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5일 오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특전사령부대장으로 치러진 고 윤장호 하사의 영결식에서 김장수 국방부장관이 헌화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망설여진다. 좀 더 쉬운 소재를 찾아보자는 '유혹'이 크다. 딱 떨어지는 '한꼭지'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상일이 그렇듯이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정답이 없으면 또 정답이 없는 대로 살펴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런 곡절을 거치다보면 불현듯 답답한 시야가 환히 트일 수도 있을 테니까.

<조선일보> 유용원 전문기자의 칼럼 '윤 하사의 죽음을 헛되이 않으려면'에 자꾸 눈길이 간 이유는 그의 칼럼이 '실용적 관점'에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윤장호 하사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점화된 파병 철군 논란의 대부분은 원칙론에 입각해 전개됐다.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왜 젊은 우리 장병들이 희생돼야 하느냐면서 즉각적인 철군을 주장하는 목소리와 윤 하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테러위협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파병 원칙에는 한 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유용원 기자의 칼럼 또한 결론적으로는 테러위협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쪽이다. 그러나 그 접근방법은 '군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실익을 찾자는 데 있다.

군사전문기자답게 유용원 기자는 파병에 따른 여러 위험 요소들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에 근무했던 한 전역자가 일부 언론을 통해 밝힌 것처럼 이들 파병부대원들의 전장 스트레스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유용원 기자의 '칼럼'에 주목한 이유

▲ 유용원 기자의 <윤 하사의 죽음을 헛되이 않으려면>
ⓒ 조선PDF
쿠웨이트에서 자이툰 부대와 동맹군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공군 수송지원단인 다이만 부대원들조차 "입산수도가 아니라 입사수도(入沙修道)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 전투지역에서 "보통 3개월이 지나면 매우 답답해하거나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 총기 사고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해외 파병부대 지휘관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다. "해외 파병 한국군들이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유 기자는 이 같은 위험요소를 인정하면서도 "왜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윤 하사의 전사와 같은 희생을 치러가면서 해외에 우리 군을 내보내야 하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한미동맹 등 우방국과의 동맹관계, 세계 10 경제대국의 지위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배출 등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국제역할 확대" 등이 명분일 수 있지만 유 기자가 주목한 점은 '군사적인 측면'이다. "우리 군의 병력과 장비를 먼 곳에 보내서 유지·관리하는 경험을 갖게"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소득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구체적인 논거를 따라가 보자.

"2004년 9월 자이툰 부대가 '파발마 작전'을 통해 수많은 장비를 아르빌까지 이동시킨 뒤 지금까지 2300~3600여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도 창군 이래 처음 갖는 소중한 경험이다. 우리가 언제 1000명이 넘는 병력과 수백 대의 장비를 1만km나 떨어진 곳까지 우리 힘으로 수송하고 먹이고 재운 적이 있는가? 이런 노하우와 능력은 어느 우방국도 잘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울 수밖에 없고, 유사시 활동 중인 우리 국민들이 위난에 처했을 때 우리 손으로 구출할 수 있는 길도 열러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칼럼의 결론은 이렇다.

"파병에 따른 위험부담과 희생을 최소화하는 데 최우선 순위가 두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테러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해외 파병의 장점을 살려가는 것이야말로…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 아닐까."

말할 나위 없이 해외 파병 여부나, 그 지속 여부를 '군사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유 기자의 관점처럼 '군사적'으로만 판단한다면 해외파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요소는 해외파병에서 어디까지나 여러 가지 '종속변수'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또 실제로도 그렇다. 어떻든 '군사적 측면'에 국한해서 쓴 칼럼이니 만큼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 수준에서 접자.

우리는 파병으로 무엇을 얻었나

굳이 오늘 그의 칼럼에 주목한 점은 다른 데 있다. 파병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격렬한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또 앞길이 창창한 두 젊은 청년(2004년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살해된 김선일씨도 파병의 희생자다)을 희생시켜가면서 까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한 우리 사회가 정작 이 같은 사회적 비용과 희생을 치르면서 과연 무엇을 얻고 있는가 하는 점을 되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BRI@최소한 우리는 자국군의 파병을 통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를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미국과 영국을 축으로 한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국제적 논란을 통해 국제정치학에 대한 국민적 식견과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며, 이라크, 이란,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중동지역 분쟁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중동과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후 이라크의 새 정부 수립 과정이나 정파 간 대립과 갈등으로 결국 내전으로 치닫게 된 이라크의 '현실'은 곧 과거 해방과 분단으로 이어진 우리 현대사와 견주어 지구촌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실감나게 재조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산교육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정은 어떠한가? 물론 중동지역에 관한, 이라크 전쟁과 내전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나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일은 어디까지나 '강 건너 불구경' 수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남의 일'처럼 다루나?

그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언론의 책임이 크다. 한 원로 언론인은 이라크 파병 결정 직후 여전히 외신면에서 이라크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를 두고 "이라크 문제가 왜 외신으로 다뤄져야 하는가?"라고 언론계 후배들에게 반문한 적이 있다. 3천여 명이 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목숨'걸고 가 있는 그곳의 문제를 왜 '남의 일'처럼 다루고 있느냐는 준엄한 질책이기도 했다.

많은 언론들은 파병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언론들은 정작 우리 젊은이들이 가 있는 바로 그 현장으로 달려갈 생각은 별로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KBS 중동 특파원인 용태영 기자만 두바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언론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렵사리 파병까지 결정한 정부이지만 대통령이나 외교부장관이 나서 이라크 사태에 대해, 중동 정세에 대해 뭐라 딱 부러지게 '우리의 입장'을 피력한 것을 아직까지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있을 수 없는 잔혹한 고문행위가 드러났을 때도, 이라크가 안정을 찾아가기는커녕 내전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내로라하는 한국의 정치인 그 누구 하나 제대로 그 고문행위에 대해, 그리고 악화일로에 있는 이라크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발언한 것을 들을 기억이 없다.

유력시 되는 차기 대선 후보 주자들이 파병에 대해, 아니 파병 문제를 떠나서 이라크와 중동 사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너무 과도한 기대일까? 군사적 측면에서 '실용적'으로 접근한 유용원 기자의 칼럼에서 내내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의문들이 두서없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윤 하사의 죽음을 헛되이 않으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언론과 정치인들부터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입장으로 이 물음에 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태그:#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백병규, #미디어워치, #유용원, #윤장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