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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를 끌어온 한미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협상 타결내용을 각 분야별, 쟁점별로 진단할 예정입니다. 다섯번째 진단대상은 '농업'입니다. 이와 관련해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가 보내온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이 글은 그 마지막입니다. <편집자주>
▲ 한미FTA가 발효되면 미국산 농산물은 한국 시장에서 극단적 특혜를 받게 되는 반면 국내 농업은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먼저 FTA를 체결한 것을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몰라서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일본은 진작 'EPA'(경제연계협정,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라고 하는 FTA 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국인 전문 숙련 노동력의 일본 진출을 수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전체로서의 일본의 경제적 이익 달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EPA전략의 하나가 바로 일본 농업에 대한 고려이다. 일본의 FTA 정책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METI)이 2005년에 발표한 '일본의 EPA/FTA 정책'이 미국과의 EPA 추진을 일정표에 아예 넣지 않은 것은 전략적 고려에서였다.

일본은 2002년 1월에 첫번째 EPA를 싱가포르와 체결하면서 싱가포르 전문 노동력의 일본 진출을 개방하면서도, 일본 농산물 시장을 사실상 완전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농업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만일 누가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의 FTA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농업에 대한 지배세력의 관점의 차이가 그 답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미 2002년에 나온 일본의 한 연구에 의하면, 일본이 미국과 농업을 포함한 FTA를 할 경우 그로 인한 충격과 후생 손실은 일본이 싱가포르·한국·아세안 4개국·중국 모두와 FTA를 합한 것보다도 약 3.6배가 더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스즈끼 노부히로 교수 저 23면에서 재인용).

이러한 연구 결과는 올해 다시 확인되었다. 일본의 내각설치법에 따라 구성된 일본 경제재정자문회의에 지난 2월 27일 제출된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이 농산물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여 세계 농업과의 경쟁에 전면 노출될 경우 일본 농업 생산액의 42%가 사라지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식료 자급률은 12%(칼로리 기준)로 떨어지고, 농민을 포함하여 식품산업 등 관련 종사자 약 375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일본의 연구가 옳은 것인지 일본의 내부 토론이 장차 어떤 결론을 낼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농업을 국제경쟁에 전면 노출시키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는 것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쌀은 지켰다? 관세 철폐 기간은 의미가 없다

▲ 지날 2월 농민 20여명이 서울 명동 입구에서 한미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직접 기른 무 등 농산물을 길거리에 펼쳐놓고 기습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미FTA에서 쌀은 지키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올 해 한국이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외국쌀은 모두 27만톤이고, 이는 매년 증가하여 2014년에는 40만톤을 넘어선다. 문제는 일단 쌀 의무수입량이 한 번 늘어나면, 이를 줄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 부담을 피하기 위해 한국은 앞으로 4~5년 안에 쌀을 전면 개방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과 다시 관세율 철폐 협상을 벌어야 한다. 게다가 <농민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국내 쌀 소비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했던 쌀빵과 찐쌀도 10년 안에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관세철폐 기간을 15년 혹은 10년을 두었다고 말하지 말라. 중요한 사실은 그 기간이 지나면 관세가 영원히 없어진다는 점이다. 관세가 없어진다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농업이 미국의 농업과의 경쟁에 전면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 올해가 13년째 되는 해이다. 그 사이에 한국은 농산물 일반 관세율에 대해 평균 24%의 감축을 요구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한미 FTA에서의 관세철폐 기간의 의미는 관세율을 철저히, 100% 다 없애야 하는 기간이다. 보리·옥수수·감귤류·후지 사과·복숭아·감·고추·마늘·양파·참깨 등의 관세가 머지않아 완전 철폐된다. 이는 한국의 농업이 경험하지 못한, 근본적으로 다른 충격이다.

한·칠레FTA에서도 괜찮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매우 게으른 자들이다. 한·칠레FTA의 농산물 양허표도 제대로 읽지 않는 자들이다.

쌀·보리·콩·옥수수·쇠고기·돼지고기(냉동 도체, 설육)·닭고기·감귤·오렌지 쥬스·감·사과·배 등 사실상 대부분의 주요 농산물을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DDA 협상 이후로 논의하기로 한 것이 바로 한·칠레FTA였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칠레산 농산물 수입은 발효 전인 2003년의 약 5000만 달러에서, 벌써 작년에 1억5000만 달러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그 영향은 향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갈 것이다.

미국에 대한 극단적 혜택... 우리는 뭘 챙겼나

우리가 지금까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 부분은 미국에게 약속한 무관세 수입량(TRQ)이다. 한국은 한미FTA에서 미국에게 옥수수 등 여러 농산물의 무관세 수입량 쿼터를 부여하였다.

워낙 중요한 사항이니 글이 조금 길어지는 데 양해를 구하고 싶다. 무관세 쿼터의 맥락을 알아차리려면 WTO 규정을 살필 필요가 있다.

WTO 체제에서 농산물 수입국은 농산물의 비관세 장벽을 없애면서 높은 관세율(일반관세율)을 설정하였다. 그 대신 일정 수량만큼은 아주 낮은 관세율(저율관세율)로 수입하기로 약속하였다.

예를 들어 한국은 옥수수(사료용 및 기타용)의 일반 관세율을 328%로 매겼다. 그 대신 연간 약 610만톤을 1.8~3%의 낮은 관세율로 수입하겠다고 WTO에 약속하였다. 그러니까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두 개의 극단적 관세율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옥수수를 계속 사례로 들면 한국은 2004년을 기준으로 850만톤이 넘는 옥수수를 미국과 중국, 브라질 등에서 수입하였다. 이는 앞에서 본 WTO 약속 수량 610만톤을 약 220만톤이나 초과한 것이었다.

한국은 이 850만톤 전량을 전부 낮은 관세율로 수입하였다(수치는 서진교 대외경제정책 연구위원의 연구에서 재인용). 이 초과 수입 물량분은 한국이 WTO에 약속한 물량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한국은 이를 일반 고율 관세율 적용으로 자유로이 돌릴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미FTA를 읽자.

한미FTA에서 한국은 옥수수 관세를 7년에 걸쳐 폐지하기로 했다. 미국산 옥수수에 대한 일반관세율이 해마다 45% 포인트 정도 자동적으로 낮아진다. 반면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산 옥수수에는 여전히 328%의 일반관세율이 부과된다. 한중FTA가 없다면 7년 후에 미국산 옥수수는 무관세인 반면에, 중국산에는 328%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 얼마나 극단적 특혜인가?

한국은 현재 850만톤 전부를 저율관세율로 수입하고 있지 않냐고? 앞에서 보았지만, WTO 약속 수량 610만톤을 초과한 220만톤은 한국이 일반관세율로 처리할 수 있다. 필경 미국은 머지 않아 한국에게 이를 요구할 것이다.

만일 한국이 이를 수용한다면, 한국이 WTO 약속 수량을 초과하여 수입하는 옥수수 분량은 모두 미국이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328% 관세가 부과되는 중국산 옥수수는 FTA 특혜관세를 적용받는 미국산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을 왜곡시키는 FTA

누가 한미FTA를 자유무역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자유무역의 왜곡이다. WTO 다자주의 질서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다. 세계 4위의 거대 농산물 식품 시장인 한국에서 미국의 이익을 차별적으로 보장하는 인위적 틀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한미FTA로 미국 시장을 한국이 선점하였다고 하는가? 무슨 시장을 선점하였는가? 섬유? 미국으로부터 섬유 FTA 특혜 관세를 부과받는 나라는 이미 70개 나라가 넘는다. 선점이란 한국 농산물 식품 시장에서의 미국을 위한 단어일 수는 있어도 미국 섬유 시장에서의 한국을 위한 낱말일 수 없다.

미국은 이러한 특혜 구조에 덤으로, 7년간 모두 약 169만톤의 옥수수(기타용)를 무관세로 배분받았다. 이것이 앞에서 본 무관세 수입량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산물 시장을 놓고 중국ㆍ캐나다ㆍ브라질ㆍ호주 등과 경쟁하고 있는 미국이 무관세 수입량을 따낸 분야는 식용 콩·식용 감자·감자분·보리·전분·팥·고구마·오렌지 등이 더 있다.

이처럼 한국의 농산물ㆍ식품 시장에서 미국에게 극단적 특혜와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한미FTA이다. 이른바 농산물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그러니까 미국농산물의 수입이 급증하여 국내 농업이 피해를 볼 경우 긴급 관세를 매기는 제도를 따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 제도는 이미 WTO 규정에서 보장된 제도이다.

필자는 중국 마늘을 대상으로 부과했던 이 조치를 중국과 이면 합의로 무력화시켰던 한국의 태도로 볼 때, 한국이 이를 미국을 대상으로 발동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만일 한미FTA가 발효된다면 호주ㆍ중국ㆍ유럽연합ㆍ브라질 등 한국의 농산물 식품 시장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농산물 수출국들이 경쟁적으로 한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우쭐거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 앞에는 고통스런 갈림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농업을 저가 시장에서부터 고가 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국제경쟁에 전면 노출시킬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장기간 보장할 것인가? 필자는 지금의 겉모습과는 달리 한국의 지배세력이 후자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여긴다.

▲ 지난 3월 30일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청와대 앞 집회에서 "일방적인 퍼주기, 한미FTA 협상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93년과 다를 것 없는 2007년 농업대책

과연 한국의 지배세력은 무엇을 근거로, 일본과 달리 농업을 국제경쟁에 노출시키기로 결심할 수 있었을까? 과연 그들은 대책이 있는가?

조금만 부지런한 독자라면 농림부가 지난 4일에 국회에 보고한 '한미FTA 농업부문 협상 결과 및 대책방향'이 한국이 1993년 12월에 WTO에 가입하면서 내놓았던 농업대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투·융자 예산을 재조정하겠다'는 문구도 동일하고 '규모화를 촉진하겠다'는 단어도 같다. '농가유형별 차별화된' 정책지원을 하겠다는 것도 같다. 이를 위해 그때는 '농가대장'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농가등록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한국에서 농업개방을 통한 경쟁력 강화론이 대두된 것은 전두환 정권 때이다. 그 시기가 미국 농업이 생산과잉과 수출감소로 미증유의 위기를 겪은 때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한국의 지배세력의 대책은 20년이나 낡은 것이다.

필자는 2004년에 출판된 졸저 < WTO 시대의 농업통상법 >에서 농업을 WTO에 맡길 수 없으며, 한국 농업의 특장점을 담을 수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식료체계의 마련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농업담당 세력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농업인들이 소비자의 변화에 맞추어 농업자원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하다.

문제는 한미FTA가 바로 이러한 질적 전환에 결정적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농업의 이익과 어긋나는 미국식 식료체계를 이식시킬 뿐만 아니라, 이미 1994년을 기준으로 단위 면적당 약 55배 정도가 싼 미국 농지와의 경쟁에 한국 농지를 전면 노출시킴으로써 아예 한국 농지의 농업자원으로서의 의의를 전면 부정하기 때문이다.(수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의함)

한국은 집안 대들보를 찍어 FTA 불을 때고 있다. 옆집 일본이 놀라는 모습을 내심 즐기고 있다. 중국이, 유럽이 불을 쬐려 달려들자 우쭐대고 있다. 과연 누가 바보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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