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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를 끌어온 한미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협상 타결내용을 각 분야별, 쟁점별로 진단할 예정입니다. 다섯번째 진단대상은 '농업'입니다. 이와 관련해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가 보내온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이 글은 두번째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애마부인> 시리즈가 유행했을 때 대통령은 전두환씨였던 것 같다. 만일 전두환씨가 애마부인 후속편을 당시의 공연윤리위원회 심사에서 통과시켜 주겠다고 영화사 사장에게 구두로 약속했다면 이를 적절한 권한행사로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대통령제 국가라 하더라도 대통령은 '법령에 의해서'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 감독해야 한다(정부조직법 제11조 제1항). 헌법재판소는 2004년에, 헌법이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 책무를 지우고 있음을 근거로, 대통령이 법치와 준법의 상징이라는 것이 한국 헌법의 정신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 쇠고기 수입 구두 약속은 부적절

▲ 지난해 미국산 수입쇠고기 검역설명회 당시 수의과학검역원 관계자가 냉동창고에서 미국산 수입쇠고기 박스를 들고 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도 당연히 법령에 의해서 관계 장관을 지휘 감독해야 한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상, 쇠고기의 살과 뼈는 '지정 검역물', 곧 수출입검역대상물건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수입위생 조건을 농림부 장관이 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20명 이내의 축산 또는 수의 관련 분야의 전문가 등으로 가축방역협의회를 구성하여 농림부 장관의 자문에 응하도록 하였다. 협의회는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농림부 고시에는 수입검역대상물건에 대한 수입을 위한 수입위험분석은 총 8단계로 진행되도록 정해져 있다(수입허용가능성 검토→수출국 정부에 가축위생설문서 송부→가축위생설문서에 대한 답변서 검토→가축위생실태 현지조사→수입허용여부 결정→수출국과 동물 또는 축산물 수입위생 조건 협의→수입위생조건 제정·고시→수출작업장 승인 및 검역증명서 서식협의). 농림부 장관이 작년 3월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정하면서 미국산 살코기의 수입을 전면 허용한 것은 이와 같은 여러 법령상의 절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위하여 부시 대통령에게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관해 한국이 성실히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점, 협상에 있어서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권고를 존중하여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구두 약속으로 확인해 주었다.

물론 한미FTA는 국가중대사이고,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그 성사를 위해 그 정도의 구두약속은 미국 대통령에게 해 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구두 약속의 내용과 의미이다.

이를 검토하기 전에, 한미FTA와 같은 통상 문제라는 이유로 대통령이 법률을 어겨도 된다는 법리는 없음을 미리 짚고 가자. 대법원은 2004년에,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북 송금을 처벌하면서 어떠한 국가행위나 국가작용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그 테두리 안에서 합헌적 합법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도 2002년,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 판결에서 통상정책에 대한 중앙행정기관장의 판단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무역위원회의 주장을 물리쳤다.

수입위생조건 변경은 가축방역협의회-농림부장관 거쳐야

▲ 현행 수입위생조건은 농림부 장관이 가축방역협의회 자문을 거쳐 정한 것이다. 사진은 박홍수 농림부 장관.
ⓒ 오마이뉴스 남소연
노 대통령의 구두 약속은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미국과 성실히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런데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협정(SPS)상, 미국은 현재 한국의 위생검역조건에 대한 '협의'(consultation)를 요청할 수는 있다. 이 경우 한국은 미국에게 협의를 위한 적절한 기회(adequate opportunity)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이를 넘어 성실히 '협상'에 임하겠다고 약속했다. '협상'은 '협의'와는 다르며 한국의 현행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변경이 가능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확인했듯이, 수입위생조건의 변경이 필요한지 여부는 가축방역협의회의 의결과 농림부 장관의 결정에 달린 문제이다. 대통령이 그 변경을 미리 대외적으로 약속할 수는 없다.

노 대통령의 구두 약속에서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미국과 협상을 하는 데 있어서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를 존중하여'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구두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국제수역사무국'이란 국제 동물질병 사무국이란 뜻으로서, 'OIE'라는 국제기구의 일본식 번역이다. 이 용어는 기실 한국에서 매우 낯설었고, 심지어 이 단어를 아직도 국제'무'역사무국의 오타로 여기는 기자들이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생경한 단어가 이토록 영향력이 크게 된 뒤에는 미국 축산업이 있다.

미국의 축산업은 2003년에 광우병 발생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미국은 국제수역사무국이 권고(가이드라인)를 개정하여 광우병 발생국이라도 뼈가 없는 살코기는 일정 조건에서 수출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비록 미국의 노력은 2004년 총회에서는 좌절되었지만, 2005년 6월에는 마침내 성공했다.(한국은 2004년과 2005년 모두 미국의 시도에 맞서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의 축산업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을 새 가이드라인에서 광우병 위험 미결정 등급(undetermined risk status)에서 관리 등급(controlled risk status)으로 끌어올리려고 나섰다. 미국 축산업의 이러한 시도는 한미FTA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 지난 1월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미국산 수입쇠고기 상징물을 불태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이 이러한 수를 정확히 읽지 못한 채, 한미FTA의 선결조건으로 서둘러 미국의 쇠고기 살코기 수입을 허용하여 주자, 미국의 축산업자들은 살코기를 수출하기는커녕, 한국의 위생조건 변경을 요구하며 선적을 집단적으로 중단하며 한국을 압박하였다.

그리고 7인의 위원으로 된 국제수역사무국 과학위원회가 지난 3월 초에 미국, 캐나다, 대만, 브라질, 스위스, 칠레에게 광우병 위험 관리등급을 부여할 수 있다는 내용의 평가서를 제출하자, 더욱 고무되어 오는 5월, 국제수역사무국 총회에서 미국의 광우병 위험 등급의 상향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의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관리등급을 부여받을 경우 쇠고기에서 척추뼈, 머리뼈, 뇌 등 특정위험물질을 제외하면 수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미국 축산업자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갈비뼈의 수출이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를 '존중하여'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시 대통령에게 구두 약속으로 확인해 준 것이다. 그 의미에 대해 미국측 협상 대표였던 바티아(Bhatia)는 한국이 국제수역사무국의 표준을 준수(complying with OIE standards)하기로 약속했다고 해석했다.

물론 이러한 미국의 해석을 우리가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현행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하고 그 조건을 완화하여 어떤 형태로든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허용 범위를 더 늘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새길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행 위생검역협정과 친하지 않은 '존중'의 의미이다.

구두 약속은 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 소지

▲ 한미FTA 최종협상 도중 농산물 관련 협상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민동석 농림부 통상정책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렇다면 이러한 노 대통령의 구두 약속은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현행 수입위생조건은 2005년에 3차에 걸친 한ㆍ미 광우병 전문가 협의회 개최 및 미국 현지조사, 그리고 두 차례의 가축방역협의회의 논의를 거쳐, 한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필요한 수준에서 농림부 장관이 결정한 것이다.

각 나라는 고유한 풍토와 식생활을 가지고 있다. 한국처럼 소뼈를 고아 먹는 민족에게는 그에 적합한 위생검역기준이 필요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협정은 국제수역사무국의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회원국 간의 조화를 도모하되, 회원국에 대해 자국민 건강과 생명의 적정 보호 수준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시하였다.(without requiring Members to change their appropriate level of protection.)

또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경우,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보다 더 높은 보호 수준(higher level of sanitary or phytosanitary protection)을 설정할 권리를 부여하였다. 또한 1997년의 WTO 판례는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 아니며, 예외적으로만 그보다 엄격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원국은 자국의 독자적인 조치를 취할 자율권(autonomous right)을 가지고 있다고 판정하였다.

따라서 농림부의 가축방역협의회 자문을 거쳐 농림부 장관이 정한 현행 수입위생조건이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한국은 이를 국제수역사무국의 5월 총회를 이유로 변경해야 할 하등의 통상법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일찍이 농림부는 작년 3월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하지 않았는가?

더욱이 앞에서 말한 최근의 국제수역사무국 과학위원회의 평가서는, 미국에 대해 광우병 감염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원료가 동물용 사료로 이용되고, 광우병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동물용 사료에서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는 데에 주의 깊게 검토해야만 한다고 하였고, 또한 2006년의 사료규제조건이 어떻게 관리되고 점검되는지에 대한 조사자료 보고를 요구하였다.

대통령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약속은 현행 수입위생조건의 변경을 약속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부적절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태그:#한미FTA, #미국쇠고기, #수입,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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