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년여를 끌어온 한미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협상 타결내용을 각 분야별, 쟁점별로 진단할 예정입니다. 두번째 진단대상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입니다. 이와 관련 최재천 의원이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주>
▲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국가 이익이 반영되도록 문구를 잘 짜넣을 수 있다."(스티븐 테디, 오스트레일리아의 미국과의 FTA 협상 수석대표)

"법적 정의를 엄격히 해봐야 그걸 뒤바꾸는 것을 업으로 삼는 투자자측 변호사들 앞에는 무용지물이다. 그들은 돈만 주면 흑을 백이라고 우기면서 소송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며, 종종 흑이 백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키고 만다."(스티븐 콘로이, 오스트레일리아 의회 의원)


우리사회의 논쟁도 이와 유사했다. 필자 등은 우리 헌법이 특별히 규정하고 있는 제7장 경제질서 조항 등을 들며, 위헌적 제도의 도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첫 협상에서부터 미국의 이 제도의 수용을 먼저 요구했다. 비판이 시작되자 2차 협상 이후부터는 수용관련 분쟁은 국제 중제가 아닌, 우리 사법부에 맡기는 쪽으로 협상 중이라 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2006년 8월 말경에야 전문가 TF를 구성했다. 이때쯤은 법무부와 건설교통부조차도 위헌 소지를 지적하고 있었다. 같은 해 9월, 3차 협상 이후부터는 간접수용 예외 대상에 부동산·조세·반독점 정책 등을 넣어달라고 협상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 측이 양보할 가능성이 있었겠는가? 그러자 정부는 6차 협상에서는 미국 측에 대해서 '굴욕적으로' 부동산·조세 정책만이라도 간접수용에서 예외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 한미FTA 협상을 진행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사진)과 김종훈 수석대표는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해서 한미FTA 협상 타결 내용을 보고한 뒤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협상단은 이해하고 있었을까

결국 제도는 도입되는 것으로 타결됐다. 하지만 그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정부도 모른다. 국회도 모른다. 필자가 보기에는 협상단도 구체적 내용에 대한 이해가 전혀 돼있지 않은 것 같다. 왜냐고? 아래의 공식 문서를 보면 그렇다.

먼저 4월 2일 오후 4시 경 발표된 정부의 공식 보도자료이다.

"간접수용의 판정 기준을 명확히 제공하고, 공중보건·환경·안전·부동산 가격안정화 정책 등 정당한 정부정책은 원칙적으로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함으로써 정당한 정부규제 권한을 확보하였고, 조세정책은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음을 명확히 하였다."

4월 3일 밤 11시 경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들이 받은 외교통상부의 대국회 보고자료이다.

"건강·환경·안전·부동산 정책·조세 등은 간접수용에서 원칙적 제외"

4월 4일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배포된 '한미 FTA 분야별 최종 협상 결과'이다.

"…부동산 가격안정화정책 등 공공복지를 위한 정당한 정부정책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정책 등 우리의 부동산 가격안정화 정책은 원칙적으로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않음을 명기…또한 조세정책에 대한 별도의 부속서를 두어 세금부과는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음을 명시"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필자조차도 어떤 것이 정부의 공식 협상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축약이라고 하기에는 세 문건 모두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셋 중 하나다. 아직 협정문과 부속서에 대한 실무작업이 현재 진행형일 가능성, 비판론자를 의식한 나머지 진실을 가리기에 급급한 '통상독재관료'들의 일관성 있는 행태. 문안 형식만 예외일 뿐 미 측의 입장을 전면적으로 수용했을 가능성 등이다.

세 가지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한 정부측의 반론을 기대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도입... 사실상의 헌법 개정

▲ 지난 1월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부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문을 여시면 부자됩니다'라는 홍보문구가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현재까지 발표된 협정문안을 종합하여 해석해보자.

첫째,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의 절차는 도입됐다. 이 부분은 필자나 정부가 차이가 없다.

둘째, 이로써 우리 헌법에 대한 사실상의 개정 작업이 진행된 셈이다. 간접수용 개념 자체를 우리 헌법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접수용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5조에서 출발하고 있는 개념이다. 우리에게는 직접수용에 대한 보상만이 가능했다. 이로써 우리는 헌법 제23조를 개정하고 말았다.

셋째, 정부 발표는 간접수용의 범위를 축소했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이 부분은 사실상 실효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정부는 부동산 정책과 조세 정책을 예외로 하겠다고 공언해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발표내용은 '부동산에 대한 모든 정책'이 아닌, '부동산 가격안정화 정책'이다. 그것도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정책 등 우리의 부동산 가격안정화 정책"이라는 제한적 예시가 삽입된다.

정부는 부동산 정책과 조세정책에 대한 규제권한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의 해석으로는 정반대이다. 지극히 일부를 제외한 정부정책, 특히 부동산정책은 모두가 소송의 대상이다. 우리 정부는 이제 금리 정책을 제외하고는 8ㆍ31대책 등과 같은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정책적 재량권이 없어졌다. 미국 헌법은 경제질서에 대한 정부의 개입권한이 규정돼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무려 아홉 개 조항에 걸쳐 정부의 개입을 합헌화하거나 적극 장려한다. 사회경제적 시장경제질서를 우리의 헌법질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뉴딜 정책은 1년 만에 모두 위헌결정이 났지만 우리의 IMF 직후 부실기업 처리와 관련한 '빅딜 정책'은 아무도 위헌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넷째 법률가인 필자로서도 해석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일부 문건을 보면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은 '원칙적' 제외로, 조세정책에 대한 '일반적' 제외로 각기 별개의 개념을 사용한다. 협정문과 부속서가 공개돼야 만이 정확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

정부 부동산 정책... 투기꾼들의 소송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

▲ 지난해 12월 15일 열렸던 열린우리당 당정협의회.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건교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분양가 인하,분양원가 공개, 세제, 청약제도 등 부동산 정책의 전반에 대해 논의했다. 권오규 부총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결론은 이렇다. 조세 정책은 일반적 예외라고 치자. 조세 주권조차 확보하고 있지 못하는 나라가 도대체 나라인가?

조세 주권은 정부의 예결산 주권을 의미하는 것이고 정부의 재정 주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일반적 예외라는 제한규정을 두어야 했다. 누가 승자인지는 뻔하다.

대한민국은 헌법 122조에서 토지공개념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이다. 좁은 땅, 많은 인구, 농경사회 특유의 토지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된 사용 개념이 아닌 소유 개념. 따라서 부동산 정책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한 우리사회 최고의 모순이고 정부가 공익적 개념에서 정당한 규제를 행사해야 할 꼭 필요한 정책 부문이다.

그런데 사실상 저소득층에 대한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모든 부동산 정책이 투자자들의 소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외국 투자자와 국내 부동산 투기꾼의 합작 사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것이 우리 협상팀이 성과라고 자랑하는 협상내용의 '현재까지'의 진실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를 도입하지 않았다. 대륙법계의 전통을 가진 우리와는 달리 같은 영미법계 국가라서 법과 제도의 충돌이 거의 없을 텐데도 그랬다. 같은 영미법계 국가라서 더 그랬다.

제도의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업부문의 결정적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농업부문도 결정적으로 희생시키고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1995년 우리는 '세계무역기구 협정의 이행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한 적이 있다. '국내법 우선' 원칙이 없어 허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경제주권의 보장'이라는 조항 정도는 넣고 있었다.

"협정의 어느 조항도 세계자유무역체제의 일원으로서의 우리나라의 정당한 경제적 권익을 침해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현재, 우리의 국력은 선언적으로나마 '경제주권의 보장'이 힘들 정도로 퇴락했는가?

태그:#한미FTA, #부동산, #투자자-국가소송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