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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근의 언론 보도행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실 기사 담합 실태 조사하라."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곧 내용을 들여다보고는 차라리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복지부 장관한테 보고받을 때는 '국민건강증진계획'이라고 보고 받았습니다. 결국 국민의 건강이 경쟁력이고 그리고 아울러서 의료비를 절감하는 국가 예산 절감 정책이라는 기조 하에서 국민건강증진계획이라고 보고를 받았는데, 이게 어제 TV에 나올 때는 단지 그냥 '출산 비용 지원', '대선용 의심' 이런 수준으로 폄하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BRI@물론,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옳은 것도 있습니다. 가령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소위 특권과 유착, 반칙과 뒷거래의 구조를 청산하는 것인데, 여기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언론 집단"이라는 진단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 옳은 말조차 엉뚱하게 기자실 책임을 들먹이면서 훼손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방송사회자로 시청자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시사평론가를 국회의원을 거쳐 장관에 발탁하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장관의 정책에 기자들이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사실까지 거론하며 '기자실 실태 조사' 운운하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대통령의 판단력이 지금 어느 수준인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무회의에서 "여러분들께서, 특히 외교부장관에게 부탁"해 "각국의 대통령실과 각 부처의 기자실 운영 상태, 브리핑룸은 모든 기자가 다 올 수 있는 곳이지만 거기 그냥 몇몇 기자들이 앉아서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있는 것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고 보도자료들을 자기들이 가공하고 만들어 나가고 담합하고, 이와 같은 구조가 일반화되어 있는 것인지 조사해서 보고"해달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보십시오.

대체 대통령 비서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대통령이 총애하는 이병완 실장을 저는 언론현장에서 언론운동을 할 때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그가 대통령 임기 내내 홍보수석을 거쳐 비서실장을 하면서 언론개혁의 논리는 시나브로 궁색해갔습니다.

이병완 실장의 언론개혁 논리, 시나브로 궁색해갔다

대체 어쩌자는 걸까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고위 편집진들의 조롱이 들리지 않습니까? 마침내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출입처 제도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기자들이 정책을 바라보는 일정한 틀(frame)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일러 '몇몇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서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담합'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대통령이 그 문제로 외교부 장관에게까지 조사를 명하는 풍경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마침내 대통령이 지목한 "몇몇 기자들"이 소속된 신문사들은 사설로 대통령을 "무지"하다고 조소하며 신문법까지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이 참에 언론개혁운동을 펼쳐온 언론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명확히 해두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의제인 신자유주의와 한미자유무역협정 추진, 노동운동 탄압,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평택 첨단미군기지 건설에서 노 정권의 정책은 "몇몇 언론"과 똑같습니다. 언론개혁은 어느 정권, 어느 정치인을 위한 게 결코 아닙니다.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연결하려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언론개혁을 거론할 자격이 없습니다.

언론개혁의 순수성과 도덕성이 국민에게 의심받을 때, 아직 갈 길이 먼 언론개혁운동까지 자칫 미래가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노 정권이 앞으로 '언론개혁' 문제에 차라리 침묵하길 진지하게 권하는 까닭입니다.

언론과 공연히 소모적 '말다툼'을 벌일 시간이 있거든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참으로 우리의 살 길인가를 열린 마음으로 성찰하기 바랍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박차를 가하기 바랍니다.

태그:#언론관, #기자실, #기자실 담합, #언론개혁,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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