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박노정 전 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 오마이뉴스 윤성효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10년 넘게 친일화가의 그림을 뜯어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법원에서 그런 동기와 과정들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범죄와 같이 다뤘다는 점이 유감스럽다. 전체가 모여서 결정하겠지만,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장 유치로 대신한다는 각오다."

진주성 안 의기사에 있던 친일화가(김은호) 작품 '미인도 논개'(복사본·일명 논개영정)를 떼어내 건조물 침입과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15일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박노정(57) 전 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가 한 말이다. 박 전 공동대표는 16일 오후 진주에서 기자를 만나 대법원 판결 등에 대한 소감 등을 밝혔다.

50여개 단체로 구성된 독도수호 진주시민운동본부는 2005년 5월 10일 의기사에 걸려있던 논개영정을 강제로 떼어냈다. 논개영정은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데다 고증도 엉터리라는 사실이 알려져 1990년대 초부터 진주에서 떼어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박 전 공동대표와 하정우 민주노동당 진주시당 위원장, 유재수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정유근 전 공무원노조 진주지부장은 지난해 10월 창원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강구욱 부장판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15일 이들 4명이 낸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당에 보관 중이던 공용물건인 논개영정을 적법한 권한 없이 강제철거할 목적으로 들어간 사실은 건조물 침입죄에 해당하고, 유리보관함 등을 훼손한 것 역시 공용물건 손상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박 전 공동대표 등은 유리를 깬 사실은 인정하지만, 논개영정은 문화재 등으로 지정되지도 않았기에 주거침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친일화가의 논개영정을 뜯어내 벌금을 선고받자, 벌금을 납부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벌금을 낼 수 없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조만간 이들은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논의해 벌금 납부 여부를 확정지을 예정이다.

벌금은 대개 판결문이 도착한지 1개월 안에 내야하며, 이를 어길 경우 수배자 신분이 된다. 이들이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장에 유치될 경우 하루 5만원의 일당에 해당돼 100일 동안 구속돼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지난해 1심 판결 이후 재판 비용 마련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당시 600여만원이 모였는데, 2심 변호사 비용 등으로 충당하고 현재 200여만원이 남아 있다.

이들의 벌금형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모금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전 공동대표가 소속돼 있는 화요문학회 회원들이 130여만원을 모았으며, 지역에서는 모금운동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 박노정씨가 2005년 5월 10일 의기사에서 논개영정을 뜯어낸 뒤 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 앞에 영정을 세워 두고 고유문을 낭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아래는 박 전 공동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먼저 대법원 판결인 만큼 존중한다. 그러나 유감스럽다. 우리가 10년 넘게 주장해온 것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한 동기와 과정들이 있었을 것인데, 그런 것들이 판결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일반 범죄와는 다르지 않느냐. 특히 검찰 수사 때부터 공무원이었던 정유근 전 지부장에 초점이 맞추어진 측면이 있다고 본다. 지난해 공무원노조는 인사로 경남도와 갈등 상태였다.

정유근 전 지부장은 50여개 단체 대표자 가운데 한 명이었지, 영정을 뜯어내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무원노조 지부장이라는 차원에서 조사하고 처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항소심 때 변호사는 그 문제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벌금을 더 높였다. 대법원도 그렇게 판결한 것이어서 유감이다. 더구나 주거침입은 수긍하기 힘들다. 과정과 동기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 벌금을 납부할 것인지?
"벌금이 500만원인데 4명 대부분 개인적으로 부담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벌금을 대신하는 방법으로 노역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4명 모두 같은 처지라 보면 된다. 아직 다 모여서 결정한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 노역장에 유치될 경우 대법원의 판결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을지?
"노역장 유치를 각오하고 있다. 100%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럴 경우 대법원에 대한 불만보다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쉽지 않은 금액이기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닌데, 개인이 부담할 수 없다. 대법원과 관계없이 현실이 벌금을 낼 수 없기에 벌금 대신에 노역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 전 지부장을 포함해 4명 대부분 지금 특별한 벌이가 없다. 돈이 없으니 들어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 지역에서 벌금 납부를 위한 모금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오늘 택시를 타고 오는데 기사가 알아보더라. 그 택시기사는 택시비도 받지 않았다. 그 기사는 혹시 모금운동을 하면 동참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히더라. 일반시민들이 논개영정 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개인문제가 아니다. 지역에서 모금운동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앞장서서 유도할 생각은 없다. 벌써부터 개인적으로 모금운동 의사를 밝히는 사람과 단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1심 재판이 끝난 뒤 모금운동이 일어나 600여만원을 모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다."

- 친일화가가 그린 논개영정을 뜯어낸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모두 개인의 욕심으로 이 일에 나선 게 아니다. 논개영정을 뜯어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난 뒤, 전국적으로 친일화가가 그리거나 잘못된 영정에 대한 문제가 많이 불거졌고, 진주에서 강제로라도 뜯어내 다른 지역에서 문제가 있는 영정을 해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느냐.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기여했다고 본다."

- 해당 자치단체에서 잘못된 영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렇다. 논개영정만 해도 문제가 제기된 게 벌써 10년은 넘는다. 그동안 줄기차게 시민사회에서 영정을 바꾸자고 요구해 왔지만 진주시와 시의회는 소극적인 자세였다. 그런 문제는 진주뿐만 아니라 다른 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손해를 보고, 많은 힘이 소진되고 있는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오히려 외국에서 증언들이 나오고 있지 않느냐. 지금이라도 자치단체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 '표준논개영정' 제작이 추진되는 것 같던데?
"2005년 5월 논개영정을 뜯어낸 게 계기가 돼 표준영정을 제작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논개의 출신지인 전북 장수군과 순국지인 경남 진주시가 같이 표준영정을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전국공모를 거쳐 작가(윤여환 충남대 교수)까지 선정해 놓았고, 거의 제작 마무리 단계에 들어왔다.

표준영정 제작 사업은 영호남의 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해 동서화합을 이끌어내는 데도 기여했다. 친일화가가 그린 엉터리 영정을 뜯어내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소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 할지라도, 법원에서 이런 점들을 인정하면서 판결했어야 했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지역에 보면 일제잔재가 많다. 끊임없이 친일이나 일재잔재를 뿌리 뽑는 일에 나설 것이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