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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전시작통권) 환수와 관련된 논란이 뜨겁다. 마침 지난 2일 전직 국방장관들이 모여서 전시작통권 환수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파장을 낳고 있다.

전직 장관들을 가장 앞장서서 두둔하고 나선 곳은 <조선일보>였다. 3일자 사설에서는 이들의 모임을 지지하고 나서더니 다음날인 4일자 사설에서는 해명에 나선 윤광웅 국방장관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2006년] "한국 안보가 결정적으로 뒤흔들린다"

▲ <조선일보>의 3일자 사설 '13인의 전 국방장관 "작전권 환수할 때 아니다"'.
먼저 3일자 사설에서는 이런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40년에 걸쳐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졌던 사람들 눈에는 한국이 작전권을 행사한다는 자주의 명분에 휩쓸려 몇년 안에 작전권 환수가 이뤄지고 이에 따라 한미연합사 해체와 주한미군 대부분이 철수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대한민국의 현재 안보 상황과 대한민국 국군의 현재 능력에 비춰볼 때 한국 안보가 결정적으로 뒤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 사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국민들은 사실이 이런데도 이 정부가 자주라는 선동적 구호 하나를 외치며 작전권 환수를 밀어붙이겠다면 더 이상 이 정부를 국가 안위를 책임지는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조는 그 다음날에도 이어진다.

"윤 장관은 미군 관계자들로부터 "작전권을 이양해도 주한미군 주둔은 보장하겠다"는 말을 듣긴 들은 모양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면 윤 장관은 국방장관으로서 실격이다. 해외주둔미군을 타국의 지휘권 아래 두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 행정부·의회의 오랜 전통이다. 강대국이란 그런 것이다

…(중략)…윤 장관은 대통령의 '자주논리'를 경호하는 정권의 '정치장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진 국방장관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군사주권의 핵심은 전시작전통제권 아닌가?

글쎄, 국방이나 외교·군사에 문외한인 내가 무식한 탓이겠지만, 미국이 미군을 타국의 지휘권 아래 두지 않는 것과 그 나라의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한 나라의 군사주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주권의 일부이며 특히나 전시에 군대에 대한 작전권을 행사하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전시작통권을 동맹국에게 내어준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헌법상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이다. 그런데 한미연합사령관이 전시작통권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위헌 아닐까?

문득 평시작통권이 환수된 1994년에는 사회 분위기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권력 감시를 언론의 숭고한 임무라고 목소리를 높여온 <조선>이라면 당시 사설이 남달랐을 게 분명하다. 국가안보에 관한 한 가장 비타협적인 것도 <조선>이 아니던가.

[1994년] "가급적 빠른시일 내에 전시작통권 환수가 과제"

▲ 1994년 12월 1일 <조선일보> 사설 '평시작통권의 중요성'.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 <조선일보> PDF
그러나 직접 찾아본 결과는 대실망이었다. 아래는 평시 작통권이 이양된 1994년 12월 1일자 <조선> 사설의 일부이다.

"냉전 이후 국지분쟁의 귀결에서 보듯 국가보위의 궁극적 책임은 당사국에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의 작통권은 우리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만으로는 우리의 안보를 우리가 완전히 책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럴 수가. 무려 12년 전에 <조선일보>는 전시작통권 환수까지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 사설에서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을 우선과제로 꼽고 있지만, 이는 사족에 불과하다.

이어지는 해설기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군 관계자들은 이번 조치를 계기로 진정한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착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몇 달 전인 1994년 10월 7일자 신문을 보자.

"군 관계자들은 이를 계기로 한국이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작전지휘체계를 확립하게 됐다고 환영하고 있다. …(중략)…따라서 한국군이 오는 2000년대 이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의 환수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94년이면 북핵위기 때문에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폭격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던 해다. 극적으로 제네바합의에 이른 것이 그 해 10월 21일이었다.

그러니까, 한반도 안보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더 불안했던 시절에 당시 문민정부는 2000년대 전시작통권 환수까지 내다보고 평시 작통권을 환수한 것이다. <조선>은 이를 "주권국가의 자주성 확보"라고 칭송했을 뿐 아니라 전시작통권을 "산을 넘어서라도" 확보해야 할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12년 전과 정반대 주장,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왜 <조선>은 12년 새 정반대 주장을 하는 것일까? 국가안보를 위한 충심에서 말 바꾸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을 비판하는 데에 국가안보를 팔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몇 년간의 <조선>은 사사건건 정권 비난에 앞장섰다. 열명이 뜻을 모아 한 가지 의미있는 일을 도모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중 한 명이 작심하고 그 일을 그르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탄핵에서부터 최근의 부동산 정책이나 정치·경제개혁의 문제, 외교·안보문제, 그리고 여전한 색깔논쟁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행태는 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12년 동안 도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길래 <조선일보>가 180도 정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섰는지, 현직 국방장관을 모욕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답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 관악캠퍼스 기공식에 부쳐 어느 시인은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썼다. 그만큼의 애국심이나 애교심이 있지는 않더라도 사리사욕에 따라 국가 중대사를 농락하는 이들을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시를 쓰지 않을는지.

'누가 망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조선>을 보게 하라.'

덧붙이는 글 | 동아일보 또한 전시작통권에 대한 입장변화가 조선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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