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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일 프랑스 영국 덴마크 자전거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자전거 국제 세미나가 열렸다.
ⓒ 김대홍

"2003년 시라크 대통령이 '프랑스 도로에서 사망자가 너무 많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매년 사망자가 8천명 수준이었는데, 1995년 이후 전혀 줄지가 않았어요. 결국 대통령은 자동차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은 상당히 우려했지요.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속도를 줄여야 한다구요. 결국 여론이 대통령 편을 들었습니다."

해외 자전거 전문가들이 보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의 핵심은 '자동차 속도 감축'이었다. 지난 8~9일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린 환경친화적 자전거문화 정책 국제 세미나에서 나온 내용이다.

자동차 속도를 줄이면 사망자 수도 줄어든다

이날 참석한 해외 전문가는 올리버 하츠(Oliver Hatch, 영국 국가자전거전략 기획), 크리스챤 이그(Christian Ege, 덴마크 환경자전거 전문가), 휴베르 뻬잉여(Hubert Peigne, 프랑스 자전거정책조정관) 등 세 명.

하츠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선 통학 인구를 늘여야 하는데 먼저 해야 할 일이 자동차 속도를 줄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도로를 좁게 만들고 속도 제한 조치를 한다는 것.

그는 최고속도를 영국 도심에선 50km, 학교 주변은 30km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제한 조치를 한 이후 2005년엔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전년 대비 27% 감소했다고 전했다.

이그는 덴마크도 도심은 50km, 학교 주변은 30km라면서 '속도가 관건'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뻬잉여 또한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 속도를 줄이는 자국 상황을 전했다.

세미나에선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소개됐다.

영국에선 1년에 한 차례씩 의원들이 자전거를 타도록 권유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모든 가구에 자전거 관련 엽서를 보낸다. 엽서 뒷면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천국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면 좀더 나은 곳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프랑스에선 올해 교육부가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등교 그룹을 만들었다. 이 그룹엔 안전을 위한 별도 호송자가 있다.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

▲ 이날 행사장 밖엔 '자전거21'이 제작한 세계 각국 자전거 지도가 전시됐다. 사진은 파리 자전거 지도.
ⓒ 김대홍
이그는 덴마크에선 건강 관련 캠페인을 자주 한다면서, 어떤 점을 홍보하는지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자전거를 타면 우울증이 낮아진다. 또한 과체중이 줄어든다. 2005년 조사에 따르면 자전거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영국과 스웨덴이 과체중이 높았고, 덴마크·스위스·독일은 낮았다.

또한 자전거가 많으면 많을수록 교통사고가 줄어든다. 비록 1994년 자료이긴 하지만 자전거 이용률이 높은 덴마크·네덜란드가 가장 낮았고, 프랑스·오스트리아 등은 몇 배나 높았다. 자전거가 넘치면 자동차도 조심하고 속도를 줄이게 된다.

이그가 소개한 WHO 자료에 따르면 출퇴근시 자전거를 타면 생산성이 2~52% 향상된다. 또한 신체활동이 높아지면 보건비용이 줄어든다.

이그는 자전거를 기차(또는 지하철)에 태우면 여러 가지 이점이 많다고 말했다. 출퇴근용으로 쓸 수 있고, 휴가 갈 때 승용차 이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자전거 출퇴근이 많아지면 주차권을 아낄 수 있어 이득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바퀴는 '도로'가 아닌 '전통' 위에서 돈다

▲ 오이따시 자전거 지도
ⓒ 김대홍
눈길을 끈 대목은 자전거도로 등 인프라 구축이 자전거 이용 활성화와 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빼잉여는 북부 이태리의 자전거 이용률이 20% 이상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전거 도로가 없고 주차장도 없지만 자전거 이용률은 무척 높다"고 이야기했다.

자전거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덴마크도 마찬가지. 이그는 덴마크 정부는 자전거 정책을 갖고 있지 않으며 또 다른 자전거 선진국인 네덜란드도 전략이 없다고 말했다. 이미 이들 나라에선 전통이 돼 버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자전거 정책 역사는 우리나라의 자전거 문화를 돌아볼 수 있었던 사례.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자전거 환경이 아주 열악했다. 1995년에 들어서 비로소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만든 우리나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국에선 1990년대 초반까지 자전거 사용자 단체들이 제각기 소리를 냈고, 정치인들은 무관심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1996년. 수송장관에 취임한 노리스씨가 관심을 가지면서 그해 비로소 최초의 정부 견해를 담은 자전거 문서를 펴냈다고. 자전거 정책이 만들어진 게 불과 10여년 됐다는 뜻이다.

정책 결정권자의 의지가 자전거 문화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등장으로 활기를 띄고 있는 서울시 자전거 정책을 연상시킨다.

프랑스 상황도 영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자전거에 관심을 가진 교통부장관이 없었고, 2003년 시라크 대통령이 관심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고.

'한국 자전거 정책의 평가'를 발표한 최진석 연구원(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자전거 선진국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적어도 우리보다 20년은 빨리 시작했다"면서 멀리 보고 갈 것을 주문했다.

자전거로 인한 세수 감소는 어떻게?

ⓒ 김대홍
이날 세미나가 자전거의 장점만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자전거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풀어야 할 과제도 제시했다. 대표적인 문제가 세금 확보.

이그는 "자전거를 타면 차를 적게 탄다"면서, 이로 인해 정부의 세수가 줄어들게 된다고 화두를 던졌다. 그는 자전거 이용자수가 증가하게 되면 기름과 차에 부과하는 세금이 줄게 되고, 대중교통에서 나오던 세금도 적어진다고 설명했다. 정책당국자들이 크게 우려하는 부분을 끄집어내는 것.

하지만 그는 "타는 사람수가 주는 만큼 대중교통 수준을 조절할 수 있고, 건강·공해·도심혼잡 등 혜택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비용보다는 효과가 더 많다"면서 자전거의 혜택을 강조했다.

또한 "자전거를 안 타는 사람들이 공기가 나빠서 못 타겠다고 말하는데, 이는 모순"이라고 꼬집으면서 "자전거를 타야 공기가 좋아질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9일 열린 '한국의 자전거 정책 성공사례와 개선방안'에선 국내 자전거 이용 및 자전거 국민인식 현황(신희철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 송파구 자전거 이용 활성화의 성과(문훈기 송파구 교통문화담당), 서울 자전거 정책방향과 07년 자전거 시정계획(고승효 서울시 자전거팀장), 자전거 정책 개선 및 이용활성화 방안(김종석 자전거타기운동연합 부회장) 등이 소개됐고, 커뮤니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오마이뉴스> 측에서 토론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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