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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은 거창한과 말과 높은 이론보다는 구체적 삶속에 있음을 압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L형. 얼마전에 많이 피곤하다는 전화를 받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치신 마음에 힘을 드리지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네요. 며칠전 집에 들어가보니, 고맙게도 한해 동안 농사지으신 쌀을 보내주셨더군요. 감사한 마음으로 먹겠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제주도에도 가을밤이 깊었습니다. 깊은 가을밤 잠도 오지 않아, 제 마음을 글로 풀어 봅니다.

요즘 희망이라는 말이 참 많이 쓰입니다. 그건 아마 우리사회에 그만큼 희망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같기도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희망을 많이 잃었다고 고백합니다. 1990년대까지는 그래도 희망이 많이 보였던 것같습니다. 뭔가 사회가 바람직하게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희망은 점점 우리 곁은 떠나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사실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생태주의자도 못 됩니다. 사회적 정의와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시민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지만, 요즘에 들어서서 “우리의 미래,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삶은 어떠할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건 우리 삶이 전체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사회가 어떻냐구요? 저는 우리사회가 일정정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이 어떤 상태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사회가 비정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몇몇 사람의 생각에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흘러가는 방향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소박하게 살고자 하는 서민들은 뛰어오른 집값에 놀라 절망에 빠집니다. 참 땅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농촌지역의 땅값도 많이 올랐습니다. 땅값이 오른만큼 빈부격차도 심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농촌은 어떤가요? 도시에서는 집구하기가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지만, 빈집이 많아진 농촌마을에는 나이드신 어르신들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변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현재 우리 농촌, 어촌, 산촌지역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와의 소득격차는 벌어지고, 젊은 사람들은 떠나버리고 없고, 그나마 있는 아이들은 할아버지,할머니와 살고 있고.

교육은 어떤가요? 한쪽에서는 사교육이 너무 치열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방치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사회가 날로 분열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흘러갔을 때에 과연 미래는 어떠할까요? 그렇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그런 광경에 둔감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관심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희망을 찾는 세상... "희망은 소박한 삶속에"

지금은 너무나 많은 것을 돈과 겉모양으로 평가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마음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사회가 살만한 사회인지요? 이런 사회가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까?

L형, 형께서는 농촌에서 주민자치운동을 하겠다는 뜻을 품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노력해 오셨지요. 그런 농촌지역이 날로 황폐해지고 있는 것을 보시면 마음이 어떠실지 짐작이 갑니다.

농촌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습니다. 정부정책을 통해 버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는 지역주민들에게 이익이 되는지도 모를 개발사업들이 벌어집니다. 각종 개발사업이 벌어졌던 농촌지역에서는 “달콤한 사탕에 속았다”고 말하는 주민을 보게 됩니다. 실제 개발로 인한 이익은 대부분 외부로 흘러가버린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개발사업의 폐해중에 하나는 지역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지역사회의 공동체성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국가든 공기업이든, 민간업자든간에 농어촌지역에서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 측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지역주민들을 돈으로 이간질하고, 오랫동안 어울려 살아온 지역주민들을 반목하게 해서 반대를 무마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부가 방폐장을 밀어붙이던 지역에서, 민간기업이 정부의 비호하에 개발사업을 밀어붙이던 지역에서 이런 모습들을 보아 왔습니다. 사업 자체에 대한 타당성을 떠나서 자본이나 권력이 이런 방식을 취하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L형 그렇지만, 저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희망은 이런 사회적 흐름속에서도 건강하게 살아보려는 사람들 속에, 그리고 그 사람들의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삶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말이나 높은 이론보다는 구체적인 실천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1회 지리산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전남 구례 산동 사포마을 주민들.
ⓒ 최화연
작년 겨울부터 지리산 자락에서 희망을 만들려고 하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너도나도 도로를 뚫어야 발전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도로를 반대하는 것이 마을과 삶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수입증대에 도움이 된다는 골프장보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온 삶이라고 믿는 어르신들이 있더군요.

내 아이가 아니라 마을의 아이들을 함께 돌보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더군요. 아무 연고 없는 농촌마을에 삶을 일구고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묵묵히 노력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그 곳에서 이번에 문화제를 하신답니다.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사포마을’이라고 산수유가 좋은 마을에서 열린답니다. 그 마을도 최근 골프장으로 인해 여러 가지 상처가 생긴 곳이랍니다.

그런 상처들이 언제나 아물지, 그리고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문화제를 통해 우리 삶과 우리 농촌,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이 피폐할 때면 가끔씩 가 보고 싶은 지리산 자락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같습니다.

문화제가 열리는 날이 11월 4일 토요일이라는데 저도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을에서 하룻밤이라도 자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네요.

L형, 그동안 지친 마음도 달래실 겸 지리산도 한번 다녀오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도 바쁜 일이 정리되면 한번 막걸리 한잔 하러 내려가겠습니다. 부디 건강부터 챙기십시오. 이를 드러내면서 밝게 환하게 웃는 형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지리산 문화제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 http://www.savejirisan.org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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