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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을 쫓아다니며 신문구독을 권유하고 있다
ⓒ 민언련

"서울 00동 00마트 앞에서 서너명되는 아저씨들이 아주머니들에게 접근해 조선일보 불법 판촉을 하고 있어요. 빨리 현장으로 가보세요."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에 걸려온 한 통의 제보전화입니다.

제가 00마트 앞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 30분경. 민언련 간사가 먼저 그 장소에 나와서 불법 판촉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전화번호만 적어주세요. 나중에 아버님이 정 안 된다고 하시면 제가 내일 다시 회수하면 되니깐. 이거 제가 1개월치 대신 내드리고 연장시켜드리는 거예요."
"아이고. 괜찮아요. 제가 무턱대고 신청하면 아버지한테 혼나요. 그러지 말고 아저씨 연락처나 하나 주세요. 아버지가 괜찮다고 하시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민언련 간사는 결국 판촉원의 명함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 명함에는 <조선일보> 로고 밑에 'IS 실장 OOO'이라고 적혀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명함 밑에 <중앙일보> 로고가 찍힌 또다른 명함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아저씨는 판촉계의 '프리랜서'인 것 같았습니다.

민언련 간사와 마트 앞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데 그 아저씨가 다시 우리쪽으로 걸어오시더군요. 드디어 저와 아저씨의 '흥정'이 시작됐습니다.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8개월치 무료로 주는 거죠?"
"아. 그렇다니깐 그리고 상품권도 드릴게. 그렇지. 상품권은 쓰기 힘들 테니깐 현금으로 드릴까? 자, 여기 3만원. 주소가 어떻게 되우?"
"그냥 상품권으로 줘요. 그리고 OO아파트 OOO호요. 근데, 아저씨는 여기(00동) 지국에서 나오신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난 이거 한건 하면 2만원씩 받는 거지. 그런데 집에 어린 애도 있어? 있으면 '맛있는 한자'라도 드리는데…."
"예. 그것도 주세요. 제 조카 주면 되겠네."
"자 11월부터 12월, 1월… 6월까지 무료로 보시고 7월부터 수금 들어가는 거예요. 1년 구독하셔야 돼. 이사하신다고 그러시면 안 되고."
"1년 뒤에 바꾸고 싶으면 어떡해요? 만약 이사 간다거나 그러면?"
"아이구…. 그러면 안 되지. 혹시 학생이면 회사원이라고 그래요. 회사 쪽에서 학생이라 그러면 싫어하더라고. 그냥 이사 안 간다고, 회사원이라고 말해요."


갑자기 <조선일보>에 고마운 마음이...

아저씨와 흥정을 끝내고 나온 저의 손에는 1만원짜리 상품권 3장과 흥정 내역이 담긴 영수증이 들려 있었습니다.

민언련 간사에게 어떻게 신고하면 되는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정위가 조사해서 포상금이 나오기까지 5~6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신의 신고가 진행되는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접수번호를 적어놓고 기억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받은 불법 경품은 7개월 반, 약 8개월치 무료구독료에 상품권 3장, 무료 한자책. 이를 포함하면 100여만원 내외의 포상금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순간 <조선일보>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생기더군요.

민언련 간사와 현장에서 헤어진 뒤에도 저는 00마트 근방에서 판촉원들을 관찰했습니다. 그들의 '권유'를 받은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00마트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에서 커피캔을 만지작거리며 2시간 동안 판촉원들을 지켜보았습니다.

판촉원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3명이 교대로 행동하더군요. 그들이 너무 심하게 아줌마들에게 판촉을 벌이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마트의 주차요원이 나와서 판촉원들을 제지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판촉원들이 접근한 사람 중 몇 사람을 좇아가 말을 걸었습니다.

▲ 신문구독 신청을 한 후 받은 상품권과 영수증
ⓒ 이경태
대부분의 시민들은 냉담했습니다. 제가 들었던 대답은 "할 말 없어요" "저는 몰라요"가 전부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눈빛은 "너도 똑같은 놈 같은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중에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아주머니가 저에게 응대를 해주었습니다.

"예전에 아파트에서 살 때도 저런 사람 많았죠. 그냥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돼요."
"혹시, 신고포상제라는 것을 아세요? 저런 불법 경품 제공행위를 공정위에 신고하면 포상금을 준다고 하는데…."
"저도 아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요. 그냥 잡상인인데…."


직접 목격한 '1등 신문'의 이면

오후 4시경, 난생 처음 해보는 '제보 현장 취재'를 마치고 <오마이뉴스> 사무실로 들어오던 길. 포상금에 대한 생각보다는 가슴이 착잡해지더군요. 말로만 들었던 '대한민국 1등 신문'의 이면을 직접 목격하니 씁쓸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막무가내로 현금까지 쥐어주며 자신이 만든 상품을 팔고 있는 <조선일보>. 겉으로는 공정거래를 외치면서, 여론 시장을 흐리고 있는 우리나라 '1등 신문'의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며칠전 길거리에서 습득한 <조선일보>의 불법판촉 증거자료를 들고 내일쯤 공정위에 신고할 생각입니다. 제게 포상금까지 줄 기회를 줬는데, 보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법 경품이 아니라 신문의 질로 승부할 수 있도록 <조선일보>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섭니다. 판촉원들에게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 불법 판촉 현장을 제보해주신 분께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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