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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소스 진영의 아군으로 인식되는 구글은 미국 기업이지만, 국가 보다는 네티즌들의 공동체에 충성을 바치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검색 시장의 80%를 장악하는 독과점 기업이면서도 네티즌들의 지지를 받는 비결은 구글이 일관되게 지켜오고 있는 원칙들에 있다.

구글의 메인화면엔 광고가 없다. 다만 단순 명쾌한 검색창만 있을 뿐이다. 구글은 인터넷에 많이 링크된 순서대로 페이지를 띄우며 검색 결과와 광고를 분리하는 '공정함'으로 구글 마니아들의 칭송을 얻고 있다.

"구글링으로 아이큐가 20은 늘었다"고 자랑하는 구글 마니아들에게 '구글 민족주의'라는 얘기는 생뚱맞은 표현일 것이다. 사실 기자가 만들어낸 용어인 '구글 민족주의'는 인터넷을 통해 드러나는 민족 감정에 민감한 한·중·일 네티즌들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 한·일 네티즌들의 전투 끝에 구글 어스는 한국과 가까운 곳은 동해로, 일본에 가까운 곳은 일본해로 표기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구글 어스의 권위와 한·일 네티즌들의 적극성이 드러난 사건.
ⓒ Google
구글이 확장시킨 사업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구글 어스'는 최근 한국과 일본 네티즌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한국 네티즌의 요구로 구글 어스가 기존 일본해(Sea of Japan)을 동해(East Sea)로 바꾸자 다시 일본 네티즌들의 성화가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구글은 물론 지명 정정을 주도한 한·일 관련 사이트에 대한 해킹전쟁으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구글은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표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동해 명칭을 둘러싼 한·일 네티즌들의 전쟁은 일단 구글 어스의 영향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과거 지도나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던 다툼이 구글 어스로 옮겨 간 것처럼 2006년 현재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 구글에 어떻게 적혀 있는가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라는 얘기다.

구글의 영향력을 지나 그 뒷면을 살펴보면 인터넷 환경이 잘 발달되고 IT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중·일 세 나라에서 네티즌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또는 국가주의) 감정들이 얼마나 공격적인 형태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이미 세 나라 네티즌들은 특정 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온라인 게임에서 배척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 왔고 상대 나라 사이트를 직접 공격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 구글 어스가 백두산 천지를 중국 영토로 표시한 사건은 인터넷을 넘어 신문, 방송은 물론 정치권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한·중·일 네티즌들의 민족감정은 단지 인터넷만의 문제가 아니다.
ⓒ SBS
한·중·일 네티즌 전쟁은 주로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공격하는 양상이었지만 최근 구글 어스를 둘러싼 또 다른 다툼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구글 어스에서 백두산 천지를 모두 중국 영토로 표시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한국 네티즌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구글 어스는 1962년 김일성 주석과 저우어라이 총리가 합의한 내용에 기준해서 천지의 45%를 중국 영토로 수정했다. 이 사건에 대해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 네티즌들에 대한 비난 일색으로 대응했다.

구글 어스와 백두산 천지 문제는 신문과 방송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는데 이것은 한·중·일 네티즌들이 맞서곤 하는 민족 감정 문제가 단지 인터넷에서만 오가는 일이 아니라 세 나라 정치, 사회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넷에서 생긴 대립이 사회로 번지기도 하고, 현실 사회에서 이뤄진 결정들이 인터넷 전쟁을 촉발시키기도 하는 것이 한·중·일 네티즌 전쟁의 현실이다.

▲ 2001년 8월 15일 구글 메인화면을 장식했던 광복절 기념 로고. 데니스 황이라는 한국계 디자이너의 영향력이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구글 매니아를 이끌어낸 계기가 되었다. 구글은 아시아에서 민족주의 특성을 실감하고 있다.
ⓒ Google
아시아 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구글이라 한·중·일 세 나라 사이에 얽힌 특별한 감정들 때문에 구글 원칙을 굽혀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이르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어떤 나라에 기운다 싶으면 이내 쏟아지는 네티즌들 성화에다 각 나라 정부나 기업마저 가세해서 구글을 압박하기까지 한다.

최근 구글은 구글 차이나(www.google.cn)를 시작하면서 중국 정부의 압력에 밀려 천안문 사태나 파륜궁 같은 민감한 단어들을 배제하는 조치를 취해서 구글 마니아들로부터 "구글이 사악해졌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구글의 단순함과는 정반대 철학을 가진 토종 포털 들에 밀려 시장 진출보다는 연구 개발부터 타진했고, 일본에서는 신문이나 방송 같은 기존 매체들에 비해 인터넷 매체를 낮춰 보는 완고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 구글의 굴욕? 구글 차이나를 허락받는 대가로 중국 정부의 검열에 동의했던 구글은 "사악해졌다"는 구글 마니아들의 비난에 직면했다.
ⓒ Google
아시아에서 겪고 있는 이런저런 굴욕(?)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아시아 진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며 공격적으로 터져 나오곤 하는 한·중·일 네티즌들의 민족 감정은 구글의 기술력으로도 어찌 해보기 어려운 문제다.

북한 핵 실험과 일본 아베 정권 등장 그리고 중국 동북 공정 등 구글 능력 밖에 있는 악재들이 터져 나오는 것도 한·중·일 네티즌 사이에서 구글의 처신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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