 아랍 에미리트 시장.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중심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미처 찾아보기 힘든 '아랍 에미레이트의 허와 실'을 점검해 이 지역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개시코자 하시는 사람은 물론 대 아랍에미레이트 관련 각종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 내 전문가들에게 역시 이 연재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편집자주>
▲ 아랍에미레이트와 같은 걸프 국가에서는 어디를 가든 이제는 현지인 복장을 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사진은 아부다비 쇼핑몰 내 푸드 코트의 모습.
ⓒ 이상직
인구 멸종에 대한 우려

지난 한 해 취업 비자로 이 나라를 찾아온 사람들은 대략 36만명에 이른다. 전년도 인구 450만 대비 무려 8%에 해당하는 인구 증가가 단순히 취업 비자를 통해 유입된 인구의 증가이다. 한국 인구를 쉽게 5천만으로 볼 때 400만명 정도가 취업을 위해 국내로 들어온 것과 다르지 않으니 연간 유입되는 인구 증가율로 단연 세계 선두가 아닐까 싶다.

작년 아랍 에미레이트 인구 490만명 중 자국민 수는 100만이 채 안 되었다. 반면 인도인 거주 인구는 120만을 뛰어넘는 진기록을 세웠다. 전체 인구 490만명 중 80%가 외지인이고, 나머지 고작 20%가 자국민인 셈이다. 지역 갈등으로 안 그래도 시끄러운 한국에서 순수 한국인이 1000만명에 외국인 거주자가 4000만명이라면 과연 어떨까 싶다.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는 국가 개발 계획하에 수년째 지속하는 고유가 시대의 영향과 더불어 매년 유입되는 외지인 인구의 인구 유입률과 이미 들어와 살고 있는 신세대 외지인 인구의 자연 증가율이 아랍 에미레이트 자국민 인구 증가율을 멀찌감치 따돌려 버리는 현재의 현상이 계속된다면 현재 20%인 자국민 비율이 매년 1%씩 감소, 2025년경이 되면 자국민의 전체 인구에 대한 비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

자국 인구가 20년 내 전체 거주 인구의 1%에 못 미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두바이, 아부다비를 가리지 않고 세이크 무함마드와 세이크 칼리파를 직접 겨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아랍 에미레이트 토종, 자말 알 수웨이디 박사는 아랍 에미레이트 인구 문제를 거침없이 이렇게 표현한다.

"아랍 에미레이트는 인구 문제에 관한 한 영원히 회복될 수 없습니다. 제가 보는 견지로는 이 문제는 이제 우리 손을 이미 떠난 문제로 그 부정적 결과는 영원히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제가 제안드리고자 하는 합리적 결론은 공존의 지혜입니다. 외지인들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절대 소수의 자국민들만이 누리는 외교에 관한 특권을 다수의 외지인들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로 현재 거주 비자를 궁극적으로 영주권으로 전환시켜야 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랍인도 아니고 아랍 에미레이트 자국민도 아닌 다문화와 세계화를 그 근본으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국제적 정체성을 지닌,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사회를 창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절망을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알 수웨이디 박사와 같은 유일무이한 선구자의 지적에도 아랍 에미레이트가 당면한 문제는 좀체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 아부다비 이민국 모습.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 하루 종일 외지인들로 붐빈다.
ⓒ 이상직
외지인에 의한 외지인을 위한 시장

초가을 같은 짧은 겨울이 지나고 사시사철 펄펄 끓는 사막 기후로 인해 대부분의 계절을 실내에서 생활하는 이곳은 한국 백화점의 서너 배에 해당하는 메가몰을 시내 곳곳에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실내에 스키장이 있는가 하면, 온갖 세계의 음식을 한 곳에 모아놓은 식당가만큼이나 이곳에서 성행하는 실내 사업이 영화업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자리 잡은 멀티 영화관이 쇼핑몰 구석에는 반드시 하나씩 있어 평일은 물론 주말이 되면 미리 가지 않으면 표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붐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우리가 흔히 "사람들이 몰린다"는 표현인데,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라고 하면 마땅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인도인들이 몰릴 것이고, 필리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필리핀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 가족이 모두 미국 영화 <드림 걸스>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 영화 상영을 전문으로 하는 '알 마리아 센터'를 찾을 때만 하여도 내심 걱정이 앞섰다. 평일인데다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찾아왔으니 표를 못 구하면 어떨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무척 보고 싶다고 졸라대던 아이에게 실망을 시키지 말아야 할 텐데.

막상 매표소에 도착하여 평소 안면이 있던 여직원에게 사정을 물으니 너무도 예상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 상영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각에 우리 가족이 <드림 걸스>를 보러온 최초의 '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 마냥 <드림 걸스>를 보러온 사람들은 10명 남짓이었는데, 대부분이 유럽과 레바논 출신들로 아랍 에미레이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영화관은 물론, 패션숍, 심지어 이발소까지 많이 찾아오는 고객을 위해 물건을 준비하고 서비스를 갈무리하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국민 20%를 위한 시장이 특별히 형성될 이유가 없다. 동대문에만 나가면 지천으로 깔려 있는 옷 가게가 이곳에서는 통할 수가 없다. 옷 가게는 대부분 인도와 파키스탄 내지는 필리핀 고객을 주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현지인들은 이제 옷 한 벌 사는 것도 여간 성가시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존재하지 않는 '우리'

▲ UAE 현지인 자말 박사는 "우리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다.
ⓒ <걸프뉴스>
어스름 해가 걸프만을 따라 뉘엿뉘엿 지평선 저편으로 넘어가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와 한숨 눈을 붙이고 난 다음 저녁 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쇼핑몰로 모여든다.

이곳에 오면 아부다비 시내에 있는 모든 학교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쁘게 생긴 여학생과 데이트도 즐길 수 있고, 서점이나 버진 메가와 같은 복합 음악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고를 수도 있고, 인터넷 카페 후미진 자리에 앉아 시끄러운 게임도 즐기며 도둑 담배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로 그 넓은 아부다비 몰이 가득 차는 주말이 되어 어쩌다 한 번 이곳을 방문해 보는 내가 놀라는 사실은 도무지 누가 누구인지를 구분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여학생들 나름대로 남학생들은 또 그들대로 쇼핑몰 방문 복장이 마치 미국이나 영국의 골목 한 귀퉁이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힙합 복장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생김새를 가지고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서구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아랍 청소년들이 복장마저 힙합 복장에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선글라스를 머리에 고정 시킨 채 엉덩이에 간신히 바지를 걸치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자라나는 이곳 아이들에게 있어 '우리'라는 개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와 '너'는 존재하지만 이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다.

▲ 아부다비 최대 쇼핑몰 중 하나인 아부다비몰 내 영화관 모습.
ⓒ 이상직
오히려 따돌림당하는 자국 아이들

아이가 다니는 인터내셔널 스쿨은 레바논과 인도, 파키스탄 아이들의 천국이다. 30명 남짓한 한 반에 남·여 학생이 각각 15명인데, 이 중 아랍 에미레이트 아이들은 한 반에 기껏해야 한 두 명이다.

그렇게 내내 인도 아이들과 짝꿍을 이루다 올해 들어 처음 현지인 라티파와 짝을 이룬 딸 아이는 지난 가을 이래 현재까지 이 깜찍하고 말썽꾸러기 아랍 에미레이트 소녀 라티파를 위해 투자한 시간이 보통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학급 내 같은 국적을 가진 아이들이 거의 없으니 이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반드시 자기네들끼리 모여 놀아야 하므로 학급에는 아예 친구들이 없단다.

그러다 보니 숙제를 몰라도 물어볼 친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시험공부를 하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라티파는 이미 작년에 부모님이 사주신 엠피3 작동법을 아직 모르면서도 나의 딸과 근 1년을 함께 지내고 난 며칠 전에야 비로소 그 작동법을 물어올 지경이었다니.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는 대부분 자국민들만을 대상으로 가르치지만 이 경우 역시 교육 시스템 및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아이들이 대부분 외국인 사립학교로 옮겨가게 되는데, 막상 옮겨가 보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모두 외국 아이들이니 오히려 인도나 파키스탄 내지는 미국과 영국의 교과 과정과 그들의 문화를 보며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학교가 마치는 저녁 시간이 되면 쇼핑몰 3층의 이 복도는 서울 명동 거리 마냥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 이상직
다문화 시대의 필연적 도래

한 달 전 샤키라 공연을 보기 위해 아이들이 두바이로 몰려갔다. 길에다 쏟은 시간까지 합치면 대략 반나절은 족히 되는 시간을 샤키라 공연을 위해 기꺼이 투자한 이 아이들은 인도, 파키스탄, 레바논은 물론 아랍 아이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어른들이 온갖 편가르기와 인종적 차별로 자신들의 특권적 위치를 구축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자라나는 아랍 에미레이트의 아이들은 이미 정체성 상실을 넘어 빠른 속도로 서구화되고 있다.

패션은 물론 음악과 영화 등 모든 영역에서 할리우드 문화가 아랍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으로 인해 상실된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은 주변에 널려 있는 인도, 파키스탄의 외지인 문화와 더불어 다문화 시대의 필연적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부족주의의 망령

500만이 채 안되는 이 나라에 축구 클럽이 15개나 된다면 누가 믿을까 싶다. 순수 자국민으로 한정해 보면 100만이 채 안 되는 국민을 위해 무려 15개의 축구 클럽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클럽 간 축구 경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지역 방송을 통해 안방으로 생중계되고 경기장은 흰 옷 입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이동하는 어웨이 경기를 위해 전날부터 호텔은 미어터지고 주요한 타이틀 게임이라도 있는 날이면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축구가 민족과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을 열광케 하는 경기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아랍 에미레이트 사람들은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가. 대답은 '예', 그리고 '아니요'다.

지난달 있었던 아랍 에미레이트와 한국 올림픽 축구팀 간 예선전 경기가 아부다비 알 와흐다 클럽 세이크 자예드 경기장에서 있었다. 모두 모인다고 하더라도 겨우 1500명 남짓한 우리 교민들이 두바이에서 전세버스를 3대씩이나 빌려 아부다비로 모여든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부다비에 거주하는 50여만명의 아랍 에미레이트 현지인들 중 경기장을 찾은 사람은 수백 명에도 미치지를 못했다.

우리가 동서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인다면 이곳은 부족과 부족 간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인다. 지난해 말 처음 시도된 연방 의회 선거 결과도 그런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아시스와 연안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부족과 부족 간 물과 목축을 위한 목초지를 놓고 벌이던 해묵은 갈등이 빌딩과 고속도로로 포장된 현재까지도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자국민 비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이들 부족과 부족 간 갈등에 올인하고 있는 아랍 에미레이트 사람들이 깨닫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

▲ 한국 올림픽 대표팀 경기가 벌어진 아부다비 소재 알 와흐다 경기장 광경. 겨우 수십 명이 될까한 현지인들이 경기장에 흩어져 있다. 이날 경기는 한국팀이 3대1로 승리.
ⓒ 이상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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