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필리핀 주재 한국 대사관은 올해 필리핀을 찾을 한국인 방문객을 50만명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몇 년전 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 여파로 그를 피해 필리핀을 찾는 여행객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한국인 관광객들이 마닐라 다음으로 많이 찾는다고 하는 곳이 보라카이 해변이다. 보라카이 해변은 필리핀 중부 비사야 제도에 속한 작은 섬이지만 맑고 푸른 바다와 밀가루 같은 고운 흰 모래로 인해 세계 3대 아름다운 해변으로 불리며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이곳에 정착해 사는 한인들의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한인회도 구성되어 있다.

'관광 낙원' 이면에 원주민들의 애환이...

▲ 필리핀의 대표적 관광지 보라카이의 아름다운 해변.
ⓒ 필리핀관광청 홈페이지
이처럼 아름다운 관광 낙원인 보라카이에서 관광객들이 떠들썩한 밤낮을 즐기는 동안 이 섬의 원주민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고된 싸움을 벌여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길고 긴 고난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곧 보라카이에서 쫓겨날 위기에 빠져 있다.

그동안 이 섬을 관광지로 적극 개발하려는 필리핀 정부와 개발업자들에게 이 섬을 지켜온 원주민들은 늘 걸림돌이었다. 이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섬의 원주민들을 몰아내려고 해왔고 원주민들은 이에 대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힘겨운 투쟁을 벌여왔다.

수만년 전부터 필리핀에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진 보라카이 아에타족은 이 섬을 그들에게 단 하나 밖에 없는 삶의 자리로 인식하며 살아왔다.

필리핀 중부와 남부에 산재해 있는 다른 아에타족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조상들이 물려진 땅에서 수렵과 농경을 통해 삶의 자리를 지켜왔는데 계속된 개발로 인해 그 수가 줄러 이제 보라카이에는 180명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제 그 180명마저도 곧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원주민 쫓아낸 장본인은 한국 개발회사

그런데 마지막 남은 보라카이 원주민들이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필리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우리나라의 한 개발회사라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낀다.

현재 우리나라 모 개발회사가 아에타족이 살고 있는 이 장소에 해양스포츠센터를 건설하면서 1.5m에 이르는 콘크리트 벽을 세워 그렇지 않아도 키가 작은 아에타족은 이제 아름다운 보라카이의 해변조차 잘 감상하기 힘들어졌다.

이 아에타 원주민들이 현재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법원이 행정명령을 내려 개발회사로부터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주는 것이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줄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에 보라카이에서 이들의 추방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에타족 원주민들은 필리핀의 가장 오래된 주인이면서도 기나긴 세월을 다른 필리핀 사람들로부터 외면과 냉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이들은 일반 필리핀 사람들보다 키가 작고 피부가 검으며 곱슬머리를 하고 있어 일반 필리핀인들과 쉽게 구분된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이들 아에타족은 2, 3만년 전 보르네오 섬을 거쳐 필리핀으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필리핀에는 약 14만500여명의 아에타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필리핀 정부는 아에타 원주민 지역들을 개발하면서 정착촌을 새로 만들어 주었으나 농경과 수렵으로 생활하던 이들이 정착촌에서 정착할 수 없게 되면서 다시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빈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20여년 전부터 보라카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으로 각광을 받게 되면서 이들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처음 보라카이는 배낭여행객들이 묵었다 가는 해변이었는데 아름다운 해변이 차츰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거대한 호텔과 리조트들이 들어서고 점차 수많은 개발업자들이 모여드는 곳이 됐다.

▲ 필리핀의 보라카이에 얼마 남지않은 소수부족 아에타족이 개발바람에 밀려 삶의 터전에서 내쫓길 위험에 처해있다. 사진은 루미바오 부락의 아에타족 사람들.
ⓒ 이경수
새 정착지로 옮겨가면 된다?

작년 한 해에만 50만명의 광광객이 찾아 약 1억8400만달러에 이르는 관광수입을 올리는 곳이 되었다. 이는 2004년보다 16.5%가 증가한 수치다.

이 지역의 국회의원인 미라플로레스는 "필리핀 정부는 아에타 원주민들의 이주대책을 세우고 있다며 이들은 곧 새 정착지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라카이 시장 또한 "이들 새 정착지에 학교와 병원 등 현대식 기반 시설을 세우고 있어 이들에게 좋은 환경이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전에 다른 아에타족이 이미 경험했듯이 보라카이 아에타 원주민들이 새 정착지에서 적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필리핀 문화 인류학자들의 지적이다.

이미 아름다운 바닷가에 살다가 그 터전을 빼앗기고 해안에서 내륙으로 밀려난 아에타족 원주민들은 이제 보라카이 섬에서 쫓겨나 또 다른 낯선 삶의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관광객을 조금 더 유치해 국가 수입을 늘리려는 정부와 역시 수익의 극대화를 통해 자본을 늘리려는 개발업자들에 의해, 아에타 원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자기 고향을 등져야 하는 슬픈 역사가 이곳 보라카이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고 그 선봉에 우리나라 개발회사가 서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