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원 안 가고 서울대 간다> 저자 송명호(54·시인·한문번역가)씨가 책 한 권을 보냈다. 제목만으로도 솔깃했다. 현직 교사로서 늘 소망하는 '공교육 정상화'와도 무관하지 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독했다.

그리고 10월 말에 그를 만나 가까운 친구처럼 밥 한 끼를 먹었다.

"왜 이 책을 썼나요?"

"솔직히 이 책으로 돈을 좀 벌어 보려고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요.(웃음) 하지만 학원 안 가고도 서울대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합니다. 학교 교육에 충실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송명호씨는 서당 훈장답게 갓모자를 썼고, 유난히 명징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본격적인 서평에 앞서 작자와의 인연을 먼저 써야겠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는 시인이요, 학자요, 우국지사다.

두 권의 시집과 한문 번역집 두 권을 낸 학자 송명호

▲ 송명호 훈장
ⓒ 박병춘
나는 2002년 그의 한문 번역집 <예기집설 대전-1>이 나왔을 때 출판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대부분 시나 소설을 쓰는 문학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서당 안에서 조촐한 술마당을 펼쳤다.

당시 송명호 훈장은 서울 강남에 '우린정'이라는 서당을 열어 논어, 주역 등 사서오경과 노자, 장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한편 송 훈장은 1988년 문학 월간지 '시문학'에 신인으로 등단하여 <바람에 찍은 혜초의 쉬임표>, <안개가 아픈 자작나무> 등 두 권의 시집을 낸 상태였다.

<바람에 찍은 혜초의 쉬임표>는 혜초의 구도 과정을 형상화하였는데, 송 훈장 자신이 가난 속에서도 진리를 향해 가겠다는 신념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안개가 아픈 자작나무>는 껍데기가 하얀 자작나무가 같은 하얀색을 지닌 안개를 만나서도 가슴 아파한다는 내용으로, 세상사에 부닥치면서 어릴 적 감성의 순수함을 유지하고자 했던 작품이라고 술회한다.

송 훈장은 서울대 국문과 시절, 전두환 정권의 과외금지 조치에 따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결국 야간 방범 순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해야만 했다. 방범대원으로 일하면서 원효에 심취하게 되었고, 한문 공부에 뜻을 두게 되었다. 송 훈장은 야간근무를 서면서 가로등 아래에서 논어나 맹자를 암기하였고, 한문 공부에 대한 열정은 사서오경으로 이어졌다.

송 훈장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우린정'이라는 이름으로 한문 서당을 운영했다. 이는 자신의 한문 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주교육 대상은 대학생, 대학원생, 주부, 대학교수 등으로 송 훈장은 우린정 서당에서 16년 동안 300여 명의 유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2006년 4월 송 훈장은 <예기집설대전-1>권에 이어 약 4년 만에 <예기집설대전-2>를 번역했고, 이 책은 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 학술 도서로 선정되었다.

예기는 사서오경 중에 가장 방대한 책이며 '예기집설대전'은 예기의 주석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예기집설'을 주된 텍스트로 삼아서 제 학설을 묶은 책이라고 한다. 사서오경 중에서 '예기집설대전'만 번역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송 훈장이 처음으로 번역한 것.

현재 송 훈장은 우리나라에서 사서오경을 정식으로 가르친 마지막 훈장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도올 김용옥 강의가 유행하며 동양학 강의가 성시를 이뤘으나, 현재는 자신이 운영하는 우린정 서당에 수강생들의 발길이 끊겨 서당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송 훈장은 일시적인 유행이 지나 동양학이 매도되는 것을 보고 절망했다고 한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 '학원 안 가고 서울대 간다'
ⓒ 높은밭
그런 그가 며칠 전 <학원 안 가고 서울대 간다>는 책을 냈다며 보내왔다. '9급 공무원에서 32세 서울대 최고령 입학, 자신만의 독특한 교육 방식으로 아들도 서울대 수석 합격'이라는 문구와 얼굴을 쏙 빼닮은 부자간 사진이 정겹게 띠지를 장식하고 있다.

저자 송명호씨는 1984년에 32세의 최고령으로 서울대 국문과에 합격했고, 그의 아들은 2005학년도 정시 입시에서 사회계열 수석 합격을 하고 현재 서울대 경제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험난하게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을 반추한다. 저자는 자신이 9급 공무원에서 서울대 국문과에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어 대학진학을 앞두었던 아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훈육했는가를 체험담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자녀를 양육하며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례가 요소요소에 흥건하게 배어 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버지의 최고령 서울대 합격기, 아들의 서울대 수석 합격기, 아버지의 자녀 교육관, 내신 성적 관리법, 통합 논술 교육, 수험생의 생활관리, 우리나라 교육에 한마디, 학원에만 의존하면 서울대 못 간다 등을 주요 목차로 언론에 조명된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송 훈장이 필자에게 직접 밝힌 <학원 안 가고 서울대 간다> 집필 동기를 먼저 적는다.

"이 책은 학원에 가기 어려운 시골의 학생들을 위한 지침서로 쓴 책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썼다. 나는 가난도 학원도 아버지의 두뇌도 반드시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지 않는다. 좋은 조건에서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부유한 학생이 공부를 잘하거나, 가난한 학생이 공부를 잘하거나 똑같이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가난한 수재를 높이 보고 부잣집 후손으로서 수재를 낮추어 본다면 이 책의 전제는 모두 거짓이 되고 만다.

그래서 가난을 극복하고 세칭 일류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부잣집에서 공부하여 일류대학에 들어온 아이가 결코 멍청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반드시 유리한 조건은 없었다는 점이다.

노력, 두뇌, 목표의식이 자신과 똑같이 높다는 점을 인정하고 대학에서 갑절의 노력을 해야 겨우 같아질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어느 날 범인으로 낙오해 버린 가난한 천재를 보는 일은 흔하다. 그것은 결코 즐겁지 않은 일이다."


지독한 가난과 끈질긴 학습

같은 또래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을 받을 때
소매치기가 두려워서 조심하던 만원 버스
아빠의 가슴 속 깊이 숨겨 둔 것은
10만 원이었단다.

허지만 생각해 보아라
버스 속 그 누가 나보다 적게 받겠는가를
나보다 못난 자 어디에서 숨쉬고 있는가
오고 가는 숱한 사람들
아 당신들은 모두 나보다 봉급이 많겠구나 - <학원 안 가고 서울대 간다> 23쪽


송 훈장에게 생활고는 마치 천형처럼 따라다녔다. 조실부모에 여유 재산은 꿈도 못 꿨다. 송 훈장은 낮에는 9급 공무원으로 오전 9시에 출근하여 오후 6시까지 일하면서 입시 준비를 했다.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책을 읽었다. 그렇게 공부한 지 18개월만인 33살에 서울대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재산도, 아버지의 학벌도, 족집게 강사도 공부 잘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울대 입학에는 오직 수험생 본인의 의지와 땀만이 99%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는 것이 송 훈장이 밝힌 책을 쓴 이유 가운데 하나다.

송 훈장은 자녀 교육에 관해 언급한다. 아들의 성장 과정에 한두 번쯤 손찌검을 했다는 송 훈장은 1999년 1월1일 쓴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그의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고 한다. 그는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아이를 한 번 때렸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내가 죽고 난 후에도 아들에게 사과한다. '논어'에 '노기를 드러내지 말고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不遷怒 不二過)'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아들에게 화를 내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 - <학원 안 가고 서울대 간다> 142쪽

송 훈장은 아들의 학과 선택을 놓고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사회의 모순을 꿰뚫을 수 있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라. 통속적이지만 잘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다. 내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잘 살아야 된다는 명제이다. 산보다 큰 괴물이 너를 삼키고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한다. 아들아, 지성의 칼을 갈아라. 현실 속에 도사린 채 몸집을 키우고 있는 괴물을 베어야 한다."


송 훈장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3번 이상 글을 쓰게 하였다고 한다. 또 아들에게 다양한 책을 읽도록 권했다. 그것은 그가 책 안에서 말한 통합 논술 대비와 무관하지 않다.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과 수백 권 독서의 힘을 보태 서울대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한편 송 훈장은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시했던 교육 철학이 무엇이었는가?"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 가난하다고 공부 못할 게 뭐 있겠습니까?
ⓒ 박병춘
"아들에게 아직까지 말하지 못했다. 정직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정직한 인간, 긴 세월을 지내 놓고 볼 때 누구 앞에도 정직한 인간, 그런 사람이 가장 훌륭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 자신도 정직하게 살아오지 못했지만…."

송 훈장의 겸손함과 솔직함이 배어나는 답변이다. 송 훈장의 솔직함은 다음 답변에도 이어진다. "아들 새랑이가 학원 교육을 받지 않으면서 학원 교육을 받고 있는 친구들을 어떻게 생각했던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친구들처럼 학원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아버지가 돈을 잘 벌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말을 안 했다"고 한다.

송 훈장은 아들이 국어, 영어, 수학 등 내신 성적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설파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공동으로 자녀의 생활과 학습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아내의 교육철학을 존중할 뿐이다

특히 송 훈장의 장인 최효대 옹은 일제로부터 5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 옥고를 치르던 중에 광복으로 석방되었고 현재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그 피를 이어받은 아내는 원칙에 충실한 엄격함으로 아들의 가르침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송 훈장은 "아내의 자식에 대한 교육 철학은 무엇인가? 사례가 있다면 제시해 달라"는 나의 제안에 "아내의 교육 방식이 나와 달라도 결코 간섭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예를 들면 아내는 자녀들의 잘못이 있을 때 반성문을 쓰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다만 나보다는 엄격하다. 아내의 교육 철학은 잘 모른다"고 잘라 말한다.

남편과 아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각각의 자리에서 자녀를 양육한 셈이다. 이는 같은 집안에서조차 부모의 가르침 영역을 서로 인정하고 차별화했다는 것으로 해석되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송 훈장에게 다소 불편할 것 같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비록 경제력은 부족했지만 부모의 학력이나 식견이 자식의 학원 교육을 대신할 수 있었다고 보는데, 그래서 학원 안 가고도 서울대 갔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가르친 것을 학원에 간 것으로 친다면 할 말이 없다. 나는 학원에 결코 가지 않았다. 서울대 가는 데에 학원이 방해 요소가 됨을 알고 있었기에 자식 교육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 점은 내가 쓴 책의 '아버지의 합격기'가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본다. 학원에 가서 필요한 학업 성적을 보완할 수는 있겠으나 의존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송 훈장은 학원보다는 학교를 신뢰한다고 말한다. 아들 새랑이가 학교교육으로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한다. 모든 교과 교육이나 항간에 논의되고 있는 통합논술부터 인성교육까지 학교와 선생을 신뢰해야 교육이 산다는 것이 송 훈장의 신념이라고 한다. 이것이 현직 교사로서 이 책을 정독한 이유이기도 하다.

송 훈장의 전언에 의하면 현재 아들 새랑이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다니면서 경제학 관련 공부를 꽤 열심히 하고 있고, 훌륭한 경제학자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한다. 아들 새랑이가 경제학자로서 뜻을 이루고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저자 송명호 : 시인,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90년 1월부터 우린정 서당을 운영하면서 유생 300여 명 배출, 논어, 맹자, 중용, 대학, 통감절요, 시경, 서경, 역경, 주역, 춘추좌씨전, 예기집설, 장자, 도덕경, 근사록, 고문진보 등 원전 강독, 

<학원 안 가고 서울대 간다> : 저자 송명호, 발행처-높은밭, 정가 9,000원 

저서 ; 시집, '바람에 찍은 혜초의 쉬임터', '안개가 아픈 자작나무'
       번역서, '예기집설대전' 권1, '예기집설대전' 권 2


학원 안 가고 서울대 간다

송명호 지음, 높은밭(2006)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