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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우리의 할머니들을 시위 현장으로 오게 만들었을까요?
ⓒ 배만호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시위에 경남도민들도 함께 하였다. 각 시군, 면에서 버스를 타고 온 농민들은 창원시청 앞 광장에 모여 태어나 처음으로 ‘데모’란 것을 하였다.

데모를 남의 일처럼 듣고 살면서 농사만 짓고 살아온 사람들이 직접 데모 현장에 온 것이다. 시골의 작은 동네 주민이 몇 명만 빼고 다 온 곳도 있었고, 한 면에서 버스를 열 대가 넘게 타고 온 곳도 있었다.

▲ 농민들은 시위를 하기도 하지만 정겨운 잔치이기도 합니다. 각 지역에서 가져온 농산물을 나눠 먹으며 즐겁기도 하지요.
ⓒ 배만호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 온 한 이장은 3시간이나 걸려서 데모 현장에 온 이유를 “먹고 살기 위해서 왔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하동군 횡천면에서 온 농민은 “시골에 와서 현실을 보고 가라”는 말까지 하였다.

▲ 깃대를 꼭 잡은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저 할머니처럼 깃발을 잡고 있을 젊은이조차 없는 것이 우리농촌의 현실입니다.
ⓒ 배만호

농민들은 노동자들과는 달리 각 동네에서 이장들이 방송을 하고, 군의회 의장들이 외쳐서 모였다. 실제로 남해군, 하동군, 합천군, 거창군 의회에서는 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의결하였다.

▲ 문화공연을 하자 흥에 겨운 할머니는 춤을 추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전경들과 싸우는 데모를 모릅니다. 그냥 기분 좋은 자리일 뿐이지요.
ⓒ 배만호

하지만 농민들은 시위를 모른다. 농민들에게는 그냥 기분 좋은 행사이고, 술자리일 뿐이다. 풍악이 울리면 할머니는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 할아버지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소주잔을 비운다. 비워지는 술잔에는 술이 아닌 근심과 걱정만 가득 채워지고, 다시 마시기가 두려워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든다.

▲ 흥겨운 술자리입니다. 시위현장이 아닌 마을에서 이렇게 흥겨운 자리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배만호

농민들의 시위 현장에는 언제나 술이 따라 다닌다. 농민들의 일자리에도 언제나 술이 따라 다닌다. 농민들은 점심을 먹을 때도, 저녁을 먹을 때도 술이 있어야 한다. 이들의 타는 속을 잠시나마 식혀 줄 수 있는 것은 술뿐이다.

농민들은 살기 위해서 왔다. 단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왔다.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며 살았을 팔순 나이에 버스를 타고 데모하러 왔다. 과거 이장들은 아들이 데모를 하지 못하게 단속을 하였는데, 이장이 데모 현장에 가자고 방송하면서 함께 왔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듯이 그만큼 세상이 변한 것일까?

농촌 곳곳마다 ‘한미FTA 반대’라는 구호가 적힌 노란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차량마다 반대 구호가 적힌 작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농민들은 해마다 11월이 되면 농사일을 제쳐 두고 추운 날씨에 아스팔트로 모여든다. 이게 대한민국 농민들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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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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