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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역에 정차하고 있는 천안행 전동열차. 1호선의 지연운행과 긴 배차간격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 김귀현
충남 천안에 사는 김희주(27)씨는 지난달 26일(일요일), 서울에서 지인들과 약속이 있어 가까운 천안역으로 향했다. 평소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던 김씨였지만, 이번에는 지난해년 1월 천안까지 연장된 1호선 전동열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하철을 이용한 김씨의 서울 나들이는 말 그대로 '곤욕'이었다.

우선 배차 간격에 놀랐다. 오후 2시, 서울로 향하는 열차는 1시간 동안 단 3개 차량뿐이었다. 한번 열차를 놓친 김씨는 찬 바람을 맞으며 20분을 기다린 뒤에야 열차에 올라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주말의 고속도로를 방불케 할 만큼 지하철은 지체와 서행을 반복했다. '열차운행 지연을 양해해 달라'는 방송이 수시로 흘렀다. 여유있게 출발한 김씨였지만, 결국 약속시간에 늦었다. 김씨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늦어서 미안해. 지하철이 너무 막히더라고."

막히는 지하철... 약속시간 지키려면 여유있게 출발하세요?

@BRI@지하철의 강점은 정체가 없다는 것. '약속시간 지키려면 지하철을 이용하세요'란 표어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표어는 지하로만 가는 '진짜 지하철'에만 해당된다.

경부선에 더부살이 하는 지하철 1호선(천안-수원-서울 구간)은 잦은 연착과 지연, 긴 배차간격 때문에 지하철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차를 피하기 위해, 혹은 열차 간격 조정을 위해 지하철 1호선에선 지체와 서행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수원에서 서울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 주민지(21)씨는 "열차 운행 시간표를 믿었다가 지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젠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항상 여유 시간을 두고 나온다"고 말했다.

긴 배차간격도 문제다. 주말이나 평일 낮에는 1시간에 3~5대 정도밖에 운행되지 않을 정도로 전동차를 구경하기가 힘들다. 출퇴근 시간에도 다른 2~8호선에 비해 배차 간격이 길다.

1호선(수원역)·2호선(신도림역)·5호선(까치산역) 운행 현황표에 따르면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수원역에서 20대, 신도림역에서 45대, 까치산역에서 36대의 열차가 운행된다. 즉 2호선이 2~3분에 1대싹 운행되고 5호선이 3~4분에 1대씩 운행되는 데 비해, 수원 방면에서 출발하는 1호선의 경우 6분에 1대 꼴로 운행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안양에 사는 회사원 김소영(26)씨는 "1호선엔 사람이 항상 많다"고 말하고 "천안까지 연장되면서 사람이 더 많아져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지옥과 다름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배차를 더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원역에서 서울역까지, 61분 맞나요?

▲ 수원역에서 서울역까지 61분. 과연 정확히 지켜질까?
ⓒ 김귀현
실제로 1호선 지하철 운행 시간이 지켜지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11월 20일(월요일)부터 24일(금요일)까지 5일간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봤다. 수원역에서 오전 7시부터 오전 7시 20분 사이에 출발하는 전동차를 이용했고, 경부선의 종착지인 지하 서울역까지 걸린 시간을 점검했다.

조사 기간 내내 많은 사람들이 수원역에서 전동차를 이용했다. 천안이나 병점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의 경우, 22일 하루를 제외하고 4일 동안 1~2분 정도 수원역에서 연착했다. 수원역에서 출발한지 10분 정도 지나 성균관대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지하철은 만원이 되었다.

안양역에 다다르자 서있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어찼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찬 바람이 들어와 냉방이 됐다가, 닫히면 사람들의 열기가 가득차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목욕탕에서 냉탕과 열탕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시흥역 부근에서는 5일 내내 정체 현상이 발생했다. KTX 열차 때문이라고 했다. 구로역에서도 인천에서 오는 열차 때문에 서행했다. 조사 기간 동안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예상소요시간(지하철 역사에 붙은 운행 시간표 참조)인 61분을 모두 초과했다. 연착과 서행으로 5일 평균 4.8분 지연됐다.

잠시 정차? 7분간 갇혀있는 고통을 아시나요

출근시간의 상행선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주말과 저녁때는 정체가 더 심했다. 지난 18일(토요일) 1호선 금정역에서 수원역까지 걸리는 시간을 조사했다. 출발역을 금정역으로 정한 이유는 4호선 환승역이기에 이용 승객이 많기 때문이다.

예상소요시간이 17분인 이 구간을 이날 오후부터 막차까지 모두 4번 이용했다.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큰 정체 현상이 벌어졌다. 수원역 직전에 화서역부터 정체가 시작되더니, 아예 멈춰 섰다. 그렇게 멈춘 시간은 무려 7분이었다.

'앞서가는 열차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잠시 정차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한 번 흘러 나왔고 승객들의 표정엔 짜증이 역력했다.

이날 만난 주부 문숙정(38)씨는 "예전에는 이렇게 멈추는 것에 짜증도 많이 났는데 이젠 만성이 돼서 괜찮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말했다. 문씨는 수원에서 10년 넘게 지하철을 이용했다고 한다.

금정역에서 기다린 1호선 막차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예정된 막차 시간보다 8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1호선을 기다리는 동안 4호선은 두 번이나 승객을 실어 날랐다.

막차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한국철도공사 관계자 A씨는 "막차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태워야 하기 때문에, 각 역마다 정차되는 시간이 길다"고 말하고 "정차시간이 적체되면서 종점 부근에는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다"고 지연 이유를 밝혔다.

천안-서울 급행열차도 '지각대장'

▲ 자정이 넘어서까지 운행되는 천안행 막차.
ⓒ 김귀현
승객을 빠르게 수송하기 위한 열차임을 내세우는 급행열차(천안-서울역, 천안-용산)도 출발 시간을 지키지 않아 승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 급행열차는 천안까지 1호선이 연장된 뒤 생긴 것이다.

한국철도공사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는 "용산에서 출발하는 천안행 급행열차는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시간이 5분 지연이고 보통 10분에서 20분씩 지연운행이 되고 있다, 각 역별 운행시간은 왜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등 열차 지연을 성토하는 글들이 매주 2~3건 이상씩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같은 게시판에서 "시간은 돈이며 약속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한 개인의 1분이 모이면 엄청난 시간이 됩니다, 만일 연착되면 충분히 이해가 가도록 안내방송이라도 해주십시오, 제발요"라고 촉구했다.

병점 아래에 있는 평택과 천안의 승객들도 불만이다. 하행선 열차는 천안 또는 병점까지 운행하는데, 천안행 열차가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는 것.

평택에 사는 한 시민도 같은 게시판에서 "천안행 차를 기다리면 20분 내지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보통 병점행 두 대 지나가고 일반 열차와 화물열차 한 대씩 통과하고 나서야 천안행 오더라, 이럴 거면 천안까지 전철 왜 만들었는가, 복선철도 건설한 비용이 아깝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한국철도공사 "선로 용량 한계... 현재로선 해결 방안 없다"

지하철 운행을 담당하는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4일 통화에서 "경인선의 경우 전동 열차만 운행하기 때문에 지연이 발생하지 않지만, 경부선의 경우 KTX를 비롯한 전 열차와 선로를 공유하기 때문에 지연이 발생한다"고 밝히고 "선로 용량상의 문제로 운행하는 전동열차 수가 적고 배차간격도 길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선로 용량이 한계에 도달해 배차 간격도 포화 상태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특히 시흥역 부근에서 지연사례가 많은데 이는 광명역에서 오는 KTX열차가 시흥역 부근에서 합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규정상 전동열차보다 KTX를 우선 취급하기 때문에 전동열차가 지연된다는 것. 철도공사에서는 현재 선로에서 열차가 경합할 경우 KTX·새마을호·무궁화호·급행전동열차 순으로 운전정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급행열차 지연에 대해서도 "KTX가 이용하는 경부1선을 급행열차가 이용한다"고 말하고 "급행열차가 지연되는 이유도 KTX와 선로를 같이 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연에 대해 민원이 많이 제기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지연을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은 선로 확장인데, 현재 선로 확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전동열차 편수를 줄이거나 기존 열차 편수를 줄이는 것만이 해결방안인데, 그렇게 할 경우 또한 더 큰 불편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하고 "지금은 마땅한 해결 방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지연이 되었을 경우 회복운전을 통해 최대한 지연시간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지하철 왕국' 일본은 어떨까
정시 도착... 자체 선로 확보 덕분

▲ JR 전동차 내부의 모습
ⓒ김귀현
지난 2월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때, JR(일본 국영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깜짝 놀랐다.

승강장에는 다음 열차가 어디 행인지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었다. 한국의 안내판과 비슷했지만, 그 안내판에는 열차의 도착 시간이 분 단위까지 정확히 적혀 있었고 신기하게도 그 시간에 정확히 전동차가 도착했다.

다음 열차도 정해진 시간에 오는지 기다려봤다. 역시 표시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다. 지하철 내부의 액정표시(LCD) 화면에도 각 역까지 걸리는 시간이 적혀 있었고, 그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다.

일본에 1년째 유학중인 김아무개(25)씨는 "일본의 전동차는 기차와 함께 선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예정 시간에 정확히 맞춰 도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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