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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금 오전에 방송되는 KBS <바른말 고운말>
ⓒ 화면캡쳐
지상파(KBS, MBC, SBS) 방송 시간은 하루 20시간. 케이블방송은 시간과 관계없이 어느 때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시대. 각 방송사는 이 순간에도 한 사람이라도 더 TV 앞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청률 전쟁은 가히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시청률에 따라 프로그램이 사라지기도 하고 붙박이가 되기도 하는 시점에서 시청자들의 의견이 어느 때보다 파괴력을 가진 것 또한 사실이다. 이즈음에서 시청자들은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각 방송사에서 내어놓은 프로그램을 좇기만 할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이끄는 진행자나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송용어가 적절한지 등에 대해 냉정하게 지켜보고 비판할 것이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 그것이 거꾸로 가는 시계를 올바르게 되돌리는 길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방송을 보면 귀에 거슬리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오락프로그램이나 교양프로그램이나 심지어 뉴스 시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바른 말을 써야하는 아나운서나 방송인, 뉴스 인터뷰를 하는 사람 등 그 언어를 쓰지 않은 이가 없다.

그 언어라는 게 이젠 일상화 되었다. 그 언어를 쓰지 않으면 언어구사가 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따라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지 유행처럼 쓴다.

그 언어는 '너무'와 '것 같아요~'이다. '너무'는 그 정도가 지나쳐 '너무너무'라고 어깨를 으쓱이면서까지 쓰기도 한다. 두 가지 언어를 중심으로 방송사들의 잘못된 말 습관을 지적해보자.

'한계가 정도에 지나게, 분에 넘게'란 뜻의 '너무'

'너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부사로서 '한계가 정도에 지나게, 분에 넘게'이다. 그러니까 정도에 지나치거나 분에 넘치는 경우 등에 쓰는 부정의 의미인 것이다. '너무'란 말이 제대로 쓰일 곳은 예를 들어 "넌 너무해"라고 쓰이거나 "너무 아프다" 또는 "너무 힘들어", "너무 모라자", "너무 멀어", "너무 비싸다", "너무 어렵다", "너무 괴롭다" 등이다.

"이 옷은 너무 비싸"라고 하면 '옷의 품질이나 상태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뜻이 된다. 이럴 때의 '너무'는 적절한 표현이다.

이렇게 '너무'란 말이 부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요즘엔 아무 곳에나 붙인다. 긍정적 의미, 부정적 의미를 가리지 않는다. 그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KBS의 프로그램 중 '도전 골든벨'이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인데 진행자가 장기자랑을 한 학생을 향해 "이 친구 너무 잘했죠?"라며 박수와 호응을 유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잘못된 표현이다.

'너무 잘하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 일에 대해 잘하는 정도가 지나쳐 싫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진행자는 '이 친구 춤 솜씨가 대단한 게 싫죠?'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잘해 질투가 났을 때 쓰이는 표현인데 긍정의 의미로 사용된 예가 된다.

부정의 의미로 쓰여야 할 '너무'란 말이 긍정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너무 기뻐", "너무 좋아", "너무 귀여워", "너무 사랑해", "너무 예뻐", "너무 시원해", "너무 행복해" 등이다. 그야말로 '너무'라는 말이 격에 어울리지 않는 곳에 '너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표현인 '너무너무'

'너무'란 말도 성이 차지 않는 세상인 모양이다. 하여 사람들은 <너무너무>를 외친다. 이런 경우 말하는 사람의 억양은 보통 때보다 높아진다.

"너무너무 사랑해."

사랑한다는 표현을 지나치게 하다보니 과장의 의미까지 달고 간다. 대체 너무너무 사랑한다니. 말도 안 되는 표현이다. 물론 상대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자신이 싫다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상대를 간곡하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일 것인데, 이런 식의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차라리 '널 정말 사랑해' 라던가 '널 많이 사랑해'라고 해야 한다. '너무'라는 말이 자주 쓰이다 보니 '참', '매우', '굉장히', '정말' 등의 말이 사전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모든 사람이 이런 사실을 알면서 '너무너무'를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런 표현을 자주 쓰니 그 말이 맞는 것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다.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임 회피성 또는 면책성 표현인 '것 같아요~'

@BRI@'같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다르지 않다'와 '~같으면', '추측이나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는 말' 등이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같아요'는 추측이나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는 말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비가 올 것 같네' 라고 하면 '같다'가 올바르게 쓰이는 것이지만, '멋있는 것 같아요'라고 하면 잘못된 표현이 된다. 본인의 생각이나 판단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것 같아요~'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책임 회피성 또는 면책성 표현에 불과하다.

이러한 표현은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배 고픈 것 같아요', '배 부른 것 같아요', '괴로운 것 같아요', '저 오늘 아픈 것 같아요', '내일 못 갈 것 같아요' 등이다. 심지어는 '당신이 떠나면 많이 괴로울 것 같아요'라고도 한다.

이런 표현을 들을 때면 '그래서 어쩔 건데?'라고 되묻고 싶거나 '너 생각을 분명하게 밝혀'라고 지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선생님, 영수가 많이 아픈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 된 표현이다. 상대의 아픈 정도를 짐작할 수 없기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맞다.

상대와 대화를 할 때 본인의 생각이나 판단을 상대에게 알리는 표현이 추측이거나 불확실하다면 언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된다.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듯 발 하나를 슬쩍 뒤로 빼 놓은 상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너무너무'와 '것 같아요~'의 남발이 문제

어느 방송이라고 할 것 없이 뉴스를 잘 들어보면 현장에서 인터뷰한 내용이 흘러나오는데, 그 내용이 가관도 아니다. 열이면 열, '너무너무'와 '것 같아요~'를 사용하여 듣기 괴로울 때가 많다.

"여기 오시니까 어때요?"
"너무너무 멋지구요, 아름다운 것 같아요!"


대체 너무너무 멋진 것은 무슨 뜻이고, 아름다운 것 같은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이런 인터뷰 내용을 안방으로 내보내는 방송사들은 언어에 대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그 정도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바른말 고운말>이란 프로그램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송하는 KBS라고 다르지 않다. 한쪽에선 바른 말을 찾아 쓰라고 하고, 한쪽에선 잘못된 표현을 내보내는 행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적어도 인터뷰를 할 때 일반인이 '너무너무'와 '것 같아요~' 남발하면 언어에 대한 잘못됨을 알린 후 다시 인터뷰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뉴스뿐 아니다. 오락프로그램이나 교양프로그램이나 어느 프로그램을 막론하고 '너무너무'와 '것 같아요~'가 '너무' 많이 쓰인다. 말장난처럼 이어지는 오락프로그램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아이들이 그 방송을 보면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생각해 본다면 방송사측에서 나서서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게 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 자기주장은 강한 반면 자신의 생각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습니다. 어떤 말을 세상에 던졌을 때 그 말에 대한 파장을 미리 염려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당당하게 '이렇다'라고 주장하지 못하는 겁니다. 일종의 책임회피인 셈이죠. 토론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의 생각이나 판단이 정당하다고 말은 하지만 단정 짓지는 않거든요. 최소한 면피는 해놓고 보자는 속셈이 깔려있다고 봅니다."

소장학자 박정수(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토론문화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일상적 용어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는 어법도 한발 뒤로 빼는 토론문화라는 것이다.

흔히 요즘을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당장의 앞날이 어찌 돌아갈지 모르는 세상이라 그런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쉽게 단정 지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때 일수록 방송사측의 올바른 시대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부터라도 방송에서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것 같아요"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을 듣지 않았으면 한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방송인들도 호들갑스럽게 '너무너무'와 '것 같아요~'를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방송을 보면서 들려오는 말들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TV리뷰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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